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어쩌면

해방촌 2026

by 자운

이날의 목적지는 경리단길이 아니라 해방촌이었습니다. 경리단길은 그저 점심을 먹는 김에 지나가는 정도였죠. 그래도 경리단길 역시 유명한 관광지니, 한번 둘러보기는 해 보죠.


둘러보기 전에, 일단 이 여정이 어디까지 왔나 한번 보자구요.

흠, 이제 대략 20% 정도 왔군요. 그러면 계속 걸어가 보도록 합시다.


왼편에 벽을 끼고 좁은 골목을 내려갑니다. 일방통행에 내리막길인데도 평일 점심에 교통량이 꽤 많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자세를 잡다가도 뒤에서 차가 와서 비켜주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이곳을 지날 때에는 조심하셔야겠어요.


경리단길이 저 밑에 보입니다. 그리고 남산타워가 크게 위용을 떨치고 있죠. 물론 남산 꼭대기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양도성 안쪽에서 보던 것보다는 정말 크게 보입니다. 아무래도 남산 남쪽 자락에는 주택가가 더 높이까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어느 정도 내려오면 오래된 상가 건물이 하나 나옵니다. 혜광의원이라고, 개업한 지 꽤 시간이 많이 지난 병원입니다. 이날 문을 닫았는데 오래된 건물이 주는 분위기에 더해서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그래서 폐병원인가 했는데-경리단길이 아무래도 요새 좀 경기가 좋지 않다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서-그냥 목요일에 휴진이었던 겁니다.


경리단길로 관광지가 되기 이전에, 이곳은 남산 자락에 펼쳐진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으니 의원이나 약국이 있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폐병원이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병원 주차장에는 철문이 두 짝 달려 있습니다. 정오를 살짝 지난 시간에 약간 비스듬히 내리는 빛으로 철문에 규칙적인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언제든지 이렇게 질서 정연하게 생기는 모양은 쾌감을 줍니다.


경리단길보다 약간 올라온 언덕배기에 병원 건물이 있어서, 축대를 쌓아놓은 것처럼 경리단길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열심히 경리단길을 찍고 있더라구요.

DSCF2464.jpg
DSCF2465.jpg

그런데 저는 갑자기 환기구 뚜껑에 꽂혀서 그걸 집중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빠르게 도는 물체를 과연 기계식 셔터로는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셔터 속도를 요리조리 바꿔가면서, 전자식 셔터를 켰다 껐다 하면서 찍어보고 있었습니다. 경리단길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조금 더 찍어볼 걸 그랬네요.


언덕길을 따라 마저 내려가면 교회 건너편, 마을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하나 보입니다. 길을 건너면 분명 삼거리처럼 보이는데 차도는 이어져 있지 않은, 신기한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슈퍼부터 술집, 밥집에 온갖 가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찻길이 다시 나옵니다. 물론 좁은 골목길이지만요. 그곳에는 얼마나 오래됐을지 가늠하기 힘든 세탁소가 하나 있습니다.

DSCF2466.jpg

드라이. 수선. 의류 성형. 리폼. 양장과 양복. 어마어마한 고수 한 분이 아직도 운영하는 그런 가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CCTV도 하나 돌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DSCF2467.jpg

세탁소(2026)

서울, 용산


여기, 서울의 어느 한 구석에, 명품도 수선이 가능한 세탁소가 있습니다. 수선, 리폼, 의류성형, 양장, 양복, 드라이크리닝. 필요한 건 뭐든지 해드립니다. 오래되어 빛바랜 작은 태극기도 하나 나부끼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에 품은 뜻이 다르기도 한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뜻이 그렇든 아니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톡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기도 합니다.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사람을 '호구'라고 부르면서 어떻게든 벗겨 먹으려고 하는 사회에서 좋든 싫든 자기를 감싸는 옷을 두르게 됩니다.


그 옷은 여기저기 찢기고 올이 풀어집니다.


똑똑,


다친 마음도 수선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