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노트

#열하일기

박지원

by 미셸 오

십여 년 전에 호주 여행을 몇 번 다녀온 후,

첫 세계 여행의 흥분이 사라지자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

호주의 그 넓은 땅을 오갈 때 어디를 가려면 최소 두 시간이 걸려야만 하는 그 넓은 , 먼 거리가 지루했기 때문이다.

동생이 사는 호주 브리즈번의 동네를 거닐 때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 아름다운 각양각색의 전원주택 같은 집들이 질서 있게 들어선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테라스의 흔들의자에 앉아 그림처럼 책을 읽던 노인. 길가에 쓰레기 한 조각 보이지 않던.. 어떻게 그렇게 조용하고 깨끗할 수 있을까 하였다.

문가에홍색으로 붉게 피어나던 이름 모를 꽃. 잔디들. 무성한 나무들과 새소리.

그러나 자기들만의 차를 타고 일터로 다 떠나버린 한 낮의 동네는 적막하고 심심했다. 개인차량은 필수.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려면 엄청난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나라처럼 길에 나서기만 하면 흔하게 오가는 버스도 택시도 찾기 힘들었다.

깨끗하고 조용한 관광의 도시.

샴푸 하나 과일 하나를 사기 위해 시티로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성미 급한 나에게는 불편해 보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만 내려가면 온갖 가게들이 즐비한 한국에서의 삶이 복닥 복닥 해도 훨씬 낫다고 여겼던 것이다. 다른 나라를 보고 나서야 우리나라도 살만하구나 느꼈듯이 여행은 떠나면서부터 자기가 살던 자리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세계로의 첫 여행은 많은 깨달음은 주었다. 넓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우리나라가 우물 안처럼 느껴졌고 내 관념의 세계가 내 가슴이 드넓게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삶에의 도전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기존의 일들에서 새로운 힘을 얻었던 것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었음을 어찌 부인하랴.




반면

교통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대에, 나라 간의 교류도 적고 타국을 향해 떠나기 쉽지 않았을 옛날에는 어땠을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그때의 실감나는 중국 여행을 느낄 수 있다.

이 책 앞장에 이렇게 적혀있다.


1780년 부도 명예도 없이 울울한 심정으로 40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던 연암 박지원에게 중원 대륙을 유람할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생일) 축하 사절로 가게 되면서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연암을 동반하기로 한 것이다. 5월에 길을 떠나 10월에 돌아오는 장장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기록한 것이 열하일기인 것이다.


당시 청나라 기행문으로 가사 형식의 한글로 된 홍순학의 <연행가>라는 글이 있다. 20대의 작가가 경기도 에서 태어난 후 그 지역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해서 중국행을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신 일행이 압록강을 건널 때 참담해하던 모습과 만주 벌판에서 한뎃잠을 자며 들짐승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밤새 징을 두드리고 화톳불을 피우던 모습. 길에서 밥을 지어먹는 모습 등 그들의 6개월간 여정이 나타나는데 그 여정이 <열하일기>에서도 똑같이 이어진다.

당시 사신들이 청나라를 오가던 기간은 거의 6개월이었던 것 같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청나라로 가는 여정이 컬러판으로 자세히 잘 나와있어 그들이 거쳐간 긴 여정을 짚어가며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사진과 그림들이 적절하게 실려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앞 페이지에 있는 열하까지 이어지는 여정도


비행기 한 대로 몇 시간에 안에 갈 거리를 걸어서 말을 타고 배를 타고 갔으니 그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대 중국인들이 열광하던 조선의 특산품이다.

사신 일행들이 조선에서 가져간 특산품은 '우황청심환'과 '부채'다.

길에서 만난 중국인 과일 장수들도 대갓집 주인들도 조선의 우황청심환을 원하고 그것 하나면 과일이든 식사든 해결되는 것을 보면 당시 조선의 우황청심환이 인기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지에서 박지원이 중국인들과 필담을 통해 의사소통을 막힘없이 하고 토론까지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사신들의 말고삐를 잡아주던 하인 종복이가 다리를 다쳐 일행들이 그를 놔두고 떠났으나 중국인들이 수레에 태워 박지원을 만나게 한 일. 하인 종복이의 다 떨어진 옷의 구질한 몰골.

양반들은 말이나 타고 갔지. 종들은 하루 종일 걸어서 그 여정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었다.

강을 건널 때마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말을 타고 조심스럽게 긴장하며 건너던 모습들. 북경에 도착했으나 황제가 국경지역 열하로 갔다는 소식에 열하까지 또 가야만 했던 사신 일행들.

열하에서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신들이 줄을 서서 황제의 접견을 기다리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박지원이 <양반전><호질><허생전>을 적어 양반의 위선과 조선 후기의 권력층들을 비판하였어도 그 인물의 실재 모습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만 느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의 가치관과 인물됨을 뚜렷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유교사상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서양의 사상들도 깨달아 알던 실용주의자요 철학자요 과학자였던 것이다.

박지원은 정말 멋진 조선의 인물이다.

중국의 학자들 앞에서도 전혀 꿀림이 없는 박식함. 그들이 거쳐가는 곳마다 벌어지던 사건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들. 목적은 북경의 황제를 접견하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중국을 6개월간 여행하며 다닌 것이나 다름이 없던 기행. 그들이 거쳐간 도시와 강들은 무수히 많다. 그 넓은 중국 땅을 가로질러 끝까지 도달하고 왔으니 그가 만났던 세상은 불혹의 나이에 울울하던 그에게 새 삶의 에너지를 충분히 주었음직하다.

중국의 각처에서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현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며 즐기던 그의 모습은 어쩌면 현대인들보다 더 개방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가 남긴 <열하일기> 의 문체가 당대의 문체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중국기행에서 얻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시대를 불문하고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좋은 성찰의 도구이자 새 힘을 얻게 해서 자기 자리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버팀목인 듯하다.






열하일기 표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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