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것의 의미
항상 언제나.
나는 단순하게 사는 것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은 후 여태껏 나의 삶은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고
또 그 허전한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닥치는 대로는 아니지만 사고 싶은 것들을 맘껏 사들여서 쌓아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옷을 넣어둘 서랍이 필요해서 서랍장을 들여놨고 얼마 전에는 늘어난 책을 둘 곳이 없어 책장을 하나 더 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나는 이미 읽은 책들을 어딘가에 기증을 하거나 버렸어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십 년 전에 읽은 책들을 기증하거나 버리고 했던 것이지만 그동안 또 사들인 책들이 버린 만큼 또 모였다.
쌓여가는 책들을 처분하기보다 그것을 정리할 책꽂이를 사서 방을 또 하나의 물건으로 채워버린 격이 된 것이다.
언젠가는 또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꽂아둔 책들과 너무 지겨워서 앞 페이지 몇 장만 읽고 꽂아둔 책들도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물건이 가득하지 않은 깔끔한 방 안의 시원한 공기를 잊고 산 듯하다.
햇살이 흰 벽에 부딪히고 방문을 열면 공기가 시원하게 흐르는 방.
우선 베란다에 있는 창고문을 열어 보았다.
창고 안에는 그야말로 잡동사니. 일단 눈에 안 보이는 곳이니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다.
크리스마스 트리용으로 샀던 플라스틱 소나무. 작은 전등. 장식용 리본들과 방울들이 담긴 박스.
검은 숯이 가득 담긴 소쿠리.
택배용 종이 박스들. 그동안 사들인 화분들.
형광등, 어디선가 떼어낸 나무판자들. 쇠파이프들. 스트레칭용 대나무들. 못이나 나사가 가득한 스티로폼 상자.
집안을 둘러본다.
늘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이라 쓸모없는 것은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버려야 할 목록을 적고 보니 제법 많다.
딸 애가 미술대학에 간다고 샀었던 이젤과 수채화 물감. 팔레트가 있다. 언젠가는 시간이 나면 직접 수채화를 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8년간 방치해두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 교회 집사님 그림 잘 그리는 아이에게로 갈 것이다.)
가습기가 있는데 모터 소리가 너무 커서 쓰지 않고 구석에 자리 잡은 것을 들어낸다.(처분)
- 비싸게 주고 샀으나 입을 때마다 불편해서 한 번도 입지 못한 가죽 코트는 나의 성급함과 경솔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계속 장롱 속에 10년 이상 방치해 두었다. (처분)
-15년 전인가. 검은 롱 원피스. 아까워서 계속 드라이만 해가며 걸어둔 것인데 다시 입어보니 발목까지 온다.
수녀복 같은 느낌. 이번에 과감히 처분하기로.
-옷에 맞추어 사들였던 덩치 큰 가방들. 사실 나이가 차면서 큰 가방들은 무거워서 들고 싶지 않아 몇 년간 방치.
- 디지털카메라는 봄에 가을에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멋진 풍경을 담으리라 상상했으나 곧 성능 좋은 스마트 폰에 밀려나 버렸다. 카메라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렌즈가 비싸서 편하게 들고 다니지도 못하겠고. 누군가에게 되팔고 싶다. 생각 중.
-그릇장에 가득한 접시들과 수입 그릇들은 언젠가 손님들을 초대해서 샐러드와 돈가스를 만들어 대접하리라 상상하며 샀는데 아직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접시는 꺼내 쓰고 나이프와 포크들은 처분하기로 한다.
-추억의 편지와 카드들-스캔한 후 처분함.
-낡고 색이 바랜 사진들-스캔 후 버림. 사진첩 안에서도 사진은 색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살을 빼리라고 산 승마운동기- 이웃집 아저씨에게로 감.
나는 물건을 잘 버리는 편이었고 또 안 입는 옷들은 기증도 잘 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처분할 게 많다니.
나 역시 이 책의 저자처럼 물건을 필요해서 산 것보다 사고 싶어서 산 것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수밖에.
저자는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가장 쉽고 빠르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물건이라고 한다. 그래서 물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고. 나도 그랬던 걸까.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하여 또 갖게 된 물건을 보관하고 유지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버렸던 것은 아닐지.
물건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절대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너는 결국 네가 가진 물건에 소유당하고 말 거야
이 책의 저자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건을 비싸게 주고 샀기 때문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있는가.
사용하지 않고 방치한 자신이 부끄러운가.
선물해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가.
추억까지 버리는 것 같은가.
아직도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건가.
단지 버리는 게 귀찮아서인가.
필요한 것 이상의 물건을 움켜쥘 때마다 우리는 그만큼의 자유를 빼앗긴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어도 정말 필요한 물건이라면 또 그 물건들을 통해 활력을 느낀다면 굳이 물건을 줄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계속 눈에 거슬리게 하고 신경이 쓰이는 물건이라면 미련 갖지 말고 버리는 것이 좋다는데 아깝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한 번 실행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계륵처럼 갖고 있다가 아깝게 마음을 졸이며 버린 후 더 이상 무모하게 물건을 사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물건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마음과 달리 뜻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작년 여름에 스마트 폰을 바꾸었는데 사실 억지로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2년 약정기간 동안 비싼 요금을 내느라 벅찼기에 적어도 고장이 나기 전까지는 계속 쓰려던 것이었으나
결국 통화가 안되어 새 전화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의류도 마찬가지다.
좀 싸게 산 옷은 한 번 입고 나면 후줄근해져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늘어지는 것은 예사고 보풀도 잘 생긴다. 면이라고 해도 피부에 닿으면 가끌거리고.
그래서 브랜드를 찾게 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넘치는 정보화 시대에 수많은 꿈의 광고에 현혹되어 현대인들은 그들이 파는 거짓 꿈에 낚이는 삶을 사는 것 같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집안의 물건을 재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필요한 것.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옷장 속에 가득 넘쳐나는 옷들이 있어도 계절이 바뀌면 옷가게를 찾아가서 새 옷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심리의 저변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색깔별로 구입하고 옷에 맞춰 가방까지 구색을 갖추던 시간들.
그 시간들. 그 돈들이 무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처럼
방안을 휑하니 비우지는 못하더라도 이제 정말 내게 꼭 필요한 물건만을 사기로 한다.
가끔씩.
쓰레기장을 연상시킬 만큼 집안을 쓰레기들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을 방송이나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본다.
어느 한쪽에서는 끝없는 물건의 소욕으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또 어느 한쪽에서는 버려진 쓰레기들이 아깝다고 주워 모으고
지나치게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필요 없는 물건들을 자꾸 사서 끝없는 욕망의 노예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 시대에 살면서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성찰이 결국 행복이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많은 물건을 소유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네 직업이 곧 너인 것은 아니야
네 재산 또한 너는 아니지
네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가 너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네 지갑 속 지폐가 너를 말해주지도 않아
그 빌어먹을 브랜드도 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영화 <파이트 클럽> 중에서 저자가 인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