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도 괜찮을 용기와 그만둘 용기 그 어딘가
이직한 지 4개월 차,
오래 다닐 거라 호언장담한 회사는 이도저도 아닌 포지션으로 굳어지고 있다.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다시 디즈니 대행하던 시절 꿈을 꾼다. 영화 일, 그때 팀장님, 팀원들이 나와서 일하다가 눈을 뜨는 것이다. 사실 후회까진 아니지만 그때 그만두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종종 해왔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더라면 난 영화를 계속했을 것이다. 다른데 눈 돌릴 여유도 없었을 거고. 난 여전히 광고쟁이가 되기는 글렀다. 처음부터 영화였고 끝도 영화였다. 오히려 영화를 하고 있을 땐 영화한다는 얘기 어디 가서 안 했는데 말이지, 지금은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영화 마케팅 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게 미련인가.
그 와중에 가을 웨딩 시즌은 시작되었고 추석 이전에 한 번 나가고 추석 이후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될 참이었다. 웨딩은 아무래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야외, 햇빛, 무거운 기물, 유리베이스, 무거운 플로랄폼 등. 그렇지만 다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살다 보니 기절도 하고 응급실도 가고 봉합도 한다. 아니 플로리스트라서 겪었을 수도 있다. 의료 파업을 실제 경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응급실 뺑뺑이의 주인공이라니. 돌이켜보며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운 좋게도 턱만 다쳤고, 운 좋게도 다정한 사람들이 옆에 있었고, 운 좋게도 인간적인 의사 선생님도 만났다. 그날은 모두가 나의 영웅이었다.
사실 다치고 보니 조금 겁도 났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고 그 피로가 계속 쌓일 텐데 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 일을 장기적으로 할 수 있을까. 또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걱정 말이다. 그럼에도 다치면서 빠지게 된 2번의 웨딩이 미안하고, 남은 웨딩이 3번뿐이라는 게 아쉽다. 주변에서는 아예 쉬라고 하지만, 남은 웨딩이라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맘이 크다. 지금 회사는 1년 채우기도 지치는데, 웨딩은 잘하고 싶다. 이게 내가 좋아하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무엇일까. 웨딩 대표님은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지금처럼 주말에만 잠깐씩 하거나, 경제적, 정신적 안정을 위해 남편을 먼저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될 거란 걸 안다. 지금은 실패해도 괜찮을 용기를 충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며칠 전 회사 근처에서 좋아하는 밴드 공연 스케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올해 언제 봤나 싶을 정도로 공연에 대한 기억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들은 오랜만에 왔다는 걸 기억해 주고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끝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분이 나에게,
아직도 꽃 하고 있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다친 턱 상처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매우 놀랐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고? 퇴사하고 꽃 알바를 하던 시절에 꽃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당시엔 이들이 공연 할 때 무대 꽃장식을 하고 싶기도 했다. (뭘 이렇게 다 해주고 싶었냐) 아무튼, 그때 개인 앨범 발매 기념으로 작업실에서 연주회를 했었는데, 그때가 연말이라 리스를 만들어 갔다. 찾아보니 2021년 12월 30일이다. 그 이후 작업실 공연이 또 있었지만 가지 못했고 다녀온 친구 말로는 그 리스가 파삭 말라 무섭게 걸려 있다고 했다. 아직도. 그거 잘못하면 벌레 생길 수 도 있는데-라고 했지만 속으론 내심 고마웠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본 날, 나에게 꽃 이야기를 먼저 건넸다.
친구는 그거 아직도 안 버린거냐, 벌레 생길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약간 어색해하며, 이런 건 처음 받아봐서 이걸 어떻게 버리냐- 아니 꽃다발은 많이 받아봤는데- 라며 말을 흐렸다. 그의 말에 내 동공이 커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봐왔기에 이 분의 말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별거 아닐 수 있는데 나에겐 최근 여러 고민과 부상으로 복잡했던 마음을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다정할 수 있다고? 아니 팬은 내가 팬인데, 왜 감동을 주고 그러세요. 옆에서 친구가 얘가 또 만들어 갈 거니까 걱정 말라고 거들어서, 나도 새로 만들어서 시든거 수거해 가겠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어색하게 굳어있었지만, 사실 되게 고마웠다. 집에 와서도 그 말과 그 순간을 곱씹었다.
꽃을 하고 싶은데 현실적인 어려움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정해진 시스템에서 움직이는 게 익숙하고 그걸 편안해하며,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온 회사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영화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그때만큼 열심히 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를 꽃에 쓰고 있는 만큼 꽃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당장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계속하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은 뭘까. 그리고 가까운 지인도 아니고 분기에 한 번 볼까 하는 사람이 이런 나를 기억해 주는 마음은 뭘까. 가끔은 가까운 보다 타인에게서 위로를 받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