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2026
가스관이 건물 외벽을 타고 질서정연하게 기어오르는 모습이 참 신기하지 않나요. 벽을 따라 이리저리 굽이치는 이런저런 관들과 연통을 구경하면 작은 건물 한 채를 짓는다고 해도 정말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도 축대를 내어서까지 집을 들여 놓은 모습이 보입니다. 담벼락에 대문까지 놓치는 것 하나 없이 지어진 멀끔한 주택입니다. 구석에 친구가 살짝 나왔네요. 친구가 바라보는 방향에 후암동 108계단이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일제 시대에 남산 신사가 있던 곳이었답니다. 후암동 108계단은 이 신사로 오르는 계단이었고요. 일제가 패망한 이후 신사는 폐사되었지만 계단은 남아 지형을 따라 마을이 들어서면서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편의를 위해 계단 한가운데에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분명 계단을 내려다보는 그 느낌을 해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겨울에 눈이 쌓였을 때 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합니다. 중간층 몇 군데에서는 옆으로 빠지는 조그마한 샛길로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눈은 오지 않았지만 한겨울의 칼바람이 언덕을 따라 불어오는데 훈훈한 엘리베이터를 타니 마음도 같이 녹는 느낌이었달까요.
해방촌(2026)
서울, 용산
이 땅 어느 곳 어느 구석 꽃피지 않은 자리 누군가 죽지 않은 자리 없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장소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악몽이 새겨진 곳일지도 모른다.
흙먼지가 폴폴 날아다니는 모래바닥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다. 언젠가는 돌과 흙과 나무뿌리가 막 뒤엉켜 있었을 이 땅을 생각해 본다.
그래도 한꺼풀 쌓인 옛 먼지 위로 오늘의 새로운 먼지 한 톨이 내려앉는다. 사뿐히.
이 언덕 위에서 써내려간 그 모든 이야기들에 경의를 표하며.
저 사진은 사실 이런 구도로 찍은 걸 조금 크롭한 겁니다. 후지필름의 DR 설정을 DR 400%로 했는데도 하늘 쪽은 노출이 날아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아예 측광을 엘리베이터 1층 타는곳 쪽으로 맞춘 다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도 그 구도로 맞추니 그나마 노출이 적당히 잘 잡혔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갔습니다. 중간층에도 설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사람이 없어 따로 정차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내려가는 방향 기준으로 왼쪽 문이 열리지만, 내리려는 층수의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반대편 문도 열리게 할 수 있었습니다. 양쪽으로 문이 달려 있어 자유롭게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 참 기발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방촌이 있는 언덕은 빠져나왔지만, 비슷한 모양의 좁은 골목길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차를 어디에다가 대고 다니시는 걸까요? 주차장이 딸린 필로티 건물들도 여럿 있었는데, 아예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간 집들은 진짜 어디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을지 궁금하네요.
아, 그래서 케이블은 어떻게 됐냐고요?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후암동 버스 종점이 나옵니다. 이 옆에 있는 GS25에 들어가서 9천원짜리 케이블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60W 고속 충전을 지원하면서 케이블에 자석이 포함되어 있어서 꼬이지 않게 동그랗게 말아서 정리하는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와! 정말 실용적이에요. 이후로 카메라 가방으로도 쓰고 편하게 메고 다니는 유니클로 크로스백에 넣어 두고 쓰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케이블을 깜빡해서 카메라를 못 쓰는 일은 없을 거예요.
덧붙이자면, 저번에 한 번은 보조배터리와 '케이블'을 챙겼는데 보조배터리를 까먹고 충전을 안 해서 무용지물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적어 두고 보니까 너무 정신이 없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