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는 여전하고 어제와 조금은 달라졌겠고

오랜 시간을 지나 오로라가 돌아올 때쯤, 또 만나러 갈게!

by 이느긋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비교적 평범한 나날들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작업실을 두 번 옮겼고 짤막한 외주 편집 작업이 오갔으며 어떤 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어떤 일은 마무리되었다.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고 제안하며, 그 일이 어떻게 완성될지 막연한 것들을 구체화해 보다가도 실체 없는 걱정으로 비관하거나 대책 없이 낙관하기도 한다.

그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평소의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사람이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특히 나같이 걱정이 습관인 사람은 그걸 떨쳐내는 일이 쉽지 않다. 30년 이상을 살아버리고 원래 가진 성격에 가치관까지 덧대어져 버린 나와 타인의 간극은 더 촘촘하고 세밀하게 벌어져 있다. 나 또한 삶의 희로애락 속에서 벼려진 성격이니 남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은 어떤 날엔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어떤 날엔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허무주의로 뻗을 때가 가장 슬프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굵직한 선 안에서 조금씩 변화하려 꿈틀대는 내가 있다.


가령 나는 2022년까지는 물에도 뜰 줄 모르는 맥줏병이었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8시까지 누워 있어 아침잠이 많은가 보다 했지만, 사실은 알람 없이도 7시에 눈을 뜨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걱정이 많은 날에는 어떤 일을 하루 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자정이 지나기 전에 저지르기로 했다. 한 가지 생각을 오래 이어가지 말고 일단 행동으로 옮긴 뒤 그 일로 생겨난 새로운 걱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심플한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삼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원래 나라는 인간이 가진 성질과 형성되어 온 성질을 바꾸려 노력 중인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나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심지까지 없애고 싶지는 않다. 변화를 위한 이 발버둥이 계속되다 보면 내가 그리는 나선의 각도도 조금씩은 바뀌리라 믿는다.


오로라는 태양의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며 11년을 주기로 흑점이 많아졌다 적어졌다 반복한다고 한다. 오로라를 상상했을 때, 많아진다거나 적어진다고 하는 표현은 어째 오로라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다가왔다 멀어진다는 표현이 좋다. 아무튼 오로라가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오는 것이 2024년과 2025년이며 이때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다고 들었다. 그게 올해 오로라를 보러 떠난 결정적인 이유였다. 2025년까지 지나고 나면 오로라는 다가오는 것이 아닌 멀어지기 위한 여정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아마도 1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일 것이다.


올 초 2월부터 끝자락의 12월까지. 종종 아이슬란드에 두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기다랗게 뻗어서 어디로든 훨훨 뛰어다닐 수 있을 듯한 거인 같은 그림자, 풀어두어야 할 곳을 몰라 내내 끌어안고만 있었던 얼룩진 마음, 이곳에 일상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 같은 것들. 아이슬란드는 드넓은 곳이니 두고 온 것들은 내가 심어둔 곳에 아주 꽁꽁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다시 아이슬란드에 가면 다시 그걸 꺼내볼 수 있을까. 11년이란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니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내 인생의 시간을 새롭게 쌓아가는 동안 나는 과거의 것을 많이 잊을 것이고,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숨겨두고 온 것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머나먼 그때를 생각하는 마음은 말끔히 접어두도록 하자. 모든 걱정은 막연한 상상에서 비롯되는 법이니까.


올 한 해 동안 마음을 환기시켜보고 싶을 때는 아이슬란드에서 보낸 떠올렸다. 나는 그곳을 다녀가며 그곳과 이곳을 잇는 창문을 하나 만들어두고 온 것만은 확실하다. 마음이 더워질 때마다 그 창을 열어 쾌청한 바람을 들여보내면서 2024년을 살아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올해를 마무리하기 전 아이슬란드 여정의 문을 닫는 것도 퍽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먼 여행을 오로라가 다시 돌고 돌아 우리 가까이 왔을 때, 내가 기꺼이 오로라를 다시 만나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슬란드 여행 속 쿠키들


스노우피크 캠핑컵

오로라를 기다리며 물을 많이 마시게 될 것 같아 혹은 야외 식사가 많을 것 같아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캠핑컵을 구매했다. 친구들 세 명과 같이 사서 가방에 매달고 다녔는데 위스키를 마실 때도, 냇가의 물을 마실 때도, 차를 덜어 마실 때도, 심지어 차 안에서 과자를 덜어 먹을 때까지! 쏠쏠하게 쓸모가 많았다.


피크민을 찾아서

한 친구가 피크민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며 소개해주었다. 한때 유행했던 '포켓몬 GO'처럼 직접 움직이며 걸음수를 채워 레벨을 올리는 시스템인데, 피크민이 얻어온 모종을 심어서 뽑으면 새로운 피크민이 생기고, 그렇게 피크민 친구들을 많이 만들면 얘들이 열매도 채집해 오고 버섯 전투에 나가서 엽서도 얻어온다. 처음엔 게임을 깔고도 사용법을 잘 몰라 새싹에 뭘 해야 하는 거야? 하면서 냅다 꽃을 심어댔던 기억. 차를 타고 떠나야 하는데도 5분만! 을 외치며 더 버티다가 결국 꽃을 피우고 떠났던 기억들. 여행에 돌아오고 난 뒤에도 레벨이 오른 피크민이 아이템을 가지고 오기까지 100일이 넘게 걸렸었다.

나도 그렇게 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았을걸.



최애 초콜릿 Hraun

아이슬란드의 마트에서 산 초콜릿 중에 가장 입맛에 맛있던 초콜릿. 원래도 씹는 맛을 좋아해서 아삭아삭 씹히는 크런키 타입의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이 초콜릿 식감이 너무 좋았다. 아무래도 포장이 예쁘다 보니 보통 선물로 옴놈OMNOM 초콜릿을 많이 사는 편인데, 맛있는 건 이 초콜릿. 특히나 위스키 안주로 정말 잘 어울렸다. Hraun은 아이슬란드어로 '용암'이라는 뜻인데, 크런키가 와글와글 붙어 있는 모양이 용암을 연상케 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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