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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Mar 09. 2020

라디오헤드 이후의 라디오헤드

라디오헤드의 앨범 <Kid A> 리뷰

<OK Computer>와 함께 세기말 얼터너티브 록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 라디오헤드는, 새천년을 맞이하며 공개했던 4집 <Kid A>에서 자신들과 록 음악의 문법을 근원부터 무너트리는 급진적 실험을 보여주었다. 올해로 <Kid A>는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하지만, 이 앨범이 보여주는 해체주의의 면모는 여전히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Kid A>의 20주년을 맞아, 대중음악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안티테제로 남은 본 작을 다시 들어 보았다.


 라디오헤디즘과 <Kid A>

 

  라디오헤드는 어느덧 대중음악의 힙스터적 대안을 상징하는 기표가 되었다. 라디오헤드의 성취에는 음악적 문법의 확장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들의 성실성이 크게 기여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 성실성이라는 것은 '라디오헤디즘'이라는 변증법적 기획의 충실한 수행으로서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Creep"을 부르던 젊은 라디오헤드는 그런지의 문법을 빌려와 자기 연민적 서사를 풀어내는 아웃사이더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우울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피해 서사에 천착하는 기존의 문법에 의문을 제기하고(<The Bends>), 결국에는 인간소외와 물신화가 야기한 보편적 경험들을 증언하는 방식(<OK Computer>)으로 나아간다.


  일련의 확장적 과정 속에서 사이키델릭과 아트 록의 실험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라디오헤드는, 매너리즘에 물든 브릿 팝의 몰락 이후 세기말 영국 록음악의 지배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톰 요크와 라디오헤드의 멤버들은, 이른바 ‘라디오헤디즘’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된 그들의 음악적 문법이 자기 복제를 낳고 스스로의 음악적 반경을 제약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동시에, 이들은 록 스타라는 신화에 대한 환멸과 기타 위주의 밴드 편성에 대한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Kid A>는 라디오헤디즘이 봉착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문법을 뒤엎는다. <Kid A>에서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드럼으로 구성된 록 사운드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Kid A>의 장르적 성격을 록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 명쾌히 규정해내기란 쉽지 않다. 본 작의 어떤 부분에서 라디오헤드는 재즈적 문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캔버스에 색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또 다른 부분에서, 이들은 앰비언트에 영향받은 전자 리듬악기, 그리고 악기로서 활용되는 톰 요크의 목소리로 최소한의 공간만을 메꾸기도 한다. <Kid A>는 마일스 데이비스일 수도, 핑크 플로이드일 수도, 크라프트베르크일 수도 있으나, 그들 모두 <Kid A>는 아니다. <Kid A>는 모호성 위에서 록 음악이라는 형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해내는 탈근대적 실험에 가깝다. <Kid A>의 이러한 성격은 초기 라디오헤디즘은 물론이고, 20세기 록 음악 전반에도 가장 강력한 안티테제로서 작용한다. 해체주의 터미네이터 톰 요크!

“내 머릿속에 두 가지 색이 있었다.”

 

<Kid A>의 첫 트랙,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모든 것은 제자리에
모든 것은 제자리에

나는 레몬을 핥으며 깨어났네
나는 레몬을 핥으며 깨어났네

내 머릿속엔 두 가지 색이 있었네
내 머릿속엔 두 가지 색이 있었네

당신은 무엇을 발화하려 했는가
당신의 언어는 무엇이었는가..."

-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중.


  이제 <Kid A>의 서사에 주목해보자. 본 작의 서두를 여는 곡은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다. 톰 요크가 노래를 시작할 때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다.’ 그러나 톰 요크의 팔세토 보컬과 기저에 깔리는 미니멀한 신디 사운드는 곧 불협화음으로 엉키며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화자의 사유 속에서 대립하는 두 관념의 투쟁 상황이 제시된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되물을 뿐이다. 그에게는 현상을 풀어낼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자아의 분절을 해명해내지 못한 화자는 결국 디스포리아에 봉착한다. 상이한 관념의 양자적 대립과 그것의 해명 불가능성이 <Kid A>의 서두에서 제시될 즈음에, 우리는 앞으로 이것이 어떠한 서사를 따라 극복되는지를 미리 그려볼 수도, 혹은 정상성으로의 회귀를 거부하는 새로운 결말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불확실성에 기반하여 주제의식을 진술하는 톰 요크는, 청자들에게 사유의 여지를 제공함과 동시에 디스포리아에 빠진 화자로의 몰입을 유도하고 있다.


<Kid A>의 두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트랙.
"나는 미끄러졌네
하얀 조그만 거짓말 위로 미끄러졌네

우리에겐 막대기 위에 달린 머리가 있지
너는 복화술을 하고 있어...

내 침대 끝에 걸린 그림자 위에 서 있네
내 침대 끝에 걸린 그림자 위에 서 있네

쥐들과 아이들은 나를 따라 마을 밖으로
쥐들과 아이들은 나를 따라 마을 밖으로..."

- "Kid A" 중.


  두 번째 트랙 "Kid A"는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상시킨다. 익명의 자아(kid a)는 거짓과 무의미한 시뮬라크르가 자신을 잠식하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기계음으로 독백하고 있는 그는, 인간성과 주체적 위치를 전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는 순수한 언어를 매개로 관계할 수 없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선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물성을 지닌 것으로 환원하고, 근대의 끝자락에서 물성을 지닌 모든 것들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으로써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주체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이미지에 포위되어 있을 뿐이다. 결국 온 마을의 쥐들과 ‘아이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데, 자신을 둘러싼 이미지들이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아이들'의 의식은 결코 주체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Kid A>의 세 번째 트랙, "The National Anthem".
"모두들
모두들 가까이에 있네
모두들 겁에 질려 있다네
그저 부여잡고 있다네..."

 - "The National Anthem" 중

 

  객체적 자아로 전락한 화자는, "The National Anthem"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소외된 군중들을 마주하게 된다. 화자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화자의 자아는 그를 둘러싼 타자들과 물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할 뿐, 합일을 이루지는 못한다. 군중은, 보편은 그저 겁에 질려 있다. 빅 밴드를 대동한 라디오헤드는 "The National Anthem"에서 프리 재즈의 즉흥적 요소들을 십분 활용하는데, 잼을 벌이는 금관악기들의 불협화음은 타자와의 간극에서 벌어지는 위화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Kid A>의 네 번째 트랙, "How to Disappear Completely".
"저기에 있는   
저건 내가 아니야 
나는 내가 바라는 곳을 향해 ...

나는 벽을 따라 걷고
리피 강을 따라 흘러가 

나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

시간이 흐르면 나는 사라지겠지 
이미 지나간 순간들, 그래 이미 사라졌어...

명멸하는 섬광과 고장  스피커들 
불꽃놀이, 그리고 폭풍들 
나는 여기에 머물지 않아 
나는 여기에 머물지 않아...”

- "How to Disappear Completely" .


<Kid A>의 다섯 번째 트랙 "Treefingers".

  화자는 즉자 존재적 위치에서도 디스포리아적 상황의 해소를 갈구한다. 무조성 현악을 활용한 "How to Disappear Completely"에서 이는 탈아적 방법을 통한 현실로부터의 도피로 이어진다. 상실을 겪은 자아는 리피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아이리시 해를 향해 정처 없이 흘러가지만, 도착한 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제시되지 않는다. 화자는 그저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전자음을 차곡차곡 쌓는 포스트록적 기법을 활용해 공감각적 공간을 연출해내는 "Treefingers"는, 관념 세계로의 의탁을 통한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를 앞 곡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있다.


<Kid A>의 여섯 번째 트랙 "Optimistic".
날파리들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고 
독수리들은 죽음을 맴돌며 
 부스러기들을 주워 간다네 
커다란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네
커다란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네 
하지만   바는 아니라네...

 자는 낙관주의자라네 
 자는 시장을 향해 갔네  
 자는 방금 늪에서 기어 나와 
화물들을 떨어트리고 가네...

최선을 다해보라고!
최선을 다해보라고!
최선을 다했다면 충분할 거야...”
 - "Optimistic" .


<Kid A>의 일곱 번째 트랙 "In Limbo".
룬디 , 페스트넷 바위, 아이리시 !
나는 읽을  없는 편지를 받았다네 
나는 읽을  없는 편지를 받았다네...

나는 당신의 편이고, 숨을 곳은 없다네 
함정의 문이 열리고 
나는 나선을 따라 추락해...

너는 환상 속에 살고 있어 
너는 환상 속에 살고 있어

- "In Limbo" .


   다음 두 트랙은, <Kid A>에서 전통적인 밴드 사운드를 가장 폭넓게 활용한 "Optimistic"과 "In Limbo"다. "Optimistic"에서 화자는 낙관적 자아를 회복한 걸까?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그려지는 것은, 여전히 모순적이고 투쟁적인 상황들뿐이다. 시장경제는 다윈적 약육강식의 질서 위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 리피 강의 종착점("In Limbo"에 등장하는 아이리시 해)에 도착해 화자가 받은 메시지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자아의 분절은 여전히 해명될 수 없는 것이다. 숱한 관계 속에 놓여 있는 듯 하지만 그것이 결코 언어로 매개될 수는 없음을 인식한 사람들은, 하강하는 나선과도 같은 우울의 늪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마치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가 앨범 <The Downward Spiral>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결국 "In Limbo"에서는, 소비주의적 실천이나 탈아적 수행 따위의 것들 모두 관념 세계의 허상일 뿐임이 인식되기 시작한다.


<Kid A>의 여덟 번째 트랙 "Idioteque".
누가 벙커에 있지? 누가 벙커에 있지?
여성과 아이들부터,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부터...

나는  머리통이 떨어질 때까지 웃어제낄테야 
토해내기 전까지 삼켜낼 거야 
토해내기, 토해내기 전까지...

여기에, 나는 살아있어 
 모든 ,  모든 시간 끝에 
여기에, 나는 살아있어 
 모든 ,  모든 시간 끝에...

엄혹한 빙하기가 다가오고 있어 
엄혹한 빙하기가 
모두의 이야기를 듣게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있게...”

- "Idioteque" .


  앰비언트 전자 악기만으로 앙상하게 빚어진 "Idioteque"에서, 익명의 자아는 인간소외를 직시한다. "How to Disappear Completely"에서 ‘나는 여기에 없음’을 주장하며 초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던 화자는, 이제 ‘나는 여기에 살아있음을, 이 모든 시간을 전부 살아냈음을’ 증언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선언을 통해 어떠한 보편이 된 화자는, 동시에 권력으로부터 가장 멀리 소외된("Idioteque"에서는 여성과 아동들이라는 상징이 사용되었다) 절대적 타자들에게 정치적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Kid A>의 아홉 번째 트랙, "Morning Bell".
아침의 종소리, 아침의 종소리여
다른 양초에 불을 붙여라 
나를 해방하라
 나를 해방하라...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 

우리를 위한 술잔이, 총이, 총알이 만들어질 테지 
모두들 친구가 되기를 바라지 노예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네 
걷고, 걷고, 걷고, 걷고, 걷고....”

- "Morning Bell" .


<Kid A>의 열 번째 트랙, "Motion Picture Soundtrack".
붉은 와인과 수면제가 
당신의  속으로 돌아갈  있도록 도와줬어요 
싸구려 섹스와 우울한 영화가 
내가 있어야  곳으로 돌아갈  있도록 도와줬어요 

아마도, 내가 돌아버렸다고 생각하겠죠 
내가 돌아버렸다고 생각하겠죠, 아마도 

편지는 그만 보내도 되어요 
편지는 언제나 불타버릴 뿐인걸요 
삶은 영화와 같지 않아요 
영화는 우리에게 하얀 조그만 거짓말을 건넬 뿐이에요...

다음 생에 봐요

-"Motion Picture Soundtrack" .


  결국 익명의 자아 ‘kid a’가 겪던 디스포리아는 극복되었을까? 톰 요크는 해답을 규정짓지 않는다. "Morning Bell"에서 화자는 ‘나를 해방하라’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고 읊조린다. 여기에서 엿보이는 것은, 대립되는 두 관념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지 못한 분열적 자아다. "Modern Picture Soundtrack"와 "Untitled"를 통해, <Kid A>의 여정은 우울한 무조성 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의 여운으로 마무리될 뿐이다. ‘kid a’는 마지막으로 ‘불타버릴 뿐인 편지 따위 보내지 말라. 다음 생에서 만나자’는, 작별인사를 남긴다. 어떤 측면에서는 허무주의적인 결말로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다시 한번, 『Kid A』


  근대성과 탈근대성이 혼재하는, 그리고 마치 그것들이 이항대립적인 가치나 인식론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경계인들이 느끼는 혼란은 아직도 쉽게 진단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Kid A>에게는 교설과 같은 진단이 없다. 다만 그러한 경계인적 문제 상황을 제시하는 것에서 논의의 시작점을 만들 뿐이다.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에서 <Kid A>와 탈근대성을 분석한 브래들리 케이는, 리오타르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포스트모던은 할당된 수신인도 없고 딱히 정해진 이상도 없지만, 실험으로 가치가 측정되는 문학과 예술의 조건이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탈근대적 기획으로서의 <Kid A>는 스스로의 인식론에 충실하다. 그러나 <Kid A>는 거대 담론의 유효성에 대해 질문하면서 이것을 해체하려 듦과 동시에, 그러한 거대 담론의 기반 위에서 움직이며 때로는 이것의 회복을 바라는 듯한 말들을 넌지시 던지기도 한다. 무엇이 더 정합적인가는, 청자가 <Kid A> 속의 맥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Kid A>는 20세기 라디오헤드와 록 음악의 안티테제이자, 21세기 경계인들의 디스포리아를 비추는 조명이다. <Kid A>가 보여주었던 형식적 급진성이나, <Kid A>에 등장하는 익명의 자아가 꺼냈던 질문들 모두, 본 작의 발매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효한 의미를 가진다. 다시 한번 <Kid A>를 들어볼 때다.


<Kid A>

아티스트: Radiohead

발매일: 2000년 10월 2일

장르: 익스페리멘털 록, 일렉트로니카, 얼터너티브 록, 앰비언트, 크라우트 록, 포스트 록

레이블: Parlophone, Capitol

자파의 평점: (10/10 -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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