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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Feb 20. 2020

너바나 이전, 지하에는 다이노소 주니어가 있었다

다이노소 주니어의 <You're Living All Over Me> 리뷰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는 록 씬의 진형을 거꾸로 뒤집어버리는 얼터너티브 혁명의 선봉에 서며 X세대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지만, 그들의 음악이 난데없이 짠-하고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소닉 유스를 비롯한 여러 선배 밴드들, 특히 다이노소 주니어가 선보인 lo-fi 감성의 노이지한 기타 사운드는, 키치와 단순성 위에 선 펑크 록의 이념을 충격적인 모습으로 재구성하여 전시하며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씬의 주체들을 자극했다. 1987년에 발매된 다이노소 주니어의 2집 앨범 <You're Living All Over Me>는,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 더 나아가 오늘날 인디와 언더그라운드 씬 전반에 걸쳐 정석으로 자리잡는 기타 록 사운드를 처음으로 선보인 고전들 중 하나다.


<You're Living All Over Me>의 첫 번째 트랙, "Little Fury Things"의 뮤직 비디오.


소음으로부터 자유를 모색하기


  70년대를 거치며 반문화에서 주류 문화로 올라선 된 록 음악 생산의 주체들은, 음반 산업과 결탁하며 대중과 구별되는 엘리트가 되어 갔다. 이로 인해 음악예술의 생산과 소비는 엄격히 분리되고, 소비자는 수동적 객체의 지위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는데, 가령 방구석에서 록 음악을 듣는 10대 록 키드들이 어느날 갑자기 지미 페이지나 프레디 머큐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경향에 맞서 자생적 음악 생산의 공간을 고민하는 움직임은 언제나 꿈틀거려왔고, 펑크 록의 충격적 등장은 이후 언더그라운드라는 공간과 인디라는 문법을 통해 누구나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음악예술의 토대를 마련했다.


  80년대에는 펑크 록의 문법에 디스코나 월드 뮤직 따위를 섞으며 대중음악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 '뉴 웨이브' 운동이 인기를 끌었는데, 동시대의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뉴 웨이브 음악의 몰개성과 대중지향적 성향에 반발하며 음악예술의 전위를 지키고 실험을 계속해 간 '노 웨이브'가 등장했다. 노 웨이브의 주요한 문법이 된 노이즈 록은, 펑크 록의 단순한 구성 위에 록 음악에서 사용되는 기타 따위의 악기들을 이용해 분절된 소음들을 늘어놓고 이를 콜라주해 음악으로 전화시키는 형태를 보여줬다. <You're Living All Over Me>는, 다이노소 주니어의 다른 앨범들이나 소닉 유스의 앨범들과 함께 노이즈 록의 방법론을 처음으로 선보인 소중한 '사료'라고 할 수 있겠다.


  <You're Living All Over Me>에서 드러난 다이노소 주니어의 노이즈 록 실험은, 얼핏 보면 같은 전선에서 활동했던 소닉 유스와 유사하지만 여러 지점에서 차이점을 보여준다. 가령 소닉 유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서스틴 무어는 딜레이나 리버브, 그리고 공간계 이펙터를 통해 표류하는 잔향과 부유하는 공간감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고 이를 통해 슈게이징의 등장을 암시했다. 하지만 다이노소 주니어의 기타리스트 제이 마스키스는 이에 비해 좀 더 단촐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기타 노이즈를 만들어간다. 그는 마치 지미 헨드릭스가 그랬던 것처럼 퍼즈와 와를 활용하며, 헤비하면서도 어딘가 지저분하고 찌그러진, 해상도 낮은 lo-fi 감성의 기타 소음들을 시끄럽게 갈겨댄다. 이는 슈게이징보다는 하드코어 펑크에 가까운, 좀 더 직관적인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앨범 수록곡 "Sludgefeast"의 라이브.


다이노소 주니어, 무기력과 함께 춤을


  <You're Living All Over Me>에서 다이노소 주니어의 멤버들은 어딘가 힘이 빠져 있고 시종일관 무기력하다.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제이 마스키스는, 손가락이 가는대로 기타를 연주하며 불협화음을 늘어놓고, 중얼거리듯 무성의하게 노래한다. 베이시스트 루 발로우는 마치 침잠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으며 반복적인 코드를 강박적으로 둥둥댈 뿐이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역동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누구나 대충 부를 수 있는 노래와 누구나 대충 칠 수 있는 간결한 코드 위에서 선보여지는 우울은, 다이노소 주니어의 시종일관 수동적인 태도로 인해 마치 절제된 듯 보이나, 방종하게 전진하기에 록 음악의 규정된 태도 바깥을 넘나드는 운동성을 가진다. 요컨대 <You're Living All Over Me> 속의 다이노소 주니어는, 무기력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다이노소 주니어의 멤버들. (왼쪽부터) 베이시스트 루 발로우, 드러머 머프, 프론트맨 제이 마스키스. @IMDb.


가장 날 것의 다이노소 주니어, 가장 날 것의 노이즈 록


  얼핏 들었을 때 다이노소 주니어는 "대충대충" 정신으로 일관하는 밴드 같지만, 리더 제이 마스키스는 독창적 문법의 구축에 엄격히 매달리고 천착하는 인물이다. 가령 <You're Living All Over Me>라는 앨범의 제목은, 음악작업에 시시건건 개입하고 명령하는 독재자 제이 마스키스에게 대해 루 발로우가 터트린 불만 ("너는 내 머리 꼭대기에 서서 혼자 다 해 먹으려고 해!") 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니.


  <You're Living All Over Me>는 제이 마스키스의 이러한 야심이 다이노소 주니어 고유의 개성으로 가장 고유하게 드러난 결과물이기도 하다. 가령 3집 <Bug>(1989)에서부터는 성공한(?) 선배 노이즈 록 밴드 소닉 유스나 잘 팔리게 된 그런지 음악의 문법을 편히 답습하려는 의도들이 중간중간 드러나는데, 이 앨범에는 하드코어 펑크와 노이즈 장르의 경계에서 다이노소 주니어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부단한 고민과 노력이 가장 집중되었고 또 이러한 면모가 결과물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후대의 너바나같은 펑크 기반의 그런지 밴드들에게 계승되며 완성된 모습으로 구축되기에 이른다. 만약 당신이 그런지 음악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그것의 원형을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앨범을 들어보아야 한다.


<You’re Living All Over Me>

아티스트: Dinosaur Jr.

발매일: 1987년 12월 14일

장르: 얼터너티브 록, 인디 록, 노이즈 록

레이블: SST

자파의 평점: (9/10 - "훌륭한 명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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