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선한 일을 하라
이 책을 읽으면 간디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의 사상이 간디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책 안에서 밝혔듯이 힌두교인은 아니다. 모든 종교적 관점을 떠나서 그가 이룩하려고 했던 사회적 신념은 현대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그도 간디처럼 인간사의 전체를 비폭력 사회로 만들고 싶어 하였다. 그리고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썼다. 그의 사상이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인한 불평등.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생긴 노인문제. 정보가 날로 넘치고 개방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문제나 폭력 등등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대안이 되지 않을까.
다른 좋은 내용들도 많았지만 내가 밑줄 그은 내용들만 추려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의무는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섬김이 꼭 거창할 것일 필요는 없다. 작은 등불이라도 그 빛이 닿는 곳이면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을 빼놓고 하는 섬김의 행위는 이기적인 교만함을 만든다.
-성경에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되어있다. 비노바는 이웃을 섬기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 작은 것이라도 선을 행하는 것이 좋다고. 꼭 거창하게 베풀어야만 선일까?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세상을 평등하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일까.
또 돕는 자들이 자신들이 낸 돈 액수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기업을 광고하는 것을 보면 이웃을 돕는 것인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선한 마음이 없거나 이웃을 섬겨야 된다는 근본적인 자각이 없이는 교만함이 되고 도움을 받는 이웃에게 되려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였다.
-정신은 중요한 것이어서 어떤 일이 정신에 영향을 끼쳐서 인간이 그것에 대해 꿈을 꿀 정도까지 되어서는 안된다.
-요즘 인간의 정신을 푹 빠지게 하는 것들이 많다. 바둑. 도박.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쇼핑 등등 정신을 붙들지 않으면 중독이 된다. 이 중독이 바로 정신에 영향을 끼쳐서 해롭게 되는 경우다.
그래서 옛사람들의 "정신 차려라"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지혜의 말씀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호랑이에게 잡혀 먹을 수도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에 우리는 정신적으로 더 약해진 듯하다. 삶의 질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때문일까. 우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신감이나 삶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건강한 것이고 우울함 같은 것도 던져버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끝없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기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결점은 잘 찾아내지만 자신들의 잘못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한 점들을 아주 작게 나타날지라도 그것을 확대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차피 인간은 결함이 많은 피조물이다. 나의 결함이든 남의 결함이든 결함에는 주목할 필요가 없다.
-나 역시도 타인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인다.
눈이 밖으로 달려있기 때문이 아닌지. 남의 결점을 볼 때 자신의 결점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말이 있다. 상대방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그 사람의 결점이 보일 때 그것이 자신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해진다. 그래서 상대방을 비판하기보다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또 내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지적해 주길 바란다.
-선은 창문이며 악은 벽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의 집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선한 것은 문이다.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벽을 뚫고 들어가려면 우리의 머리만 깨질 뿐!
-누구나 선은 행할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복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쉽게 베풀 수 있는 선을 행하지 않는다.
오늘 커피숍에 앉아 창문 밖을 보는데 큰 종이 비닐이 (아마도 박스를 포장했던 것 같다) 이리저리 마구 휩쓸려 날아다니다가 차창에 걸렸다가 땅에서 소용돌이치며 굴러다니는 중이었다.
남학생들 7명이 무리지어 갔고 또 잠시 후 젊은 아줌마 두 분이 비닐을 피해 지나갔다.
그리고 여학생 다섯 명이 비닐 건너편에서 떼를 지어 지나갔다.
얼마 후
한 아주머니가 그 비닐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바람따라 손에 잡힐 듯 안 잡히는 그 비닐을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잡아서 손 안에 뭉쳐 잡고 가는 것이다. 쓰레기통을 찾는 듯 바삐 걸어갔다.
나는 일어서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바람에 걸려 누군가가 넘어질 수도 있고 차창에 걸려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걷는 사람의 안면을 칠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한 아주머니의 작은 선이 그것을 막았던 것이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비노바는 이웃에 대한 사랑도 강조하지만 특히 노인들을 우대하라고 한다. 그것은 그의 좌우명, 인간은 애정을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 속에 있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보다는 집단적인, 공동체 안에서의 정신적인 노력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노인들의 축복이 없이는 인간의 복지란 있을 수 없다.
한때 우리 젊은 사람에게 섬김을 베풀었던 사람들은 바로 그 노인들이기 때문에.
그 존경을 받아야 할 노인들은 우리들의 늙은 부모들이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공동체적 삶이었다. 늙은 부모들은 집 안에서 늘 공경을 받고 살았다. 그때 노인들이 자살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자살했다는 기사나 홀로 고독사 했다는 노인들의 기사는 무척 우울하다.
경로당에서 하염없이 자식을 기다리는 늙은 부모들은 결코 자신을 버린 자식을 탓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들을 섬기며 키웠을 부모를 버리지 말고 같이 먹고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살면 부모 모실 수 있다.
혼자만 잘 살겠다고 생각하면 부모는 귀찮고 무거운 짐이 된다.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리거나 모시고 사는 것이 칭찬받을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히 가진 것 없는 부모에게 자라나 당신 자신들 몸으로 때우며 키운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돈 한 푼 없는 것 부모 책임 아니다.
당신들은 나름 열심히 자식들을 키웠다.
부모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마라. 우리 부모세대는 그런 준비 할 여유 없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식의 의무다.
부모를 홀대하고 잘 사는 자식들을 보지 못하였다.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부자 자식이라도 부모를 돕지도 않고 모시지도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것만 보아도 돈이 많으면 부모에게 잘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아도 공경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을 칭찬하는 부모의 말 한마디가 축복의 말이 된다.
부모에게 축복받는 자식이 되는 길은 늙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건강한 노년이 자리를 잘 지켜야 우리 세대도 미래에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