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동굴의 벽에 손바닥을 올려보면

순환 속에서 영원히 계속됐으면 하는 것도 있어

by 이느긋

사라져 가는 것들 가운데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여러 순간들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다이아몬드 비치와 요쿨살론을 본 후, 빙하 트레킹을 할 차례였다.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근처에 가볼 만한 곳을 찾던 중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얼음동굴이었다. 파랗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얼음동굴을 보며 우리를 안내해 주는 메이트에게 여기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그가 다른 가이드에게 연락해 사륜구동 지프를 타고 이동해 들어가면 탐험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얼음동굴 탐험을 나섰다.


이곳의 모든 관광지가 외따로 떨어져 있어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구나 생각하긴 했으나 얼음동굴로 가는 과정은 더욱 그랬다. 우리 차를 타고 가다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지점에서 가이드를 만나 슈퍼지프라 불리는 커다란 차로 이동해 다시 길을 달렸다. 나는 우리가 가는 빙하의 위치를 저장하려 구글맵을 켰으나 인터넷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내가 인식하는 ‘바깥’과는 이어질 수 없다는 양, 슈퍼지프의 커다란 바퀴만이 크게 덜컹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던 차가 어느 벌판에 멈춰 섰다.


가이드는 아이젠과 라이트가 장착된 헬멧을 건네며 지금부터는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가져온 아이젠을 보여주었다.


“우린 아이젠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약해서 안 돼요.”


과연 그가 건네준 아이젠은 우리의 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견고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단단히 무장한 채 얼음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커다란 설산 안쪽에 있어 들어가기 전부터 냉기가 쏟아져 나올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얼음동굴은 여타 다른 동굴과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원래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을 것 같은 사방이 얼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에 힘을 싣고 한 걸음씩 옮겼다. 동굴 안은 좁았고 손에 닿는 곳은 모두 매끄러웠지만, 나는 아무것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몸을 둥글게 말고 걸어갔다.


얼음동굴은 빙하수가 녹아내려 생성된 동굴이다. 그래서 11월에서 3월 사이에만 볼 수 있고 그 외의 계절에는 얼음이 녹아 얼음동굴이 없거나, 녹아가는 상황에서 안전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입장이 제한된다고 한다. 얼음동굴 내부는 어둑하면서도 푸른빛이 조약돌처럼 빛났다. 햇볕을 받으면 푸른색이 되는 그곳은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며 빛이 차단될수록 검게 일렁이는 물결처럼 어둑해졌다. 그래서인지 걸음마다 등산화와 아이젠이 짓누르는 무거움을 제외하면 검은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동굴을 탐험하는 동안은 아주 겸손해져야 했다. 우리는 허리를 굽히며 어기적거리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고, 무릎을 굽히고 바닥을 기기도 했으며, 천장을 향해 난 동그란 구멍을 통해 하늘을 올라다 보았다. 그러다가도 매끈한 벽면에 손바닥을 대 보거나 옆에 쌓인 눈발 위에 그림을 그려보는 등 고대의 사람들이 했을 법한 흔적 남김-적당히 소심한-을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어둠 속에 들어갔을 때는 멀리서 반짝이는 푸른빛들을 보면서 동굴 속으로 깊이 몸을 숨겼다.


동굴 탐험을 끝나고 나오자 널따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다시 같은 길을 걸어서 저 멀리 세워둔 차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 말고도 탐험을 온 사람들이 일렬로 걸어가는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길을 가던 중 중간에 작은 냇가가 보였다. 가이드가 마실 수 있는 물이라며 마셔보길 권해서 마침 갈증이 나던 터라 가방에 달랑달랑 매달고 다니던 휴대용 컵으로 물을 마셔보았다. 머리가 아릿해질 정도로 시원한 물이었다.


앞서 말했듯 얼음동굴은 11월에서 3월 사이의 겨울에 형성되고 여름에는 녹아 없어지는데 그마저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겨울이 되어도 단단히 얼어 있지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해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주홍빛 노을이 아닌 커다란고 노란 해가 그대로 지평선 너머로 환하게 내려가는 풍경이었다. 슈퍼지프차에서는 가이드가 틀어둔 이름 모를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탄한 길을 달리는 동안 졸음을 깨우기 위해서인지 고조되고 심오한 비트가 울리는 노래들이었다. 바깥으로는 평화로운 장면이 보이는 가운데 속으로는 격정을 느끼면서 우리는 타고 온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차츰 밤이 오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경탄한 후에 이 장면이 이제는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 한쪽이 짓눌린다. 이 커다란 곳에 아주 작은 내가 발자국을 남기는 일 또한 그것을 소멸 가까이로 데려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과한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런 식으로 기울었던 생각은 숙소로 돌아가 오로라를 기다리며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양팔꿈치를 맞대고 모여 한 끼 식사를 나누는 시간을 기꺼워하며 점차 옅어졌다.


이곳에 있는 동안 가장 선명하게 느낀 감각은 인간의 삶은 커다란 순환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본 지구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들었던 것도 기억났다. 나는 아침을 맞이하고 밤을 보내고, 여행을 시작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세상에 없을 풍경을 보고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수많은 시작과 끝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이 얼음동굴은 그 순환의 어디쯤에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얼음동굴

매년 겨울에 생성되고 여름이 되면 녹는다. 해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동굴이라 그 형태가 매번 달라진다고 한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푸른빛의 얼음동굴을 볼 수 있다. 다만 동굴이 다 그렇듯 천장의 높이가 낮거나 비좁아서 이동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등산화와 아이젠 그리고 헬멧 착용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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