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선택하든 즐거운 하루를 보냈을 거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티타임을 갖던 있던 중이었다. 매일 한국의 시차에 맞춰 새벽에는 일을 하면서 오로라를 살피는 밤을 보내던 한 친구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우리 여행 일정 중에 한 숙소에 이틀 연속으로 묵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그래서 말인데, 나는 내일 숙소에서 쉬려고 해.”
“내일 우리 어디 가는데?”
“크베르누포스라는 폭포랑 디르홀레이 그리고 레이니스피야라 비치. 물론 보면 좋겠지만, 안 봐도 괜찮을 것 같아.”
친구의 말에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불쑥 거들었다.
“그럼 나도 내일은 쉴래. 숙소 컨디션도 좋아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나도.”
동의하는 친구들이 늘어나자 내심 초조해졌다. 나는 여행지에 와서 한 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좀이 쑤시는 편이고, 언제나 편안함보다 궁금증이 내 행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탓이다. 물론 숙소에서 쉬면서 할 일도 있었겠으나, 세 시간 정도 지나면 바로 지루해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혼자라도 다녀오겠다는 마음으로 불쑥 용기를 냈다.
“나는 궁금해. 다녀오겠어.”
“나도 갈래!”
그렇게 다섯 명의 인원 중, 나와 친구 한 명은 관광을 하러 가고 나머지 세 명의 친구들은 숙소에 남아 있는 것을 택했다. 마침 전날 장도 많이 봐두겠다 한국에서 챙겨 온 식재료도 아직 많았기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친구 말마따나 오로라 스폿을 따라 거슬러 올라왔다 다시 돌아오는 우리의 경로상 이틀 연박하는 숙소는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색깔을 구분해 가며 각자 밀린 빨래를 했고 내일 일정의 여유로움에 기대어 티타임을 좀 더 이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우리를 위해 숙소에 남아 있을 친구들이 도시락을 싸주었다. 우리는 보온병에 국을 담고 주먹밥과 핫도그를 챙겨 여행을 떠났다.
이제껏 다섯 명이서 꽉 채웠던 차를 두 명이서 타고 가려니 어쩐지 휑한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꽤 흐렸고 종종 비를 뿌리기도 했다. 불안정한 기상상황을 보며 우리도 역시 남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폭포와 검은모래해변 등을 다니며 눈이 탁 트이는 시원한 풍경을 만나자 이내 고무되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크베루누포스였다. 아이슬란드 겨울 여행 동안 대부분의 폭포가 그랬듯 크베르누포스 역시 물이 떨어지는 모습 그대로 단단히 얼어 있었다. 원래는 폭포 물이 떨어지는 동안 그 뒤의 빈 공간으로 지나가는 묘미가 있다고 했지만 얼음은 얼어 있었고 기상이 좋지 않은 탓에 가까이 갈 수 없도록 [CLOSE ]라고 적힌 팻말과 함께 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짧게 폭포를 구경한 후 우리는 레이니스피야라 비치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마치고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레이니스피아라 해변은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오늘의 파도 세기를 안내해 주는 경고등이 신호등처럼 부착되어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노란색 등이 켜져 있긴 했으나 파도가 세지 않아서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웬만해선 파도 가까이로 다가가진 않았다. 해변가에는 우리나라에서 본 주상절리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랗게 형성되어 있어 마음껏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해가 지는 저녁이었다. 숙소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오늘 하루 편안히 잘 쉬었는지 편한 복장과 말랑하게 풀어진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식사 준비를 하던 친구들에게 합류해 저녁을 준비하면서 친구들이 보낸 하루를 구경했다. 친구들이 그날 하루 만들어먹은 요리와 숙소 귀퉁이에 만들어둔 눈사람과 숙소 입구의 비탈길에 작은 눈썰매장을 개장해 선보여주었다. 우리는 뒤늦게 다른 친구들이 쉬는 동안 만들어놓은 눈썰매를 꽤 여러 번 탔다. 비탈길을 따라 면세점 비닐 봉투를 타고 쑥 내려가는 눈썰매는 다시 올라오는 것은 힘들어도 참 재밌었다.
길다면 긴 여행의 중간.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각자 충만하게 하루를 잘 보낸 우리는 한 고비를 넘어 다음 여행도 꽤 씩씩하게 해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에도 우리는 오로라가 우리에게 와주길 기다렸다. 어슴푸레할 뿐 명확한 색은 아니었으나 오로라는 우리를 맞이하러 다가와주었고, 그런 하루를 감싸며 밤은 깊이 지나가고 있었다.
디르홀레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 이곳에서 검은모래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다. 높은 언덕에 있어, 바람이 아주 거세고 겨울엔 길이 얼어 있어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가야 한다.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고 매점 등이 없어서인지 유료화장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레이니스피야라 비치
디르홀레이에서 내려다본 검은모래해변이 이곳인데, 커다란 주상절리 절벽과 검은모래가 펼쳐져 있다. 파도가 센 편이라 파도의 상태를 알려주는 경고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