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고 말하다

해방촌 2026

by 자운

일련의 케이블 사건의 여파로, 후암동 버스 종점에서부터 남산 자락을 따라 오르는 동안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로 한번 대신해 보도록 하죠.


후암동 버스 종점은 예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역에서 202번 버스를 타는데 방향을 반대로 타서 이쪽으로 왔던 거죠. 다행히도 금방 회차해서 나가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만약에 강서구나 부천으로 가는 버스를 잘못 탔고, 그걸 한참 있다 깨달았더라면 정말 아찔할 뻔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바뀐 건 없더군요. 벽돌 건물들이 쭉 자리하고 있고 버스 종점 근처에 조그마한 구멍가게 있고. 이쪽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 가봤습니다.


친구가 말하기를 자기 수능 본 용산고가 이 근처에 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용산고까지 와서 수능을 봤냐 물어보니 종로구 사는 친구들은 이쪽으로 많이 왔었다네요. 자기 원래 다니는 학교가 아닌 근처 다른 학교를 시험장으로 해서 보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길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산허리를 자르고 지나가는 옹벽이 있는가 하면, 바로 깊은 계곡 같은 곳에 집들 머리 위를 지나는 다리가 나오더군요. 이때쯤 오른쪽 작은 골목으로 꺾어 등산로에 버금가는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갈지자로다가 언덕길을 오르고 계단을 오르다 보니 포장된 길이 나옵니다.


그 길은 그래도 좀 평평하다 싶어서 그런지 언덕 밑에서보다는 큰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대원정사입니다.

분명 절인데 왜 절 사(寺) 자가 아니라 집 사(舍) 자를 쓰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곳은 일반적인 절이 아니라 동국제강 회장님이 설립하신 곳으로 특정 종파에 소속되지 않고 불교를 널리 알리려는 목적을 가진 곳이라 하더군요.

야외에 약사여래불상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약합이 동글동글 귀엽습니다. 온 중생들이 가진 질병을 치료해 준다고 합니다. 특정 종파에 소속되지 않고 불교의 뜻을 널리 퍼뜨리려는 이곳에 어울리는 조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건너편 벼랑 쪽으로는 순백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매끈해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오돌토돌 입자감이 있는 표면입니다. 클래식 네거티브 필름 시뮬레이션의 하늘의 색과 흰 벽, 그림자가 예쁘게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이 건물들을 뒤로하고 4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콤포타블 남산입니다. 친구가 루프탑 카페로 가고 싶다고 해서 주변을 찾아봤는데 대부분은 루프탑 '브런치' 카페라 저희가 생각하던 그런 카페보다는 간단한 레스토랑에 가까운 모습이었달까요. 이미 점심을 먹은 상태라 그건 조금 과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약간 멀기는 하지만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해가 질 때가 되니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하더군요. 테이블 가운데에 있던 꽃병에 그림자가 멋들어지게 드리웁니다.


카페는 4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층 밑에는 그랑핸드라고, 향수를 취급하는 매장이 있었습니다. 이 두 곳은 같은 회사에서 하는 건지 콤포타블에서 주문하면 그랑핸드의 시향지를 하나 같이 주더라고요. 나중에 광화문에 있는 콤포타블에도 가게 되었는데 역시나 그곳에서도 그랑핸드가 함께 나왔습니다. 광화문에는 매장이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가볍게 걸어서 둘러볼 만했습니다.

친구는 이곳의 특선 메뉴인 '남산'을 시켰고, 저는 카푸치노 한 잔과 함께 이날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습니다. 오 저기 문제의 케이블이 보이네요. 저렇게 동글동글 말려서 자석으로 붙어 꼬이지 않는 점은 좋습니다. 물론 다이소에 갈 수 있었다면 2천 원이면 샀겠지만요.


이렇게 해방촌 이야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이 정도로 긴 글을 쓰는 건 대입 시절 자기소개서 이후로 처음인 것 같네요.


매주 세 편씩 이야기를 올리다가 중간에는 브런치에 초록색 블로그에다가 인스타그램까지 하다 보니 너무 판을 크게 벌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산 여행을 가게 되면서 일정이 겹치는 김에 설 연휴까지 브런치를 잠시 쉬어 보았습니다. 일종의 휴재 비슷한 걸 한 거죠. 브런치에 따로 그런 기능은 없어서 '휴재' 명판을 내걸어 보지는 못했지만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숨이 좀 트이더군요. 브런치라는 걸 써보겠답시고 무작정 덤벼들기에는 많이 어려운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글을 조금 더 잘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습니다. 다음번에 무얼 연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글을 올리면 신기하게도 바로바로 라이킷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알림에 누가 라이킷을 했는지 이름이 뜨다 보니 자주 라이킷하시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이름을 외우게 되더라고요. 대략 다섯 분 정도는 고정적으로 계속 제 글을 읽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꾸준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더 좋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2026년 3월, 산수유꽃 피는 곳에서.

자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