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잠비아

02

by 비주류여행자

작고 초라한 국제공항


2011년 5월 8일, 나는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루사카 국제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꽤 들떠 있었다. 미국에서 영국을 거쳐 여기까지 오는 길은 멀고도 길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피곤함보다도 ‘드디어 왔다’는 실감이 먼저 밀려왔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든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다.


‘수도의 국제공항이 이렇게 작을 수 있나?’


공항 규모가 크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루사카 공항은 낮고 길게 뻗은 건물 하나가 활주로 옆에 놓여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공항에는 그 흔한 탑승교도 하나 없었다. 사람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를 직접 걸어 입국심사장이 있는 건물 쪽으로 향했다. 벽면에는 은행 광고와 큼직한 간판들이 붙어 있었고, 건물 입구에는 WELCOME TO ZAMBIA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그제야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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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정말 잠비아에 왔구나.”


하늘은 막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공항 조명은 켜져 있었고, 멀리 지평선은 옅은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작고 단순했지만, 그래서 더 직접적이었다. 세련된 국제공항의 느낌보다는 낯설고 소박한 현실이 먼저 다가왔다.



아케이드 몰에서의 작은 선택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현지 단체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차에 올랐다. 그리고 몇 마디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비행은 어땠어요?”


“많이 피곤하시겠네요.”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많이 지쳐 있었다. 다만 그 피곤함 위로 다른 감정들이 겹쳐 있었다.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 앞으로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 그리고 정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긴장감. 그때 내 마음속에는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었다.


“정신 차리자. 지금부터가 진짜다.”


공항을 나온 차는 곧바로 루사카 시내 쪽으로 향했다. 여행이었다면 창밖을 보며 풍경을 즐겼을 것이다. 거리의 표지판도 읽고, 사람들 옷차림도 보고, 시장이 있으면 저긴 뭘 파는 곳일까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여행이 아니었다. 나는 감상에 잠길 틈도 없이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루사카 시내로 가는 길, 우리는 아케이드 몰(Arcades Shopping Mall)에 잠시 들렀다. 직원은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서 사라고 했다. 몰은 생각보다 컸다. 영화관은 물론 식당과 카페도 있었고, 큰 슈퍼마켓도 보였다. 잠깐 보기엔 루사카도 꽤 도시 같았다. 적어도 이 안에서는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순간 마음이 조금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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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고, 머리는 멍했고, 무엇보다 그날의 나는 여행자 모드가 아니라 파견자 모드였다. 여행이었다면 “일단 사고 보자”는 식이었을 테지만, 그날은 “어차피 거기에 가서도 살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마 그때의 나는 도착의 흥분과 피로 속에서 판단이 조금 흐려져 있었을 것이다. 그 결정이 나중에 얼마나 뼈아플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곳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게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곳까지도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가야 했고, 그마저도 샴푸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거기서 샴푸는 생필품이 아니라 거의 사치품에 가까웠다는 걸. 그날 아케이드 몰에서 샴푸 하나를 사지 않은 일은 아주 사소한 실수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내가 앞으로 어떤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첫 장면이었다. 나는 여전히 도시의 상식 안에서 판단하고 있었고,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은 그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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