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2026
점심을 먹고 나와 계속 걸어봅니다. 가게 앞은 그냥 평범한 골목길입니다. 문득 바로 옆을 보니 큰 공터가 하나 있었는데 뭔가 건물들을 부수고 새로 지으려는 듯 합니다.
가림막을 쳐 둔 골목길에 대어 둔 오토바이에 빛이 멋들어지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빛으로 하는 예술이라고 그러던데, 빛이 예뻐서 그런가 평범한 오토바이지만 꽤 잘 나온 모습입니다.
주차(2026)
서울, 용산
부르릉.
주인이 일터에서 돌아오면서, 골목에는 시끄럽지만 활기찬 소리가 가득하다. 다른 사람들이 잠에 드는 시간에 일하고 날이 밝으면, 주인은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하는 것 같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구석에 알맞은 자리를 찾아준다. 이쯤이면 좋겠지. 마음에 든다.
열쇠를 돌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온 골목을 울리던 엔진 소리는 조용해졌다. 하루 동안 고되었던 피로를 풀었으면 좋겠다.
동네 고양이 몇 마리가 안장에 올라탄다. 따뜻해서 좋은가 보다. 고로롱, 고롱. 좋다.
방금 전까지 따뜻했던 심장의 잔열만이 남아 있다. 다시 시동을 걸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번호판을 지우는 데 한번 라이트룸 AI 지우개를 활용해 봤습니다. 필름 그레인을 넣었는데도 훌륭히 잘 지워주는 모습입니다. 요새 AI가 많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게 될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방음벽에 귀엽게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자유를 쟁취해 냈다네요. 얼마나 자유로워졌을까요.
왼쪽으로 공터를 끼고 계속 골목길을 걸어 봅니다. 내리막길의 끝에서 경리단길 골목이 멀리 보입니다. 아마 저쪽이 경리단길의 '메인 스트리트'인가 봅니다.
주위를 눈을 씻고 둘러봐도 평범한 주택가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 동네가 핫플레이스로 유명해진 걸까요. 아직 번화가로 나가지 않아서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옆으로 뻗은 언덕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또 다른 현장이 보입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책으로 펴낸다면 얼마나 두꺼울지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잔뜩 그래피티로 도배된 작은 철문이 하나 보입니다. 누가 처음으로 저기에 낙서를 했을까요? 처음 저기에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 사람은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갈 거란 걸 알았을까요?
계속 걸어 내려갑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남산타워가 커다랗게 눈앞에 나타납니다. 그럼 이제 가져간 삼성 렌즈를 활용해 봐야겠죠.
2008년 언저리에 펜탁스 dslr을 택갈이해서 팔던 모델의 번들렌즈로 구성돼 있던 친구입니다. 50mm부터 200mm까지 망원단을 커버할 수 있죠. 이제 후지는 크롭을 쓰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환산 75mm부터 300mm까지 초망원 구간을 찍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안타까운 부분. 이 시절 나온 펜탁스 k마운트의 렌즈는 조리개를 바디에서 조절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려 전자접점이 있음에도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제어하게 되죠. 어떤 방식이냐면 마운트링 안쪽에 작은 막대기가 있어서 렌즈 조리개와 연결되어 있는 작은 꼬리를 움직여 조리개를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조리개를 조절하려면 마운트 컨버터 중에서 조리개를 돌릴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을 써야 합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건 이겁니다.
펜탁스 k마운트에서 후지 x마운트로 변환해 주면서 가운데 있는 링을 돌려 조리개도 조절할 수 있죠. 일반적인 수동렌즈처럼 반 스탑씩 조절 가능할 줄 알았는데 구조상 그런 건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최대개방과 최소개방 두 가지로만 찍고 있습니다. 조리개 개방이 가능하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여튼간에 다시 돌아와 보면 200mm로 땡겨서 크게 찍어 본 결과물입니다. 20년 정도 된 렌즈에다가 후지필름의 클래식 네거티브 필름 시뮬레이션을 곁들이니 정말 필름으로 찍은 듯한 느낌이 나 줍니다. 진짜 그 시절에 찍은 사진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여러분도 만약 후지필름을 사용하고 계신다면, 옛날 렌즈를 구해서 한번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후지필름을 쓴다는 건 필름시뮬레이션을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는 뜻일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