내가 곤히 잠든 밤에 오로라는 소리 없이 지나가고
“혹시 자? 괜찮으면 잠깐 나와 봐!”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첫날. 야생물개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이트리툰가와 해변과 절벽이 절경이었던 론드란가드 마지막으로 키르큐펠을 거쳐 우리는 첫 번째 코티지에 도착했다.
첫날은 레이캬비크 시내의 호텔에서 숙박했기 때문에 깊은 산속 코티지에 들어서자, 오늘 밤이야말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티지는 깊은 산중에 있었고 주위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모두가 잠든 아주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은 밤 11시쯤 된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새벽같이 일어나 여러 장소를 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배도 고파서 얼른 짐을 풀고 싶었다. 산중 코티지에는 우리 다섯 사람이 함께 묵을 숙소는 없었기 때문에 둘둘하나로 나누어 방을 쓰게 되었다.
그중 나와 친구의 코티지는 다른 일행들에 비해 살짝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옅은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둘이서 차를 마시며 오래 대화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낯선 곳에서 잠들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한 것과 다르게 몸은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새벽쯤 잠이 깨었을 때, 친구가 조심스럽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친구는 내가 일어나면 다행이고 아니면 조금 아쉽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를 불렀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때 나도 마침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무슨 일 있어?”
대답을 하곤, 잠겨 있는 목소리에 조금 놀랐다.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정신을 차리는데 문가에 패딩에 목도리에 털모자에 털장갑을 낀 친구가 눈사람 같은 모습을 한 채 서 있었다. 어두운 탓에 색깔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양뺨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밖에 오로라 보여!”
짧은 대답이었지만 친구의 설렘이 오롯이 전해졌다. 친구의 감정은 나에게도 전이되어 심장이 쿵쾅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대로 침대 협탁에 손을 뻗어 모자를 뒤집어쓰고 잠옷 위에 패딩을 걸쳐 입고 나름대로 단단히 무장을 한 채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어둡고 추웠으나,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 괜찮았다.
밤하늘에는 친구가 말한 그대로 초록색 오로라가 떠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아니 생애 처음으로 보는 오로라였다. 어떻게 하늘이 이런 색깔로 수 놓일 수 있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수없이 본 풍경이건만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건 색달랐다. 밤하늘 속 오로라는 세상에 던져진 채 제 할 일을 하고, 나는 그의 주변에 그저 놓여 있는 감각이었다.
나는 한 발을 더 내디뎠다. 마치 걸어가면 가까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당연하게도 오로라는, 내가 걸어간 그만큼만 멀어져 있었다. 오로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감탄하는데 반대편에서 길쭉하고 조그만 점 세 개가 보였다.
떨어진 숙소에 머무르던 다른 친구들이었다. 친구의 연락을 받고 나온 듯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양팔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어쩜 저렇게 아름답게 떴지?”
“너무 신기해!”
“보기 힘든 날도 많다던데, 첫날부터 이렇게 예쁘게 보이다니...”
추위에 양 발을 종종거리면서도 이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계속 사진을 찍었다. 오로라는 방향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커튼이 드리운 것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멀리서 콘서트가 벌어지는 것처럼 바깥으로 퍼지는 방사형을 그리기도 했다.
오로라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이곳이 깊은 산이라서, 드문드문 떨어진 코티지에서 모두가 잠들어 있어서, 가로등 조명조차 없는 밤 그대로라서일 것이었다.
오로라를 보러 가자.
이 여행의 시작을 알렸던 한마디가 생각났다. 그 제안 하나에 모여들었던 친구들도. 오로라는 우리에게 제 모습을 보여준 뒤 다른 곳을 향해 떠나갔다. 오로라가 거의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추웠지만 함부로 발길을 뗄 수 없었다.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찾아온 설렘에, 더욱 확인 도장을 꾹꾹 찍어주는 느낌이었다.
이곳에 오길 잘했어, 하고.
각자의 코티지로 돌아간 이후에도 친구와 나는 티테이블에 앉아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오로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지만 이 첫 풍경을 보고서 그대로 잠들기에는 마음 언저리에 아직 설렘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봤으면 좋겠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음날부터 우리의 밤은 오로라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오로라는 첫날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주진 않았다.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거나, 멀리서 어렴풋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오로라 알람 어플을 통해 오로라의 이동 경로와 구름의 양을 확인했다. 기대감이 솟는 소식도 있었지만, 우리가 있는 지점으로 지나가지 않거나 구름이 많아 시계가 좋지 않을 거라는 예보에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오로라를 기다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예보가 없는 날이더라도, 내심 우리 앞에 어렴풋하게나마 나타나주기를 바랐으니까. 그래서 불은 끄고 조그만 조명에 의지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창밖에 시선을 두곤 했다. 다른 이들이 잠든 밤이면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업무를 처리해기 위해 새벽녘까지 깨어 있는 친구가 하나씩은 있어서, 그 친구가 종종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잠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도,
“잠깐 나와 봐, 오로라 보여!”
그 소리만큼은 왜 이렇게나 선명하게 들렸던지 모르겠다.
나는 선잠에 들었다가 후다닥 창가로 나갔고, 가물가물한 눈으로 내 방의 커튼을 열었다.
오로라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경로로 흘러가는 오로라를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거니까. 만날 수 있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는 건 당연했다. 아쉬워도 크게 상심하진 않았다. 오로라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좋았기 때문이다. 오로라가 없는 밤하늘은 더욱 짙고 까매서 아름다운 별들이 하얗고 촘촘하게 빛날 수 있었다. 별자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지 않은 나는,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아내는 일을 소소한 재미로 삼았다.
무엇보다 매일 밤 여행을 마친 우리가 모여서, 소곤거릴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우리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낮에는 설산과 폭포 등을 찾아다니며 낮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즐기고, 밤이 찾아온 뒤에는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를 향해 찾아올 오로라를 기다리는 일이 전부였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 그리고 우리들은 기다리는 것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오로라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이유이자 시작. 밤이 긴 아이슬란드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오로라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오로라 어플이 알려주는 띠를 따라 오로라의 이동 위치를 가만히 관찰하다 나가보면 밤하늘에 초록빛 혹은 파랑 빨강 등등의 빛깔로 밤을 수놓는 오로라를 만날 수 있다. 물론 매일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