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매운맛 파도 체험기
처음엔 서핑 캠프를 알아보았다.
최소 단위인 3일 캠프를 신청할까 고민했는데, 7일의 발리 여행 중 3일을 서핑에 할애해도 괜찮을까 하는 여행 욕심이 자꾸 생겼다. 비행기를 하루 늦추지 않았다면 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짱구에서 머무는 2일 중 하루만 하기로 하고 한인 서프에 데일리 강습을 신청했다. 데일리임에도 영상 리뷰와 지상훈련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튜브에서 많이 봤던 그 영상 리뷰라니! 만리포에 출근하던 그 시절처럼 오랜만에 서핑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사실 서핑은 이제 현생에 밀려 밀어주면 타고 강습이 끝나면 둥둥 떠있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정도로 열정이 사그라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에게 발리는 곧 서핑, 이게 시작이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발리에서 서핑을 빼놓을 순 없었다.
발리 서핑샵은 우리나라처럼 강습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전날 파도 차트를 보고 캠프생에게 가장 적합한 스팟과 시간을 정하는 시스템이었다. 보통 이른 아침에 한다고 하는데, 새벽 5:50까지 서핑샵 앞으로 집합하는 일정이었다. 난 우붓에서 2박 후 짱구로 넘어가는 스케줄이었고, 공항에서 차가 너무 막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우붓에 도착했으니 사실상 1.5박이나 다름없었다. 모레 새벽에 서핑을 하러 짱구에 가야 했기 때문에 우붓에서는 최대한 체력을 아끼기로 했다. 결국 여러 이유 끝에 새벽에 바투르산으로 지프차를 타고 가는 일출 투어를 포기했다.
새벽 3시 반 알람.
차에서 오뚝이처럼 고개를 좌우로 수십 번 흔든 끝에 서핑샵 앞에 도착했다. 발리의 오름서프. 그날 나 외에 캠프생 3명이 더 있었는데, 잘란잘란 카페에서 만나 데일리 강습을 신청한 동행인은 어제 투어 때 손을 다쳐 강습을 포기했다. 동지가 사라진 것 같아 조금 아쉬웠지만, 어차피 바다에서는 오롯이 나 혼자이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혼자든 둘이든 내가 조팝이란 사실은 변함없으니- 끅끅. 우린 차를 타고 꾸따의 닉소마 비치로 향했다.
드디어 서핑 in 발리.
두근 대는 맘으로 선크림을 바르고 보드를 해변으로 옮기고 테이크 오프 연습을 했다. 거의 1년 만에 시도하는구나. 동작에서 고쳐야 할 점은 바로 피드백을 받았다. 아무래도 발 각도나 손 위치, 잘못된 습관이 생긴 것 같았다. 그 후 현지인 인스트럭터가 배정되었는데, 내 담당은 되게 어려 보이는 친구였다. 나이는 묻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름은 노이였다. 노이는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다른 인스트럭터가 남자한테는 ‘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이름보다 부르기 쉬워서 그렇게 외운 것 같다. 인사도 잠시 바다로 들어가자마자 노이를 볼 수 없었다. 시작부터 파도에 처맞고 구르며 다시 해변으로 떠밀려 왔기 때문이다. 처음 경험한 발리의 통돌이는 한국보다 매웠다. 어찌나 매운지 시작하자마자 콧물이 줄줄 났다. 쓰고 있던 모자는 순식간에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솔직히 모자 따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눈앞의 파도가 더 큰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얕은 파도만 타다 보니 파도를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나를 조금 지켜보던 노이는 안 되겠는지 결국 다시 내쪽으로 왔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라인업에 도착했지만 매번 도움을 받을 순 없는 법. 파도를 피하고 넘는 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불과 며칠 전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발리의 파도는 가혹했다. 발리에서는 초심자의 행운도 통하지 않는 것인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서핑의 시작점인 라인업에 들어와 있어도 거대한 파도가 오면 인스트럭터가 저 파도를 향해 패들을 해서 넘어가라고 ‘패들 아웃’이라고 알려준다. 그럼 난 얼마나 해야 되는지 모른 채 살기 위해 패들을 했다. 그 크기와 높이, 넘고 나면 부서지는 파도로 인해 흩뿌려지는 파도들, 해변은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멀어 보였고,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테이크 오프를 시도하면 한국과 달리 파도가 커서 마치 내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고 속도가 너무 빨라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대다가 끊임없이 처박혔다. 파도에 말려 통돌이가 되고 나면 땅에 발이 닿지 않으니 보드를 잡기 위해 허우적댔다. 다음 파도가 오기 전에 빨리 대비를 해야 된다는 조급함에 몸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발이 닿는 곳에서만 했기 때문에 서핑을 하면서 느끼는 새로운 공포였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주문에 걸린 듯 내 시선은 계속 라인업을 향했다. 노이는 그런 나를 보며 ‘빨리’를 외치며 손짓했는데, 저기요, 나도 가고 싶다고요.
발리 첫 파도 신고식은 그렇게 끝났다.
그날의 파도는 나뿐만 아니라 발리 파도를 몇 번 경험한 다른 분들에게도 유독 힘들었다고 했다. 부상자도 발생했다. 다치지 않은 게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나도 모르는 초심자의 행운이 있었나 보다.
처음 받아본 영상 리뷰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가 어떻게 했는지 제삼자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저기서 어떻게 했어야 됐는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바다에서 바로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의식은 할 수 있으니 꾸준히 한다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호되게 얻어맞았지만 하루만 하는 건 역시 아쉬웠다. 결국 다음날도 강습을 신청했다. 사실 아쉬운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공존했다. 한국에서는 내일 파도 있으면 좋겠다- 내일은 혼자 파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바람이었는데, 발리에서는 내일은 오늘보다 파도가 약했으면 좋겠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다- 의 기도였다. 그리고 다음날 서핑을 마치고 생각했다. 아, 조금만 더 잘하고 싶다. 서울 가면 올여름 서핑을 위해 몸을 단련하겠어! 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