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한 아주 이성적인 이야기
너는 오늘도 짜증을 내며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지. 그러게 좀 일찍 자라니까... 이제와 하나마나한 얘기를 조용히 속으로 삭히며 너의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어. 가만히 두면 스스로 잠잠해지는 너를 알기에 일단 너의 짜증이 시들해지길 기다렸지.
잠시 후, 역시나 너는 언제 그랬냐는 듯 히히 웃으며 방에서 나왔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런데 말이야, 나는 너처럼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갈 수가 없단다. 내가 뒤끝 작렬인 탓도 있지만, 걸핏하면 짜증을 내는 너에게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보기 때문이야. 그건 생각보다 꽤 괴로운 일이거든.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 지독했던 스크루지 영감마저도 정신을 바짝 차릴 만큼 아찔한 일이기도 하지.
예전에 나의 엄마, 그러니까 너의 할머니께서는 딱 너처럼 짜증을 부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단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
그땐 그 말이 그렇게 무서운 말인지 몰랐어.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어 진짜 그대로 됐네? (하하하)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그 말을 그대로 너에게 돌려주려다가 삼켰어. 얼마 전 나의 엄마에게 엄마가 예전에 그렇게 말했었다고 하자, “세상에 내가 그런 악담을 했다고? 그럴 리가...” 라며 과거를 부정하셨단다. 그 말이 그 정도로 큰 악담인가? 기분이 묘했지만, 아무튼 그런 악담을 너에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단다. 평소 같으면 너의 짜증에 맞불을 놓고 서로에게 불덩이를 주고받으며 화를 키웠겠지만, 다행히 오늘은 내 마음에 여유가 조금 있어서 이성적으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
네가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낼 때 주변 사람은 어떤 마음인지 아니? 일단 몹시 불쾌하고, 덩달아 짜증이 난단다. 그래서 너에게 화를 내면 너는 그러지.
다른 사람한테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짜증 내는 거라고!
그래! 내가 딱 너처럼 대답했었어. 내가 나한테 화를 내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나한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이만큼 나이를 먹고, 너희를 키우다 보니 그게 단순히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네가 짜증을 내고 화를 낼 때 마구 내뱉는 말들은 총알이 되어 사방으로 난사된단다. 너는 별 뜻 없이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 쏟아내는 말들이겠지만, 누군가는 그 총알에 상처를 입지. 그게 주로 너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감정은 주변으로 쉽게 전염되거든. 코로나 바이러스만 전염성이 강한 게 아니란다.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듯, 짜증이 날 땐 감정적 거리를 좀 두면 어떨까?
물론 네가 나 기분 나쁘라고 일부러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스스로 감정을 어찌할지 몰라 즉흥적으로 욱하는 마음을 그대로 내 비취는 거겠지. 너는 그렇게 나쁜 감정들을 마구 구겨서 나에게 던져 버리곤 하는데, 그거 아니?
나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란다.
나뿐 아니라 그 누구도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될 순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감정적으로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단다. 거꾸로 말하자면, 누구도 너를 감정적으로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뜻이기도 해. 서로의 감정을 존중해주다 보면 조금 전에 말했던 감정적 거리가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감정은 말이지 그렇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그러니 처음부터 쓰레기통 자체가 존재할 리 없지.
그렇다면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사실 이 부분은 어른인 나도 실천하기 어려운, 아주 고난도의 기술인데,
감정은 버리는 게 아니라 다스리는 거란다.
예를 들어 볼까? 화는 결국 불이니, 불을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일단 불은 위험하지? 큰 화재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고, 산불로 막대한 국가적 피해를 입기도 하지. 그러니 불은 위험하니까 버려야 할까? 자, 이번엔 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일단... 밥을 해 먹을 수 없겠지. 바비큐에 고기도 구워 먹지 못하겠다. 네가 좋아하는 마쉬멜로우는 당연히 구워 먹을 수 없겠네. 잠깐만 생각해봐도 불 없이는 살 수 없었을 것 같아. 그렇지? 그래서 우리는 불을 ‘다스린다’라고 얘기하지. 다스린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다스리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어.
다스리다 [동사]
1.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
2. 사물을 일정한 목적에 따라 잘 다듬어 정리하거나 처리하다.
3. 어지러운 일이나 상태를 수습하여 바로잡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야. 감정을 잘 다듬어 정리하고, 수습하고, 바로 잡아가며 살아가야 한단다.
그런데 사람이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이유가 뭘까? 화가 나는 상황은 수백수천 가지로 사람마다 다 달라. 하지만 그 모두의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란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래, 바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은 짜증이 나고 화가 나. 가만히 생각해 봐. 네가 주로 어떨 때 짜증을 내는지. 피아노를 치다가,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늦잠을 자다가, 언니랑 놀다가 등등... 그냥 피아노가 싫고, 수학이 싫고, 일찍 일어나는 게 싫은 거라면 짜증을 낼 필요조차 없겠지. 그냥 안 하면 되니까. 하지만 네가 짜증을 낸다는 건, 사실, 너는 피아노를 잘 치고 싶고, 수학을 잘하고 싶고, 일찍 일어나고 싶고, 언니랑 놀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짜증이 날 때면 일단 나 자신에게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질문을 던진단다.
아, 다 됐고!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데?
그리고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분명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더라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보인단다. 다행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면 돼. 그러면 짜증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하지만 문제는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일 때야.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일 경우가 더 많아지는데, 나는 애써도 안 되는 일은 그냥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단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성공적으로 감정을 다스리느냐 하면 너도 잘 알다시피 그건 아니야. 그래서 내가 말했잖니. 이건 아주아주 어려운 고난도의 기술이라고. 그러니 하는 말인데, 우리 서로 노력하자.
그래도 사람인데 짜증을 아주 안 내고 살 순 없겠지. 게다가 살다 보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유 따위 묻기도 따지기도 싫은 짜증이 밀려올 때도 있어. 그냥 날씨가 그렇다거나, 분위기가 그렇다거나, 내 기분이 그냥 그럴 때가 있지. 그럴 때면 나에게 신호를 보내주겠니? 운전할 때도 옆 차선으로 옮기기 전에 깜빡이를 켜서 신호를 보내거든. “오른쪽으로 갈 거예요, 왼쪽으로 갈 거예요.” 그래야 옆 차선에서 오고 있던 뒤차가 예상을 하고 대비할 수 있어. 깜빡이도 안 키고 불쑥 들어오면 몹시 당황스럽거든. 하물며 운전할 때도 그런데, 감정은 오죽하겠니. 당황을 넘어 무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아마 나도 너에게 그랬겠지? 그러니 우리 이제부터라도 짜증이 불쑥 치밀고 올라올 때면 서로에게 깜박이를 켜고 신호를 보내면 어떨까? “오늘은 기분이가 별로야.” “혼자 있고 싶어.” “방해하지 말아 줘.” “안아줘” 등등... 필요하다면 내 품을 내어줄게. 허그는 생각보다 힘이 세거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안아주는 것, 그것만큼 큰 위로가 되는 게 없더라고. 나도 너에게 그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보태고 마칠게. 사실 지금까지 한 모든 말은 너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 그리고 어른조차 하기 힘든 일을 아직 어린 너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나에게 짜증을 내는 너를 보면서 그냥 그렇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 다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주머니 속 돌멩이처럼 계속 만져보고 가끔 꺼내도 볼 수 있는 그런 마음 속 돌멩이가 됐으면 해. 계속 걸리적거리면서 신경 쓰이는 그런 돌멩이.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짜 힘들 때 그 돌멩이가 큰 힘이 되어줄 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