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도
2016년, 네 번째 인도 여행 중이었다. 인도 동북부 아쌈(Assam)주의 작은 마을 보코(Boko)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인도의 ‘시골 현장’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그다음 여정은 ‘외뿔코뿔소의 고향’이라 불리는 카지랑가 국립공원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늘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변수로 일정이 틀어졌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방향을 틀었다. 카지랑가 대신 시킴(Sikkim)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마나스 국립공원(Manas National Park)으로 가기로 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호랑이의 숲’이라는 별명까지 달고 있는 곳이었다.
마나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호랑이가 먼저 떠올랐다. 자연은 대개 ‘풍경’으로 남지만, 이곳은 ‘존재’로 기억될 것 같았다. 야생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행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나는 그 중심을 확인하러 가는 사람처럼, 조금 들뜬상태로 구와하티(Guwahati)에서 기차를 타고 바페타 로드(Barpeta Road)로 향했다.
바페타 로드의 공기는 도시보다 거칠었고, 소리는 더 단순했다. 작은 역, 작은 마을, 작은 숙소. 다음 날 아침 일찍 차를 한 대 대절해 마나스로 들어갔다. 차가 포장도로를 벗어나 자갈길에 올라서는 순간, 여행의 질감이 바뀌었다. 바퀴 아래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튀어 올랐고, 차는 규칙 없이 흔들렸다. 길은 어찌나 곧던지, 멀리까지 한 줄로 늘어섰다.
국립공원 어귀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은 건, 예상보다 ‘아기자기한’ 안내판이었다. “MANAS NATIONAL PARK”라는 커다란 글자 아래, 숲과 강과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고, 호랑이와 코끼리, 새들이 장난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지도 속에서는 모든 동물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지도 상단, 산이 겹겹이 이어지는 부분에는 자그마한 하얀 글씨로 ‘BHUTAN’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 한 단어가 그림의 분위기를 바꿨다. 이 숲은 국립공원이면서 동시에 인도와 부탄의 국경이기도 했다. 호랑이를 보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먼저 맞이한 건 ‘국경’이라는 단어였다.
운이 좋으면 야생 호랑이를 볼 수 있다는 이곳에서, 나는 끝내 호랑이를 마주하지 못했다. 대신 야생 코끼리 무리의 기척을, 그리고 수풀 사이를 스치는 다른 동물들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때가 있다. 나는 호랑이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는데, 숲은 내 기대와 무관하게 자기 리듬대로 살아 있었다. 눌린 풀, 젖은 흔적, 멀리서 가지가 뚝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 호랑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겪는 것’이 먼저였다.
차를 타고 국립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길은 더 거칠어졌고, 어느 구간에서는 앞차를 따라가듯 속도를 낮춰야 했다. 앞에는 빨간색 부탄 번호판을 단 흰색 밴이 달리고 있었다. 자갈길 위에서 그 번호판의 붉은색은 유난히 또렷했다. 나는 기사님께 물었다. “저 차는 부탄 차예요?”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부탄 차량도 이쪽으로, 인도 차량도 저쪽으로 국경 마을까지는 별도의 통행증 없이 ‘그냥’ 오간다고. 말끝에 붙은 단어는 ‘자유롭게’였다.
자유롭게. 그 단어가 이상하게 귀에 걸렸다. 국경 앞에서 ‘자유롭게’라는 말은 조금 낯설다. 국경은 원래 질문을 낳는 장소 아닌가.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 질문이 생략된 채 길만 이어져 있었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신기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정말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막지 않는다고?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강이 나타났다. 부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나스 국립공원의 북쪽 끝이었다. 이곳에는 식당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기사님과는 오후 다섯 시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상하게도 여기서는 숲보다 강이 더 ‘경계’처럼 느껴졌다. 숲은 품고, 강은 가른다. 건너편의 능선은 희뿌옇게 겹쳐 보였고, 그 방향이 부탄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현실처럼 다가왔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맵을 확인했다. 국경선으로 보이는 굵은 선이 화면 위에 그어져 있었다. 지도에서 선은 단단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선은 너무도 투명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 보았다. 그러자 작은 임시 초소 같은 건물이 하나 나왔다.
‘여기가 국경이라고?’ 현실의 국경은 너무 단출했다. 작은 건물 하나, 초소 같은 구조물 하나, 그리고 길 위로 비스듬히 뻗은 차단봉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차단봉은 누구나 통과할 수 있도록 들어 올려져 있었다. 누군가 막는 사람도, 여권을 검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부탄의 한 마을이 나온다고 했다. 그곳까지는 특별한 비자나 통행증 없어도 누구나 다녀올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부탄 번호판을 단 차량이 인도 쪽 마을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고, 인도 번호판을 단 차량이 별일 없이 북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국경’이라기보다 그냥 ‘길’처럼 느슨하게 이어진 풍경이었다.
검문소 옆 길가에는 “MANAS HOTEL”이라고 적힌 파란 간판이 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분명히 “PANBANG : BHUTAN”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전까지 부탄은 늘 멀리 있었다. 마음만으로는 못 가는 나라, 돈과 시간과 절차가 한꺼번에 허락해야만 가능한 나라. 그런데 그 부탄이 간판 한 장으로 이렇게 가까워졌다. 가까워진 만큼,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국경 너머에는 ‘환영 문구’도 있었다. 오래된 안내판에는 부탄 정부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WELCOME TO MANAS RANGE” 같은 문구가 퇴색한 글씨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안내판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섰다. 마나스 국립공원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에 걸쳐 있었다. 인도 쪽은 마나스 국립공원, 부탄 쪽은 로열 마나스 국립공원. 같은 숲이 다른 이름을 가진다는 사실이, 그제야 피부로 들어왔다.
허름한 체크포인트에는 누구도 없었다. 국경을 상징하는 것들은 있는데, 국경의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쪽 부탄 국경으로 조금 걸어가도 되나요?”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 길 따라 조금만 가면 마을이 나와요. 거기까진 다녀올 수 있어요.” ‘조금만.’ 여행자에게 이 말은 위험할 만큼 매혹적이다. 입국 심사대 앞에서 찍는 도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문이 되는 순간. 나는 그 말에 홀린 사람처럼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은 산으로 붙어 올라갔고, 길 옆의 풀과 나무는 국경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공기는 아주 조금 서늘해지는 듯했고, 그 변화가 나를 더 들뜨게 했다. “정말로 넘어가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과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유혹이 번갈아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는 스마트폰 지도를 한 번 더 꺼내 보았다. 화면 속 내 위치를 가리키는 파란 점은 이미 국경선 너머에 있었다. 그러나 내 발밑의 흙은 같은 숲에 불과했다. 국경선은 화면 속에서는 존재했지만, 현실에서는 바람처럼 느슨했다. 이상하게도 그 느슨함이 더 무서웠다. “괜찮다”는 말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특히 ‘국경’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길은 조용했고 하늘은 맑았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계속 마음을 건드렸다. ‘이래도 되나?’라는 질문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유혹이 번갈아 고개를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오가는 두 문장을 듣고 있었다. 맞는지, 틀린 지. 갈지, 말지. 여행은 때로 바깥의 길보다 안쪽의 갈림길이 더 복잡하다.
한 시간 반쯤 걸었을까. 마을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를 잡아 히치하이킹을 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산해야 했다. 무엇보다 바페타 로드로 돌아가는 기사와 약속한 시간이 촉박했다. 내 호기심 때문에 누군가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겁도 났다. 돌아갈 때 누군가 나타나 “여권을 보여 달라”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내밀 수 있을까. ‘아무도 없어 조금만 걸었다’는 말은 국경 앞에서 너무 가볍다. 그리고 가볍게 시작한 일은 대개 무겁게 끝난다.
결국 아쉬움을 삼킨 채 발길을 돌렸다. 그것은 ‘사건’이라 부르기엔 작았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넘기기엔 묘하게 무거운 체험이었다. 정식 절차를 밟아 들어간 것도, 국경 마을까지 닿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도 위의 선을 잠시 넘어섰다가, 다시 되돌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잠시’가 내게는 오래 남았다.
그날 내가 부탄에서 본 것은 사실 별게 없었다. 인도에서 부탄으로 이어지는 흙길, 차단봉이 올려진 채 방치된 듯한 체크포인트, 마나스 강물의 반짝임,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왔다 갔다 하던 두 문장 ‘이래도 되나?’와 ‘여기까지 왔는데’. 지도 위에서는 국경선이 또렷했지만,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연에는 국경이 없었다.
나는 다시 인도 쪽으로 걸어 내려오며 카지랑가의 이름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나는 그곳에서 외뿔코뿔소와 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종종 ‘가지 못한 곳’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보지 못했는데도 마음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풍경이 있다.
바페타 로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창밖의 초록이 뒤로 밀려났다. 마나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자리에 남아 있었고, 나는 내 안에서만 소란스러웠다. 그날의 경험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가보았는가’로 남았다. 그리고 그 애매함이, 이상하게도 나를 다음 길로 밀어 올렸다. 카지랑가의 평지 대신 더 높은 곳으로. 더 멀고, 더 차갑고, 더 낯선 방향 시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