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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느긋 Nov 04. 2024

평소보다 잘 먹고 있어요

하루 두끼 먹는 내가 이 세계에선 하루에 세끼 잘 챙겨먹은 일에 대하여


레이캬비크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각자 챙겨 온 식료품을 꺼냈다. 여행자들을 위한 간편식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생각될 정도로 여러 가지 제품들이 나타났다. 친구들 각자의 호오에 따라 챙겨 온 것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국물 블록이 있으니 안 챙겨 와도 됩니다’ ‘저 장조림 캔이 넉넉하니 참고하세요’ ‘포장 꿀팁 공유합니다’ 같은 정보들을 주고받긴 했지만 막상 짐을 열어보니 이를 테면 컵라면 취향부터 짐을 챙기는 방식까지 너무나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 경우에는 커피가 없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드립백을 우선적으로 넉넉히 챙겼고, 그 외에는 참치캔, 조미김, 컵라면과 같은 기본적인 식량을 챙겼으며, “아이슬란드는 물가가 비싸서 한국에서 최대한 많이 챙겨가야 한대” 하는 내 말에 엄마가 바리바리 보내준 진미채와 도라지무침, 약밥 등의 반찬을 가져왔다(그 외 아맞다 참기름, 아맞다 설탕, 아맞다 꿀 등등의 조미료들과 함께).


도착한 첫날, 우리는 각자 가져온 것들을 한꺼번에 풀어놓고 종류별로 커다란 박스 안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어차피 여행 내내 한 차를 타고 이동할 테니 이 박스를 들고 다니며 차근차근 줄여나가자는 계획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챙겨 온 것들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 때때로 아이슬란드의 식당에 들러 현지 음식을 맛보는 일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파는 음식은 크게 구미가 돌지 않아서 머문 숙소에서 거나한 저녁식사를 차린 후, 아침에 도시락을 챙겨 가는 식으로 구성했다. 나를 포함해 함께 간 친구들 대부분이 요리에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중 한 친구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 장보기 할 때는 그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어떤 목표든 가운데에 깃발이 하나 꽂혀 있으면 다소 돌아서 오더라도 그곳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주메뉴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는 하루나 이틀 꼴로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근처의 마트에 들러 장보기를 했는데, 일단 주메뉴에 필요한 재료를 숙지하고 샅샅이 찾아 카트에 넣는 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구미가 당기는 젤리라든가 과자, 혹은 빵이나 요거트, 요거트에 곁들일 과일 같은 것들을 카트에 슬쩍슬쩍 밀어 넣곤 했다.


나는 감자칩 마니아다. 

그래서 해외의 어떤 곳을 여행하든 그 나라의 감자칩은 몇 개 사 먹어 보고, 부서져 가루가 되더라도 한두 봉지는 챙겨 와 돌아와 맛보며 그 여행을 음미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카트에 슬쩍 넣어두는 품목은 감자칩이었고, 다른 친구의 경우 젤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새로운 맛의 젤리를 넣어두곤 했다. 그 외에도 초콜릿이라든가 캐슈너트 같은 품목들도 종종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바구니 안에서는 여러 주전부리들이 나왔고 그렇게 넣어둔 것들은 나중에 요긴하게 쓰여서, 위스키와 찰떡 같이 어울리는 초코바를 발견하기도 했고, 식감이 독특한 젤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다.


공산품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먹을 게 없으면 어떡해?”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잘 챙겨 먹고 있는 점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매일 저녁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 뚝딱 먹고 술이나 마시며 오로라를 보는 상상이나 했는데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매일 저녁의 만찬이 기대됐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남은 식재료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퍼즐이 차곡차곡 맞춰지나 보다. 토마토와 바질이 남아 있으면 부라타 치즈를 사거나 소스를 조합해 샐러드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각각의 채소를 생으로 섭취하기에 바쁜 나로서는 경이로운 요리의 순간들을 자주 만나곤 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아침이 되면 숙소를 떠나기 전에 간단한 아침식사를 먹으며 점심으로 먹을 핫도그나 주먹밥을 싸고 텀블러에 따뜻한 물과 간단한 국을 챙겼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컵라면을 먹거나 주변의 푸드트럭에서 사 온 음식들을 곁들이며 현지식과 한식의 아름다운 조합을 만들어냈다. 가끔 가족들과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 하고 걱정했는데 나는 “응. 심지어 하루에 세끼를 챙겨 먹고 있어.” 하며 뿌듯하게 대답했다. 물론 뿌듯하다고 하기엔 조금 민망하게도 팔 할은 함께 여행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끼니였지만, 누군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돌보는 중에 더욱 스스로를 잘 챙길 수 있었다.




1. Seabaron : 랍스터 수프와 해산물 요리가 맛있었던 레이캬비크의 식당


2. Nailed It Fish and Chips : 피시앤칩스가 맛있었던 푸드트럭


그리고 그 옆의 핫도그 가게


3. Lava Restaurant : '블루라군' 안에 있는 레스토랑


그리고 점심 도시락 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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