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생애 첫 덕질을 응원하며
요즘 애고 어른이고, 국적을 가리지 않고 방탄소년단 때문에 난리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두 따님 모두 아미 되시겠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마감하는 두 아미 덕분에 내 머릿속과 입에서도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 싫냐고 물으신다면, 놉! 나는 완전 환영이다. 드디어 우리 딸들도 덕질을 시작하다니! 감개가 다 무량할 정도다..
나는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뭐든 느린 것이 좋은 것이다 생각하고 두 딸을 키웠다. 특히 미디어와의 접촉을 가능한 늦추고 싶었다. TV나 스마트폰보다 더 넓고 많은 세상을 직접 보고 생생하게 느끼며 자신의 순수 감정에 몰입하길 바랐다. 마치 이유식에 간을 하지 않는 것처럼. 어차피 자극적인 세상과 입맛에 길들여질 텐데, 그 시기를, 그것도 내가 먼저 앞당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 아이 모두 그 흔한 뽀로로 한번 보지 않고 컸다.
그런 나의 육아 소신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다간 아이들 세계에서 왕따, 은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서워할 수 없이 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정도는 보여준다고도 했다. 그게 맞다고 나만큼이나 강한 소신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었다. 뭐, 각자의 소신대로 사는 것이니 인정! 실제로 친구 딸이 학교에서 ‘문찐’이라고 놀림받은 일이 있었다. 그게 뭔데? 물었더니 유행어를 잘 모르는 아이를 두고 ‘문화 찐따’ 줄여서 ‘문찐’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려와 달리 우리 아이들은 뽀로로를 몰라도, 런닝맨을 몰라도 그런 놀림 한번 당하지 않고, 무사히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첫째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우려가 현실이 되는 건 아닌지, 내 안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아이들, 특히 첫째는 친구를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또래보다는 두 살 터울 동생과 놀이 수준이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둘이 그림을 그리고, 인형놀이를 하고, 레고놀이를 하느라 바빴다. 오히려 둘째가 언니를 배신(?)하고 친구를 더 빨리 찾았다.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 보면, 둘째는 꼭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지어 나와서는 친구들과 더 놀고 싶다고 조르곤 했다. 반면 첫째는 친구들이야 어떻든 내 갈길 간다며 혼자 덜렁덜렁 나오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면 첫째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친구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했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우러 다녔다. 친구 의존도가 높은 아이는 친구 때문에 학원을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해서 문제라던데, 그런 부분에서 만큼은 참 다행이다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친구 따라 강남 갈 때, 첫째는 강남에 가고 싶으면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을 자유가 있었다. 저학년 때까지는 별 걱정 없이 아이의 그런 성향을 존중했다. 어느 드라마의 명대사 처럼 어차피 인생은 돛대, 혼자서 가는 거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첫째를 보는 내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아졌다. 어쩌다 친구와 함께 나오는 첫째를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결국 인생이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왕이면 친구와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라고 바랐던 것이었다. 정작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보는 내가 몹시 불편했다. 혹시 학교에서 외톨이려나? 아이의 학교생활과 친구관계가 몹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한동안 읽지 않던 육아서적을 다시 꺼내 읽고, 포털사이트에서 폭풍 검색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싶었지만, 그건 참았다. 나의 또 다른 육아 소신 중 하나가 ‘편견 없이 키우기’이다. 나의 불안과 걱정으로 아이에게 ‘혼자 다니는 것 = 잘못된 것’이라는 편견을 심어주고 싶진 않았다. 머리로는 확인되지 않은, 실체 없는 걱정이니 너무 앞서 가지 말자 하면서도, 이미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4학년이 되었고, 그때부터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는데, 갑자기 두 눈에 호기심을 반짝이며 세상 밖으로 나아갈 채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자기 자신과 가족 말고도는 별로 관심도 없더니, 어느 날인가부터 친구들을 궁금해하고, 세상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무서워하던 강아지를 향해 용기 내어 손을 뻗는가 싶더니, 어느새 쓰담쓰담, 급기야 고양이 카페까지 진출했다. 학급회장 선거에 손을 번쩍 들고나갔다가 한 표도 얻지 못하고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며 쿨내 뿜뿜하는 아이를 보면서 ‘정말 내 딸 맞아?’ 싶었다.
그 후로 아이는 빠르게 세상을 흡수해갔다. 5학년이 되자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대형마트로 놀러 가기도 하고, 친구를 집에 데려와 자기 방에 문 닫고 들어가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들 대부분이 아미인 것과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검은색 아디*스 삼선 운동복 바지만큼은 이해하지 못했다. 방탄소년단이 뭐가 좋다고... 세상에 알록달록 예쁜 옷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며 절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던 아이가 6학년이 되고, 가을이 되자 초록잎에 단풍이 들듯 변했다. 아미가 됐고, 검은색 삼선 운동복 바지에 하얀색 후드티를 입는 보통의 또래로 급성장했다. 덩달아 둘째도 아미가 됐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결국 각자의 속도로 큰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개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면서도 정작 또래와 같아지길 바랐던 나의 모순된 마음과 걱정이 모두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았다. 때가 되면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을 만큼 훌쩍 클 날이 올 텐데 나는 왜 그렇게 조바심을 냈을까?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종종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유난히 겁 많고, 소극적이던 늑대아이 ‘아메’가 어느 날 문득 늑대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숲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 들어간다. 엄마 ‘하나’는 흔들림 일도 없이 단호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면 좀 더 편할 것을, 숲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할 텐데, 늑대의 삶은 무척이나 고단 할 텐데... 등등 수많은 걱정을 뒤로하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줄 뿐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폭풍오열을 했더랬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찌릿, 코끝이 시큰해진다. 물론 경우야 다르겠지만, 우리 아이들 역시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방식이건, 아니건 내 품을 떠날 날이 오겠지. 그때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육아에 있어 가장 힘들면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내려놓음과 받아들임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그 날이 왔을 때 잘 내려놓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직 자신할 순 없지만 나름 각오는 하고 있다.
아이들을 이만큼 키우고 보니 이런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야 늘 꾸준히 크겠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받아들이는 엄마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훅하고 크는 느낌이랄까. 언제 크냐 싶다가도 금세 추억이 돼있고, 마냥 어리다고 생각하다가 훌쩍 커버린 내 아이의 모습에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 지금 남편이 그러지 않을까? 남자는 아빠밖에 없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아빠 아닌 다른 남자가 좋다고 저 호들갑이니. 하긴, 나도 가수 참 많이 좋아했었는데... 소싯적 내 모습이 겹쳐 보여 자꾸 라떼를 찾게 된다.
“라떼는 말이다~” 좋아하는 해외 팝가수 영상회를 보기 위해 명동까지 가야 했었지. 그땐 유튜브가 없어서 큰 카페를 빌려 영상회를 했었거든. 친구랑 콘서트 갔다가 인파에 깔려 죽을 뻔한 일도 있었지.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한데. 종일 울어대기만 하던 팔뚝만 하던 핏덩이가 어느새 커서 나와 음악을 얘기하고, 드라마를 논한다. 그동안은 서로가 서로에게 일방적이었다면, 비로소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하다.
게다가 우리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하다니! 감개가 더 무량할 수밖에. 그러므로 나는 아이들의 첫 덕질을 응원하는 바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 사이다와 비타민씨, 아이스크림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덕질이라는 것이 결국은 내 스타가 광고하는 제품과 굿즈를 사모으는 일이라는 것을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아이들 방마다 포스터와 슬로건 등으로 장식한 시쳇말로 ‘덕질존’이 있다. 그 덕질존에 제물처럼 바쳐지는 제품과 굿즈들이 하나 둘 쌓여간다. 이러다가 용돈 다 탕진하는 거 아니야? 이젠 또 다른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안마의자 사달라고 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한 마음으로 다 마신 사이다 팻트병을 물로 깨끗이 씻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