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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Sep 27. 2020

의지를 돈으로 사세요

인증 인생을 인증합니다.

아침 6시. 기상 알람과 동시에 잠에서 깬 나는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세면대 수돗물을 틀고 인증샷을 찍는다. 찰칵! 바로 주방으로 가 컵에 생수를 가득 따르고 인증샷을 찍는다. 찰칵! 시원하게 생수 한 컵을 원샷하고 거실에 요가매트를 깐다. 태블릿 피씨에 유튜브 홈트 영상을  띄우고 인증샷을 찍는다. 찰칵! 운동을 마치고 다시 인증샷, 찰칵!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고 찰칵!... 찰칵!... 찰칵!  요즘 나의 일상이다.


‘혹시 관종이세요?’

- 어쩌면...

“인증샷에 연연하는 이유가 뭐죠?’

- 제가 돈을 걸었거든요.


그렇다. 나는 돈을 걸고 그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인증에 인증을 거듭하는 인증 인생을 살고 있다.



 

습관만큼 무서운 게 없다. 평소의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된다. 습관은 반복의 결과로 어느 순간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굴러간다. 이처럼 습관은 내 무의식을 지배하고, 나를 조정한다. 그러니 습관이 무서울 수밖에. 대신 그 무서운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잘 길들이면 그보다 강력하고 든든한 무기가 또 없다. 나도 그 무기가 갖고 싶어서 지금껏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타고난 의지박약인 나는 매번 의지만 활활 불태우다가 끝났다. 작심삼일은 그나마 칭찬할만하다. 작심이일, 일일도 수두룩하니까. 하루 24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서 촘촘하게 세운 일일계획표만 여러 장에, 습관 관련 어플을 찾아 깔았다가 지웠다만 반복했다.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책상 정리만 하다 볼장 다 보는, 뻔하고 흔한 타입의 사람이 바로 나다. 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그러던 중 매우 도발적인 어플을 발견했다.


의지를 돈으로 사세요.


의지를 돈으로 사라고? 하긴 돈보다 강력한 동기는 없지. 호기심에 어플을 깔았다. 얘기인 즉 이랬다. 여러 챌린지들이 있는데 그중 참여하고 싶은 챌린지에 돈을 걸고 2주간 도전한다. 85%를 수행하면 건 돈 전액을 돌려받고, 85% 미만일 경우 달성률에 따라 건 돈의 일부를 환급받는다. 돌려주고 남은 돈은 100% 완수자들이 상금으로 나눠갖는다. 좋은 습관은 기본, 상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니! 밑져야 본전인 꽤 괜찮은 재테크였다.


미라클 모닝의 식지 않는 인기를 반영하듯 <아침 6시 기상> 챌린지가 제일 상단에 배치돼 있었다.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그런데 막상 돈을 걸자니 여러 생각들이 나를 붙잡았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괜히 돈만 날리면 어쩌지? 그때였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외쳤다.


고민은 짧게 행동은 바로!


아! 아... 할 수 없지.


핸드폰에 기상 알람 시간을 5시 55분부터 5분 간격으로 총 3번 울리도록 설정했다. 알람을 끄고 자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여지를 둔 것이었다. 그때 내 안의 또다른 자아가 내게 물었다. 내 의지의 최대적은 뭐였지? 귀차니즘. 맞다, 이 귀차니즘이란 녀석은 여지를 좋아한다. 게다가 눈치까지 빤해서 여지의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고로 3번째 알람을 끄고 그냥 잘 공산이 컸다. 알람 설정을 삭제하고 심플하게 6시 알람 하나만 설정했다.


일어나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연달아 할 수 있는 챌린지를 찾아 인기 리스트를 훑었다. <공복에 물 한잔 마시기>가 눈에 띄었다. 공복에 물 한잔이 그렇게 좋다던데 뭐가 어렵다고 그동안 생각만 하고 못했을까? 머릿속으로 지난날을 반성하는 사이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또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책도 매일 읽자 읽자 하면서 못 읽었는데... <매일 책 읽기>도 결제, <매일 홈트하기>도 결제! <주말 아침 6시에 일어나기>도 결제!


마음이 가는 챌린지마다 만원씩, 총 5만 원을 걸었다. 아니, 나의 습관에 투자했다. 나의 인증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돈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의지박약인 내가 2주간의 챌린지를 100%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인증샷을 찍어 매일매일 채워가는 재미도 솔솔 했다. 무엇보다 상금이 궁금했다. 얼마나 받을까? 두둥! 상금으로 396원을 받았다. 하하하. 에게~ 고작? 중요한 것은 상금이 아니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부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이른 아침 벽면에서 어른거리며 춤추는 햇살을 선물로 받았다. 미라클 모닝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자연의 특별공연이었다.

 

아침 햇살이 춤을 춘다. 하얀 벽면은 기꺼이 무대를 내준다.

하나의 습관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데는 3개월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돈을 걸고 챌린지에 참가했다. 이참에 마음속 숙제 같던 영어공부 챌린지도 추가했다. 나는 챌린지에 챌린지를 얹고 또 얹으며 내 의지를 지키기 위해 방어막을 2중, 3중으로 쳤다.


나는 다시 아침 6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깨고 인증샷을 찍는다.  챌린지를 인증할 때마다 응원의 말들이 나를 독려한다.  


작은 습관들이 모이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생을 바꿀 좋은 습관이 쌓이고 있어요.

지금처럼 반복하세요. 습관은 복리로 작용합니다.

매일 1%씩 나아진다면 1년 후에는 37배 성장합니다.

100번만 반복하면 그게 당신의 무기가 됩니다.



정말요? 네, 믿습니다!


내가 얼마나 달라져있을지, 나도 내가 궁금하다. 그래서 인증샷을 포기할 수 없다. 이젠 돈뿐 아니라 호기심이란 강력한 동기 하나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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