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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Mar 05. 2016

#하나님과의 관계

모든 염려를 버리고 믿음으로 

사무엘상 28장 3절-8절

사무엘이 죽고 온 이스라엘이 슬퍼할 때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다. (3절)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오자 사울의 마음이 크게 떨려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으나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시므로 (4-6절)

사울이 그의 신하들을 통해 온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 (8절)


금요기도회.

우리 교회 젊은 부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기름부음이 있어 마음을 찌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어제의 설교말씀 중 내가 받은 것들만 적는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다.  

사무엘이 죽은 후  블레셋 군대를 바라본 그는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자기가 쫓아낸 무당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의탁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현재 눈앞의 상황만 바라보니 자신이 친 두려움의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을까?
그것은 사울이 이전에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인 사람이라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리 없다는 것이다.


 사무엘상 22장 18절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을 원한다면 목사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돌려서 말씀하셨다.  나는 부목사님의 그 말씀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사울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거침없이 죽이고는 자신이 위험에 빠지자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도 응답을 해주겠는가.

그리고 그는 죄를 버리는 것 같았으나 다시 죄로 돌아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왜 인간은 죄를 멀리한다고 하면서 또 돌아갈까.

그것은 인간이 죄의 본성을 물리칠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나쁜 줄 알고도 행하는 것이라고.

결국 무당 여인으로부터  "당신은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사울은 어떻게 되었는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때 사울이 하나님께 돌아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더라면 지옥행은 면할 수 있었을까?  그는 결국 전쟁터에서 죽는다.


역대상 10장 13절-14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또한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안다고 해도 대처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사울은 죽을 줄 알았으나 자신의 죽음을 막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미래를 아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전도서 7장 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우리들은 불확실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며 불안에 떤다. 그래서 노후대비니 미래 대책이니 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적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았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기도하기보다는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기도와 말씀을 멀리하니 나와 내가 처한 상황들이 아주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은 무척 불안하고 암울했다.  

' 내가 너무 교회일에만 미쳐있었어. 이제 정신 차리고 내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자  지금 이 시간들을 아깝게 허비하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그런 생각에 잘했다고 격려하는 주변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또 다른 일을 병행하며 돈을 더 벌 궁리를 하였다. 그러니 교회에서 주어지는 내 사명을 감당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작년 초봄에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사님,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귀한 사명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아셔야 됩니다."

"네 목사님 일 년만 쉴게요.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나는 그 일 년을 쉬지 못했다. 자격증을 따느라 몇 개월을 정신없이 보내던 중에

갑작스럽게 부모님 두 분이 교대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하고 어머니는 기력이 다해 곧 돌아가실 듯 내 속을 태웠다. 하던 일도 속시원히 풀리지 않고 갑갑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그런 일들이 생겼다면 하나님께 대놓고 따지기라도 할 텐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보니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하나님 안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했을 때의 마음의 평안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을 생각하면 나의 선택이 결코 옳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 역시 사울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위선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임의로 행한 일들이 다 헛된 것으로 결말이 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심령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세상의 소리들은 매일 우리들을 닦달하며 못 살게 군다.

'당신들의 노년은 불안하다. 그러니 연금저축을 늘려라. 재테크를 해라. 투잡을 해서라도 더 많이 저축해라.' 등등 오늘을 살기에도 벅찬 사람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끝없이 밀어붙인다. 다들 뾰족한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어제 금요기도회를 위해 교회로 걸어갈 때 보이는 세상은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인도마다 사람들이 즐겁게 오가고 상점마다 주말의 저녁을 즐기러 나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늘 주말이면 접하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내가 그 안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교회 안에 주님의 자녀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찔린 것들에 대해 마음으로 생각으로 말로 지은 죄들을 회개하고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어

마음의 평강이 임하였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아니다.


 마태복음 6장 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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