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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Dec 24. 2020

근래의 ‘주체 영화’에서 묘사되는 북한 사회의 여성성

예술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를 중심으로


  1. 들어가며


  여러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여성 억압의 주요한 기제를 계급 문제로 진단하고, 계급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가 극복되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했을 때 여성 억압을 둘러싼 문제 역시도 해소될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스탈린 이후의 소비에트 연방을 위시한 20세기 실험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이데올로기적 여성성이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는 또 다른 방식을 통해 타자화된 형태로 구성되고 수행되어 왔다.


  하나의 생활세계 속에서 어떤 사회적 역할이 어떤 양상을 통해 수행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사회의 생활세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채 생산되는 문화예술을 검토하고 비평하는 작업이다. 위와 같은 방법론은 실험사회주의 체제를 들여다보기에 더욱이 유용한데,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 속에서 만들어내는 예술은 예술가들의 사고방식과 예술의 성격을 규정짓는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전제 하에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생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영화라는 ‘예술적 텍스트’를 매개로, 실험사회주의 체제였던 북한 사회에서 형성된 여성성과 그것의 수행 양식, 그리고 북한 사회에서 수행된 여성성의 실험사회주의적 보편성과 북한 사회만의 특수성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김정일은 『영화예술론』(1973)에서 주체사상에 입각한 조선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규명하고 영화창작의 세부적 지침에 대해 역설한 바 있으며, 이후 조선영화는 『영화예술론』의 방법론에 입각하여 창작되고 있다. 김정일 본인이 영화예술의 애호가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한 국가사회의 지도자가 영화예술 창작의 세부적 지침을 정하고 보급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영화예술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위상과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연구에서는 북한 영화에 등장한 여성 역할이 시기에 따라 어떤 양상으로 묘사되고 변모하는지를 비교 분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2.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의 세 가지 유형


  소련을 위시한 일반적인 실험사회주의 체제들에서 여성성은 세 가지 이데올로기적 상으로 유형화되었다. 하나는 ‘무성적 존재’로서의 여성,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전사’로서의 여성,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모성’으로서의 여성을 꼽을 수 있겠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근대적 가족 제도의 전형이 가사노동의 착취를 통해 이것이 생산하는 노동가치를 은폐함과 동시에 임금노동의 재생산에 기여한다고 규정한다. 근대적 가족 제도는 이와 동시에 노동계급 남성을 가부장으로 호명하며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가정에 대한 책임’으로 대체하는 이데올로기적 응고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실험 속에서, 여성이 가족과 남성, 요컨대 가부장에게 예속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성 이데올로기와 이것의 토대인 근대적 가족 제도는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맑스주의자들은 새로운 대안적 사회에서의 가족 제도와 젠더, 섹슈얼리티 실천에 관한 열띤 논의를 벌였고 이는 특히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같은 맑스주의 운동의 여성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시기의 사회주의자들은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던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령 이들은 국가 사회에서 양육 노동을 전담하는 탁아소를 위시하여 가족 영역에서 수행되던 여러 사회적 역할을 공공 영역이 대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갔다. 그러나 근대적 가족 제도와 여성성을 우회하거나 해체하며 새로운 이데올로적 여성상을 정립해가는 과정은 소비에트 연방이 근대적 국민국가에 대응하는 국가사회이자 공동체의 형태를 갖춰 가고 여기에서 당면한 과제에 대응해가는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는 예컨대 ‘적•백 내전’에서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에 이르기까지 소련과 여타 실험사회주의 체제가 마주한 전시 상황들, 그리고 공업화와 국민경제 구축 따위의 것들이었다. 더구나 맑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와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회주의 체제 내부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해가는 과정에서는 여러 좌익 반대파들이 숙청되었고, 이 과정에서 콜론타이를 위시한 여성 문제의 여러 논의 주체들 역시 자기들의 발언권을 잃었다.


  그러나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관한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논의가 구성되는 담론적 공간이 무너진 이후에도, 자본주의적 젠더와 섹슈얼리티 실천의 해체와 재구성은 여전한 ‘사회주의적 과제’였다. 여기에서 실험사회주의자들이 채택한 전략은 근대적 여성성을 폐기하고 이를 무성적 젠더 호명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아도르노적 의미에서 부정변증법적인 과정을 따르는 것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근대적 이데올로기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부정 그리고 소거에서부터 이러한 실천이 ‘근대 세계의 한계가 아닌 인간성을 부정하며 나아가도록’ 하는 셈이다. 가령 실험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되던 예속적 여성상을 부정했지만 이것을 대체하여 수행될 새로운 담론적 패러다임을 구축해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적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사회들에서 보편을 담지하는 것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을 구별짓는 경계를 해체하고 이들을 노동인민 보편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결국 ‘여성의 남성 되기’라는 지점에 봉착하여, 여성 정체성 당사자들의 실존하는 주체성과 억압을 은폐하기도 한다.


  ‘여성의 남성 되기’라는 전략은 스탈린 이후 2차 세계대전을 맞은 소련이 전시 동원체제, 즉 병영국가 형태의 국가사회로 재구축되는 과정에서 심화•발전되는 경향을 보였다. 당시 소련과 실험사회주의 국가의 선전들에서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것은 여성을 ‘남성 병사’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전시 상황에서 대규모의 군사력과 노동력에 대한 동원 수요를 가지고 있었던 사회주의 체제들이 노동인민 개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고취시키고 이들을 알튀세적 의미에서의 ‘주체’로 호명하여 대중이 여•남 구분 없이 자발적으로 ‘대조국전쟁’에 참여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근대 자본주의적 가족 제도’의 해체를 지향하지만 가족 자체의 해소에 도달하지 못했던 여타 실험사회주의 체제들에서 이데올로기적 호명을 통한 대중 동원의 필요성이 제시되는 상황은, 이들을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활용하는 데까지 퇴행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회주의자 전위들도 스스로의 낡은 젠더 이데올로기를 해소하거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담론적 패러다임을 구축해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이 전통적 모성에 호소하여 여성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호명하고자 하는 경향은 기실 러시아 혁명이라는 사회주의 실험의 계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가령 막심 고리끼의 노동소설 『어머니』(1907)는 맑스주의자 인텔리겐치아 아들을 둔 어머니가 아들의 혁명 운동을 모성애의 온정으로 지켜보다 감화되어 본인 역시 투철한 맑스주의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와 유사하게 ‘사회주의 인민’과 ‘노동인민 대중’을 자녀로 둔 모성에 호소하며, 여성들에게 혁명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선전은 오늘날의 사회주의 체제들에서까지 한 가지 경향으로 관찰되고 있다. 이는 요컨대 현실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가족 이데올로기가 극복되지 못한 지점과, 병영국가의 대중동원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파악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3. 김정은 이전 시대의 북한 영화와 여성성 연구


  반공 이데올로기가 맹위를 떨치던 오랜 분단 상황 속, 남한의 영화 연구에서 ‘북한’은 오랫동안 금기어였다. 남한의 연구자들이 북한 영화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와 2000년대부터로, 가령 함충범의 「종파분쟁기 북한영화 연구: 전후복구건설 및 사회주의기초건설과 1950년대 북한영화」(영화연구. 2007 (33):167-200)나 「북한식 사회주의 형성기 북한영화 연구(1958~1966)」(영화연구. 2008 (35):453-489)는 김정일 이전 시대 북한 영화 산업의 형성 과정을 처음으로 거시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김일성 일파가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던 종파분쟁기에서 북한의 정치 지형이 김일성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주체사상이 성립되던 시기까지 북한 영화에 미치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향, 영화의 생산 및 소비 시장의 구축 과정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2000년대부터는 북한 영화에 대한 젠더 비평도 상당수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명자의 「북한 주체영화의 여성성 재현에서의 변화 연구」(영화연구. 2004 (23):270-292), 정영권의 「영화 〈복무의 길〉에 나타난 선군시대 북한의 여성과 가부장적 온정주의」(현대북한연구. 2014 (17)), 안지영의 「2000년대 초중반 북한의 영화와 TV드라마 속 여성 형상」(북한연구학회보. 2015. 19(1):367-397), 이영애의 「북한 영화에 나타난 이상적 여성상 비교분석: <우리의 향기>와 <백두의 봇나무>를 중심으로」(동북아 문화연구. 2015 (42):239-257)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연구들이 다루던 영화들은 대개 ‘선군 시대’에 생산되었던 작품들로, 이는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 된 1997년 이후 북한의 지도 이념이 된 ‘선군 사상’에 따라 국가사회가 운영되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북한 사회에 있어서 모순적인 시기로, 북한 사회는 소련의 붕괴로 인한 세계사회주의 혁명의 심각한 퇴행기에 체제 유지를 위해 시장경제의 원리를 수용함과 동시에 군사 조직의 확대를 통한 권위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꾀하는 모순적인 노선을 택했다. 위의 연구들은 이러한 전환기의 북한 영화의 여성성이 드러내는 특징과 여러 모순적 측면들을 분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선군정치’가 자리잡던 시기 이전 김일성 시대의 영화문화나, 특히 최근 김정은 시대 북한 영화예술에 대해 현재성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선군시대 북한 영화 연구들에서 드러난 여성성의 수행 양식을 검토하고 종합한 뒤 최근 북한 영화의 양상까지도 들여다보고자 한다.


  처음으로 확인할 것은 안지영(2015)의 연구다. 안지영은 2000년에서 2006년 사이, 북한 영화와 TV드라마를 대상으로 북한 당국의 여성관 및 여성정책, 그리고 여성 생활의 단면을 분석하고 있다. 이 시기의 북한 영화들에서는 세대, 기혼 및 미혼 여부, 종사하는 직종 등 다층적인 차원에서 여성 젠더의 형상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안지영은 여기에서 작품 속 여성의 생활 태도를 당 정책 수행 여부를 기준으로 당 정책에 ‘순응(결사관철·모범 수행·적극 도움)’하거나 ‘불응(사리사욕·보신 및 보수·일상 안주)’하는 유형으로 나눈다. 이렇게 세분해 볼 때 당국의 여성관 및 여성정책에는 여전히 ‘혁명적 현모양처’라는 성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고 성별분업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가부장성이 존재한다. 기혼 여성일수록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건강은 악화되고 가족 해체나 갈등현상도 두드러진다. 반면 부정 인물에 대해 강하게 성토하는 장면 등은 여성의 일상이 당국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을 징후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부터는 앞서 분석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의 세 가지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인 ‘모성’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이것의 해체적 경향이 충돌하는 ‘선군시대’ 여성성의 특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검토할 것은 정영권(2014)의 연구다. 정영권은 북한 사회가 선군시대 여성과 가족을 호명하는 과정을 영화 <복무의 길>(2000)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


  <복무의 길>은 여성 군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 북한 영화들 중 여성 군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들은 몹시 흔하다. 가령 선군 시대 직전인 1990년대에는 <용감한 처녀들>(1991)과 <처녀습격기편대>(1998) 같은 작품들이 존재했다. 전자는 항공육전대 군의관으로서 강도 높은 낙하산 훈련에 참가하는 한 여성군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후자는 한국전쟁 당시 여성비행사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이다. 전통적으로 여성 군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북한 영화들은 사회주의 군대가 요구하는 영웅적인 여성상을 다루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데 <복무의 길>은 ‘아담한 형식’을 따르는 군사물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자그마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진실하면서도 깊이 있게 파고 들어 커다란 문제를 밝혀내는” 영화를 말하며, “소박하고 자그마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진실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리여 큰 것을 보여주는” 것에 아담한 영화의 진미가 있다. (정영권, 2014, 재인용.) 김정일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 가운데서 제일 잘 만들었다고, 영화를 보던 것 가운데서 제일 괜찮다고, 영화문학도 잘 쓰고 연출도 잘하고 배우들이 연기도 잘하였다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한 선군시대의 대표적인 영화 <복무의 길>을 위시하여, 이 시기의 영화예술은 전쟁영웅이나 여성전사의 활약상을 담은, 위에서 분석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의 세 가지 유형’ 중 ‘사회주의 전사’로서의 여성성을 전형적으로 재생산하기보다는 여성 군인이 군대와 가정의 현실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같이 미시적인 측면의 소재에서부터 출발하여 선군시대 여성이 갖추어야 할 생활 태도를 가리키는 데로 나아간다.


  <복무의 길>은 군의관으로 입대하고 최전연(최전방)으로 자원을 한 여성 주인공 ‘경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여성 주인공을 중심에 내세우고 여성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감에도 이 영화를 여성 영화라고 분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령 어떤 영화가 ‘여성 영화’인가를 다루기 위해 사용되는 주요한 지표인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복무의 길>에 적용해보자. 벡델 테스트는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소 2명 포함할 것’,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런데 <복무의 길>은 여성 주인공 경심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경심과 아버지와의 관계, 경심과 오빠와의 관계, 경심과 훈련 참모 서동수와의 관계를 플래시백(flashback)으로 소환하고 경심과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맺음을 서사의 중심으로 구축해가며 이를 통해 여성 주인공 경심의 인격 형성 과정을 다룬다. 이와 유사하게 북한의 많은 ‘여성 서사’들은 남성 의존적이다.


  한 편으로 군 입대나 최전연 지원 같은, 치기나 오기에 가까운 경심의 행동은 젊음의 미숙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선군시대 참된 (남성) 군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의 정체성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경심을 크게 깨닫게 하는 두 번째, 세 번째 플래시백이 남성 화자에 의해 전달됨으로써 권위를 획득한다. 이것은 경심 등의 여성 캐릭터와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서술의 위계 구조에서 남성의 발화가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것과 함께, 북한 특유의 가부장적 온정주의의 원리를 떠올리게 만든다고 정영권은 분석한다.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의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후원자와 수혜자의 관계로 설정되어, 국가의 최고 가장은 사회라는 대가족의 구성원인 피지배자를 보호하고 돌봐야 하는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는 가부장적 온정주의를 재생산하며 국가가 인민의 모든 것을 책임 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북한도 수령, 지도자에 대한 인격적 충성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의해 인민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시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위와 같은 논의들을 종합해 볼 때, 선군시대의 북한 영화들에서는 전통적인 실험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드러나는 여러 여성성이 혼재되어 선전적으로 드러남과 동시에 징후적 층위에서 이것의 해체가 지시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안지영(2015)의 연구에서 확인되었던, 영화에서 당의 방침에 저항하는 여성상이나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유지 불가능성이 묘사되는 현상이나, 정영권(2014)의 연구에서 확인되었던, ‘사회주의 여성 전사’의 이념형을 묘사하는 대신 불완전성을 가진 여성 군인의 인격이 남성이나 가족과 관계 맺는 방식을 묘사하는 북한 영화의 경향들에서 이러한 지점들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4. 김정은 시대 북한 영화에서 묘사되는 여성성: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중심으로


  이제 김정일 사후, 김정은 시대의 북한 영화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자. 본 연구에서는 2012년 개봉한 김광훈•니콜라스 보너•안자 델르망 감독 작품인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를 징후적 독해를 통해 검토해 볼 것이다.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벨기에와 영국 그리고 북한의 합작 영화로, 2012년 평양 국제영화축전에서 개봉한 뒤 토론토 국제 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이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가 김정은 시대의 북한 영화가 일궈낸 하나의 성취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북한이 영화 산업을 통해 대외 협력 및 개방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보여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여성 탄광 노동자 ‘김영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광부로 일하는 영미는 TV에 등장하는 공중 곡예사 ‘리수연’을 동경하며 스스로도 곡예사의 꿈을 꾼다. 영미는 한 달 동안 평양의 건설 현장에 배치되는데, 그는 현장에 투입되기로 한 날짜보다 사흘 일찍 평양에 도착해 곡예사 ‘박장필’과 리수연을 만난다.


  영미는 곡예단 입단 심사에 지원하지만, ‘공중공포증’(고소공포증)으로 인해 곡예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떨어지고 만다. 장필은 영미에게 “탄광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라는 조롱을 하고 영미는 울분을 토하며 ‘탄광 노동자도 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평양 건설 현장의 책임자인 ‘중대장’은 영미의 꿈을 유심히 지켜보고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영미가 곡예를 배울 수 있도록 곡예단 소속 단원을 초청하지만, 이는 장필이었다. 자신이 곡예배우임을 자랑하며 등장한 박장필에게, 영미는 ‘모두가 할 수 있는’ 건설현장의 노동을 누가 더 잘하는지 대결을 신청하고는 승리하여 박장필에게 창피를 준다. 영미와 장필 사이의 사정을 들은 중대장은 건설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예술축전에 기예 부문으로 참가하게 된다. 지금까지 영미를 업신여기던 장필은 그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김영미는 공중공포증을 극복하고, 곡예에 필요한 각종 자재도 다른 현장의 노동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마련해 간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김영미의 지도 하에 노동자예술축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축전에서 김영미를 지켜본 박장필은 감명을 받아, 그를 곡예단에 데려오고자 고향으로 내려간 영미를 찾아간다. 영미는 곡예를 취미로 하는 거라며 선을 긋지만, 곡예단 간부들이 전부 영미를 찾아가 부탁을 하고, 영미의 할머니와 지역 주민들도 그에게 곡예를 하라 독촉을 한다. 결국 영미의 아버지도 김영미가 곡예를 하는 것을 허락하고, 김영미는 정식 단원이 되어 평양으로 향한다. 한편, 장필의 어머니는 지금껏 영미를 생각하는 장필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점차 김영미가 장필의 배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곡예단에 입단한 영미는 고된 훈련을 시작하지만, 공중 곡예의 꽃인 ‘공중 4회전’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상심한 영미는 곡예를 그만둘까를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리수연의 응원과 어머니와의 기억으로 힘을 낸다. 김영미는 곡예의 마지막 심사날에도 공중 4회전을 실패하지만, 김영미가 곡예 공연 심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서 찾아온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공중 4회전을 성공해낸다. 이후 영미는 세계 대회에 출전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중, 영미가 탄광에서 취하는 곡예 자세.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전의 북한 영화들보다도 더욱 급진적으로 가족과 군이라는 틀을 이탈하여 여성을 조망한다는 점이다. 가령 극의 대부분에서 조망되는, 영미가 수행하는 행동들은, 탄광과 건설현장에서의 노동, 그리고 곡예다. 그리고 영미는 이를 통해 어떠한 ‘성취’에 천착한다. 이는 기존의 ‘모성’, 혹은 군 집단 내부에서 ‘사회주의 전사’로 재현되던 여성 인물보다는, 여성을 사회주의 국가의 단결된 목표 달성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인민’으로 환원시키는 데에 가깝다. ‘비행’은 성취를 가리키는 알레고리로 극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가령 극 중에서 영미가 소지하고 다니는 배지나, 위의 사진과 같이 진취적인 형상으로 공중을 향하는 곡예 자세는 시혜적 조력자인 남성, 혹은 가족의 도움 없이 바로 선 여성 인물의 주체성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다른 노동계급 성원들과 영미, 즉 여성 주인공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 있을까? 종속적 여성 정체성이 극복되거나 소거되고 여성이 공통된•단결된 노동계급 성원으로 포섭되는 지점에서, 이들은 수혜와 시혜의 대상이 아닌 공통된 목표를 향한 상호 연대의 대상이 된다. 가령 극 중 영미가 수행하는 행동들은 모두 ‘당성’을 지닌 행위로, ‘사회주의적 계급투쟁’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스크린 안팎에 존재하는 북한 노동계급의 공통된 목표로 설정된다. 예컨대 극 중의 영미는 ‘사회주의적 분업’을 통해 탄광 노동과 건설 현장에서의 노동을 한다.

 

  이는 공중 곡예도 마찬가지다. 공중 곡예는 인민 예술의 일부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 속에서 만들어내는 예술은 예술가들의 사고방식과 예술의 성격을 규정짓는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예술을 만든다. 그리고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예술은 사회로부터 만들어지지만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적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에 다시금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술작품의 어떤 주장과 내용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에 따른 사고방식, 생활 양식의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적 주장을 담은 예술은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실천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 국가에서는 모든 인민에게 진보적 예술을 보급하고자 하는 기획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예술 세계이자 국가적 차원의 목표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므로 영미의 꿈에 대해 듣게 된 건설 현장의 중대장과 노동자들은, 영미의 지도 아래에서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장기들을 찾아 개발하고 노동자예술축전에 기예 부문으로 함께 나간다. 곡예에 필요한 장비들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러 다른 공장의 노동자를 방문한 영미에게, 책임자는 “동지의 마음이 우리 노동계급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며 하나된 마음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중, 영미에게 연대의 의사를 표시하는 노동자들.


  사회주의 체제에서 노동자 개인들의 관계는 동지적 협력과 상호 부조의 관계다. 사회주의는 “일생동안 한 가지 동작만을 반복하여, 기형적이고 파편화된 존재로 전락해 버린… 부분노동자를 완전히 발달한 개인, 즉 그에게 있어서는 그가 수행하는 상이한 사회적 기능들이란 단지 자신의 선천적 및 후천적 역량들을 자유롭게 펼쳐 보일 수 있는 많은 양식들에 불과한 것”으로 대체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그리고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서 영미는 여성이 아닌 ‘동지적 협력과 상호 부조의 대상’으로 호명되고 있다. 영미는 노동계급 성원들의 조력 속에 노동자예술축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친다.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중, 노동자예술축전에서 성공적인 공중 곡예를 선보이는 영미.


  그런데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서 여성 주인공이 이루어 낸 성취는 다시금 ‘반동적인’ 지점으로 회귀한다. 노동자예술축전을 방문한 장필이 영미의 기예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로맨틱한 끌림이다. 장필은 ‘사랑에 빠진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영미를 응시하고 있다. 이를 함께 본 장필의 어머니가 취하는 행동은, 영미를 장필의 ‘배필’로 생각하며 장필의 방에 영미의 사진을 가져다 두는 것이다. 기실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서는 영미를 대상화하는 장필의 시선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영미의 ‘의지’가 내내 충돌한다. 처음에는 탄광 출신 노동자는 기예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영미를 업신여기는 장필의 시선과 이에 분개하는 영미의 의지가 충돌한다면, 영미가 기예를 성공적으로 익히고 난 뒤에는 영미에게 연정을 느끼는 장필의 시선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영미는 장필의 설득으로 곡예단에 들어가고 그의 파트너가 되며 이를 수용한다. 여기에서 노동계급의 목표를 달성해 낸 성공한 여성은 다시금 남성의 욕망과 ‘결혼’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가족 밖으로 이탈한 진취적인 여성상에 대한 긍정이 다시금 가족과 결혼 그리고 남성으로 환원되는 셈이다.


5. 결론


  지금까지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통해 파악한, 김정은 시대 북한 영화에서 구성되고 재현되는 여성성의 상을 종합해보자.


  이전 선군시대 북한 영화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은 과도기적 층위에서 여러 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시기의 영화들은 표면적으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의 여성성을 재현하지만 징후적으로는 이것의 유지가 불가능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성과 과도기적 성격은 김정은 시대의 영화에서 더욱 가시화된 형태로 포착된다.


  김정은 시대의 영화에서는 사적 형태에서 여성을 예속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와, 공적 형태에서 여성을 예속하는 ‘군’이라는 공동체를 완전히 이탈한 여성상이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실험사회주의 체제의 초•중기적 젠더•섹슈얼리티 논의에서 포착된, 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호명하는 방식을 통해 여성 범주를 해체하고 여성을 노동계급 보편의 성원 중 일부, 동지적 협력과 상호부조의 대상으로 조명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렇게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노동계급의 목표를 성취해 낸 여성은 다시금 남성의 욕망과 ‘결혼’의 대상으로 환원된다. 가족을 이탈하여 여성을 묘사하려는 경향과 여성 정체성을 다시금 가족으로 회귀시키려는 경향이 혼재되어 있는 이러한 이중성은, 북한 여성이 처해 있는 모순적 과도기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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