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세상 밖으로 고고!
중학교 2학년인 첫째는 ‘모아’다,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팬덤 되시겠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는 그 유명한 ‘아미’다. 두 딸은 서로 다른 개성만큼 좋아하는 아이돌도 다르다. 적절한 덕질은 정신건강에 매우 이롭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러므로 두 딸의 덕질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바이다. 나는 꽤 쿨한 엄마니까.
그런데 기말고사를 앞두고 콘서트를 가겠다는 첫째 앞에서 나의 쿨함은 사라졌다.
“이건 좀 아니지 않니?” “왜요?”
말간 눈을 뜨고 되묻는 첫째에게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서울 공연을 마치면 바로 월드투어를 떠나기 때문에 언제 다시 서울에서 콘서트를 할지 알 수 없단다.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꼭 가고야 말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게다가 콘서트에 가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는가! 평소에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고 했던 내 말을 이토록 잘 들을 줄이야.
나 역시 나의 모든 희로애락이 미국의 보이밴드 ‘뉴키즈온더블록’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도 학창시절에 영국 가수 ‘클리프 리차드’를 좋아했노라고. 그렇게 덕질의 DNA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 느낌 아니까, 그 마음 모르는 바 아니니 그래 가거라! 기회가 왔을 때 도전이라도 해봐야지!
대신 그로 인한 결과는 모두 본인의 책임임을 강조했다. 가능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 믿는다. 본인 시험이니 본인이 제일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을 터였다. 게다가 표를 구해야 갈 수 있는데 그게 또 하늘의 별 따기라니 내가 굳이 말리지 않아도 못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쿨함을 가까스로 지켰다.
피케팅에 성공하다!
유명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는 것을 시쳇말로 ‘피케팅’이라고 한다. ‘피+티케팅’으로 피가 튈 정도로 티켓 구매가 치열하고 힘들다는 뜻이다. 그 피케팅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빠와 함께 참전하겠다 말하는 첫째의 태연함에 나는 또 한 번 어이를 상실했다.
“넌 같이 티케팅 할 모아 친구도 없니?” “그럼 있겠어요? 시험기간인데”
헙! 다른 친구들은 시험 때문에 콘서트는 꿈도 못 꾸는데 우리 첫째는 참 당당도 하지.
비록 실패했지만 아미인 둘째와 PC방에서 티케팅 경험이 있는 남편이 이번에도 별수 없이 첫째와 함께했다. 실패도 경험이라고 그만큼의 경험치가 쌓였는지, 운이 좋았는지 급기야 티켓 구매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3층 구석진 자리였지만,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은근 안 되길 바랐던 나조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마냥 기뻐할 수 있는 아이의 순수함이 부러웠다. 그러니 둘째는 오죽 부러웠겠는가. 입덕 3년 차인 자신도 아직 콘서트에 못 가봤는데 입덕한지 한 달도 안된 언니가 콘서트를 가게 됐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도 첫째의 생애 첫 콘서트 관람으로 우리 가족 모두 조금은 들떠 있었다.
첫째는 시험공부 틈틈이 콘서트 갈 준비를 했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 주변에서 팬들끼리 굿즈나 간식거리 등을 무료 나눔을 하는데 그걸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꼭 해야 하는 의무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무료 나눔 아이템을 기획하고, 만들고, 공짜로 공유하는 요즘 팬덤 문화가 신기했다. 콘서트는 곧 팬덤의 축제였다. 첫째는 축제를 제대로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모의 믿음으로 자라는 아이들
축제의 날, 첫째를 잠실실내체육관에 내려주고 집에 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무료 나눔 할 간식이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혼자 뻘쭘하게 서있던 첫째가 자꾸 눈에 밟혔다. 혼자 대중교통 한번 안 타 본 아이인데 혼자서 준비한 건 다 나눠줄 수나 있을까? 괜히 무안당하면 어쩌지? 마음에 상처라도 입으면? 화장실은 잘 찾을 수 있을까? 생수를 좀 더 챙겨줄 걸 그랬나? 괜한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것도 잠시. 언제 저렇게 컸지? 저런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참 대단하네! 설마 걱정하는 일이야 있겠어? 혹시 그렇다 해도 그 또한 경험이니 스스로 감당하는 수밖에 없지!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지! 쓸데없는 걱정 따위 날려버리고 첫째를 믿기로 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믿음만큼 자랄 테니까.
그렇게 아이는 내 품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나는 그 과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도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쌀국수가 먹고 싶다는 첫째를 위해 나는 쌀국수를 준비했다. 육수 스프로 간단하게 끓인 쌀국수를 호로록 맛있게 먹는 첫째가 예뻤다. 종알종알 콘서트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첫째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준비해간 간식도 다 나눠주고, 대신 이것저것 많이도 받아왔다. 같은 장소에서 직접 눈으로 무대를 보고, 귀로 라이브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다나 뭐라나.
“그런데 갑자기 쌀국수가 먹고 싶었어?” “아, 그게. 얼마 전 내 최애가 쌀국수 먹었다고 해서.”
아, 이런! 난 그것도 모르고 쌀국수를 끓여다 바쳤으니. 나는 가볍게 꿀밤을 한대 쥐어박는 걸로 삭쳤다. 그래, 뭣이 중하겠니. 네가 행복했으면 됐다.
자, 이제 꿈에서 깨고 현실로 돌아와야지? 기말고사가 코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