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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Mar 17. 2021

바디 카운트의 그래미 수상을 축하하며

  그래미는 언제나 '먹을 것은 없는 소문난 잔치'였다. 올해도 그랬다. BTS의 수상 불발도 그렇지만, 피비 브리저스, 아르카, 하임 같은 혁신적인 뮤지션들에게 상이 돌아가지 않은 것, 그리고 2020년대 대중음악 평단의 판도를 뒤바꾼 피오나 애플의 'Fetch the Bolt Cutters'가 본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지조차 않은 데에서는 그래미의 구태함이 유감 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놀라운 결과도 있었다.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시상식 메인 이벤트에서는 다뤄지지도 않지만, 올해 그래미에서 가장 환영할 만한 결과는 바디 카운트의 “Bum-Rush”가 최우수 메탈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이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메이저 진출 이후로, 미국 록 씬과 힙합 씬 그리고 민중 음악의 교차가 거둔 최대의 성취임이 분명하다.


2021년 그래미 최우수 메탈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Bum-Rush"의 뮤직 비디오. 


  바디 카운트는 최초의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 래퍼인 아이스 티와 기타리스트 어니 C가 1990년 결성한 크로스오버 스래쉬/랩 메탈 밴드다. 오늘날 대중에게는 드라마 ‘로 앤 오더: 성범죄전담반’에 출연하는 배우로 더 잘 알려진 아이스 티. 그는 크립스 갱단 활동을 하며 컴튼을 위시한 로스 앤젤레스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의 세례를 받은 인물이었지만, 처음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들끓던 힙합 문화의 가능성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메탈 씬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다. 아이스 티는 블랙 사배스가 처음으로 제시한 메탈 음악의 청사진과 사악한 둠 사운드, 수어사이들 텐덴시즈의 (하드코어) 펑크와 스래쉬 메탈을 연결하는 감각, 그리고 슬레이어의 음악이 가진 구조적 정교함과 속도감에 영향을 받아 이를 모방하는 음악을 하고자 했다. 그러던 아이스 티는, 유럽을 여행하던 도중 힙합 음악에 맞추어 모슁을 하는 관중들을 보고, 힙합이 대중에게 선사할 수 있는 생동하는 에너지를 포착하며 이를 자신의 문법과 결합하게 된다. 바디 카운트의 음악은 아이스 티의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아이스 티는 1988년에 발매된 2집 앨범 ‘Power’에서 대중음악산업을 제약하는 검열 제도, 정치경제적 문제와 얽히고 설킨 인종주의, 그리고 로스 앤젤레스의 경찰 폭력을 공격한 바 있었다. 이는 자연스레 보수적인 언론의 집중 포화에 놓인다. 하지만 아이스 티는 보수적인 미국 사회를 위한 더 큰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바로 메탈 밴드 바디 카운트를 결성하고 ‘경찰 폭력에 분노하는 희생자가 경찰을 죽여버린다’는 내용의 싱글 “Cop Killer”를 발표한 것. 아이스 티는 자신의 음악을 ‘갱스터 스래쉬’ 그리고 ‘민중가요’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 싱글은 급진적인 내용 때문에 이전보다 더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음반사도 아이스 티에 대한 지원을 그만 두게 된다. “Cop Killer”는 오늘날의 스트리밍 사이트들에서도 서비스하지 않는 ‘금지곡’이 되어버렸고, 뮤지션 아이스 티의 커리어는 끝장나버리는 듯 했다.


"Cop Killer"의 2015년 핑크팝 페스티벌 라이브 공연 실황.


  그러던 아이스 티와 바디 카운트가 돌아온 것은 2014년 5집 앨범 ‘Manslaghter’를 발매하면서 부터다. 2017년에는 역작 ‘Bloodlust’가 발매되고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 아이스 티가 집중하는 문제는 여전히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과 인종 격차다. 하지만 한 편으로 아이스 티는 오늘날의 작업들에서 이전보다도 상호교차적 측면에서 확장된,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급진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가령 ‘Bloodlust’의 수록곡 “No Lives Matter”에서 아이스 티는 “우리가 ‘여성의 생명은 중요하다’라고 주장할 때 당신은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라고 반박하고, 우리가 ‘성 소수자의 생명은 중요하다’라고 주장할 때 당신은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라고 반박하지만 이것은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사실 누가 죽던 상관하지 않는다”며 분노한다. 한 편 그는 인종 차별의 문제가 단순히 피부색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는 정치경제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구조적으로 흑인은 언제나 가난에 내몰리지만,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아시아계 빈민, 백인 빈민들도 존재한다. 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지배계급이다. 아이스 티는 “This shit is deeper than racism”이라고 외치며, 인종주의의 경계를 넘어선 피억압 계급의 연대와 공동 전선의 구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바디 카운트의 음악은 매력적인 프로파간다다. 갱스터 랩의 방법론으로부터 이어지는 은유 없이 과격하고 직설적인 가사는 급진적인 선전선동 구호를 날것의 형태로 빚어낸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하드코어 펑크의 생동감, 스래쉬 메탈의 속도감과 헤비니스가 결합한 완성도 높은 크로스오버 스래쉬는, 아이스 티의 민중가요에 페스티벌의 모쉬 핏에서 몸과 몸을 부딪히고 땀을 섞어 가며 즐기기에 충분한 그루브를 부여한다.


  장르음악이 설 자리가 점차 협소해지고 있는 요즈음, 바디 카운트가 그래미의 메인 무대에 적기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광경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그래미 심사위원들의 인정을 받은 것만으로 그 의미는 충분하다. 미국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음악을, 그리고 이들의 요구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선 주류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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