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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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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리공 May 21. 2024

신은 나를 발리로 보냈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

어제 권고사직으로 1년 여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실업 급여를 신청하고, 오후에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버스에 올랐다. 실업급여 신청 때문에 딱 좋던 오전 비행기를 눈 감고 애매하디 애매한 오후 3시 비행기로 변경했는데, 오후 햇살은 나른하고 공항버스는 고요하니 이상하게 여유로운 게 글 쓰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사실 출발이 딱히 순조롭지는 않다. 집에서 출발하기 직전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알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간 많은 백수로서는 이미 용납할 수 없는 시간에 떠나는데 연착까지 더해지다니, 스탑오버로 홍콩을 맛만 보려고 했던 나의 얄팍한 마음을 눈치챈 걸까. 아침까지 촉박하게 짐 싸던 나를 나무라는 걸까. 여행 계획을 짜면서 자꾸만 욕심이 생겨서 구글맵에 즐겨찾기가 늘어났는데, 뭐가 됐는 이번 여행은 여유 있게 천천히 가야겠다.


혼자 떠나는 여행. 얼마 만의 나 혼자 해외여행인가. 작년에 가족들과 패키지로 대만을 갔던 것이 가장 최근이고, 엄마와 단둘이 베트남, 구남친과의 오사카, 회사 해외 워크숍을 제외하고는 혼자였다- 라고 쓰고 생각해 보니 혼자서 한 여행도 단 두 번뿐이다. 20대 첫 해외여행인 인도와 그 이후 30대가 되어 처음으로 혼자 떠난 삿포로. 이번이 겨우 3번째인  것. 40이 되기 전에 혼자 발리를 가서 다행인 건가.


아- 이 여행 뭔가 더 소중해졌다.


갑작스러운 퇴직 통보로 예정에 없던 여행이었지만 발리는 이스탄불과 더불어 진작부터 나의 여행지 위시리스트에 올린 곳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휴양지를 선호하지 않아서 가본 적이 없는데, 대표적인 휴양지 발리라니. 나답지 않으면서 매우 나답다. 사실 나에게 발리는 그저 서핑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만리포에서 만난 쌤들이 발리 다녀왔다- 발리 파도가 다르다- 할 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질투의 씨앗이 심어졌고, 인스타 릴스로 발리 드론 영상을 보거나 유튜브에서 서핑 잘하는 법을 찾다 찾다 발리 한인서프 채널을 보면서 열심히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알다시피 지구력이 부족한 인간이기에 이 모든 번뇌와 번민은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더랬다. 정확히는 꽃을 하기로 하면서부터 모든 에너지가 그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서핑에 대한 욕심의 파도가 잔잔해지던 최근 몇 년, 난 운동도 게을리했다. 모든 서퍼들은 서핑을 위한 지상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말랑 살과 숨 쉬는 근력만이 남아있는 지금 하필이면 3월에 오빠와 새언니가 발리를 다녀왔고, 하필이면 4월에 내가 회사에서 잘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것은 신의 뜻?


그렇다. 모든 것은 계획되어 있다.

신은 나를 발리로 보낼 작정인 것이다!


왜냐고? 그 뜻을 알면 내가 이런 인간 나부랭일리가.

아마도 그 이유는 발리에서 찾을 수 있겠지.


총 9박 10일,

홍콩을 경유하는 2일을 제외한 일곱 밤 동안 내가 발리에 온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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