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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Oct 25. 2020

좀비 나사로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포스트-휴먼'

*일러두기: 이 글은 페이스북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에 같이 게재된 '개소리'입니다.



  문화연구자 김형식은 최근 『좀비학: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이하 『좀비학』)이라는 제목의 비평을 발표했다. 김형식은 좀비를 소위 ‘포스트-인간’에 대한 은유로 활용하고자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좀비’라는 상징이 등장한 양상들과 ‘포스트-인간’ 담론 그리고 이것을 야기한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진단을 시도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맑스를 헤겔적 혹은 ‘인간주의적’으로 경유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소외’적 현상들로부터, 인간 존재가 모든 주체성과 인식하는 타자들로부터 물화된 채 타자로서만 성립하는 상황을 목격해 온 바 있다. 한병철을 위시한 많은 탈근대 이데올로그들도 근본적으로는 위와 같은 전제를 이탈하지 않은 채 이를 나름의 인식틀로 조망하며 언어화해왔다. 인간이 노동을 전유할 수 없는 상황, 인간이 생산을 전유할 수 없는 상황, 인간이 관계성을 전유할 수 없는 상황, 인간이 주체성을 전유할 수 없는 상황 등은, ‘비체’, ‘이방인’, ‘경계인’과 같은 명명을 통해 다시고 드러나고는 했다.


  그런데 근대적 기술은 단순히 인간 존재의 관념적 분리나 생산 관계에서의 분리를 넘어서, 인간을 인간이라는 물성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해내는 것의 가능성을 시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능성은, 예컨대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이나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담론에서 드러난 ‘기계 인간’에 관한 긍정으로부터 파악된다. ‘인간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성을 더 이상 알레고리를 경유해 사유할 필요가 없어지는 시대에 ‘포스트-휴먼’ 이데올로기는 담론적 공간의 중심에 온전히 현현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지금은 물성으로서의 인간과 그것의 조건을 더 이상은 고려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다.


  다시금 『좀비학』으로 돌아가보자. 좀비는 이러한 탈인간적 인간, 비인간적 인간을 지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상징이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좀비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살린 나사로, 그리고 두 번째의 좀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역사가 사회정치적 구성체로의 인간관이 변증법적 경로를 거쳐 형성되어 온 일련의 흐름이라면, ‘포스트-휴먼’이라는 존재는 근대를 거꾸로 뒤집어 과거로 회귀할 때에 파악될 수 있는 신학적 존재에 가깝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근대의 부정(不正) 혹은 반(反)의 성격을 갖는 탈근대 담론이 지닌 원시회귀주의적 형질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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