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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Feb 20. 2018

#가인과 아벨

오늘의 주제는 "죄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주일 말씀의 주제가 속건제였는데. 몇 주일째 계속 레위기 말씀만 이어지다 보니 이번 주엔 슬슬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팀으로 덮여진 예배당 안에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고 하나 둘 웃옷들을 벗기 시작한다. 예배당 오른쪽으로 난 큰 창문에는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어서 햇빛이라고는 조금도 들어올 수 없다.  환한 전등 빛이 켜져 있어도 왠지 갑갑한 느낌이 든다. 자외선만 걸러주고 밝은 빛이 예배당 안으로 스여들도록 블라인드를 교체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목사님은 여느 때처럼 천천히 조용히 설교말씀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설교 중간쯤에 이르니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갑갑해진 실내가 너무 건조해졌다.  들고 온 물병들을 집어 들고  목을 축이는 유비무환의 성도들이 부럽다. 목이 마르다.

"지불해야 할 임금을 체불하는 것도 착취요. 깎아서 지불하는 것도 착취입니다."

목사님의 다른 말씀들은 귀 옆으로 시냇물 소리가 흐르듯 다 흘러가고 임금체불. 깎아서 임금을 지불하는 부분에서 귀에 쏙 들어왔다.

'그래 최근 ** 학원 원장은 월급을 3일이나 연체해서 주었었지. 그리고 제시했던 월급에서 갑자기 월급 입금일에 세금이라면서 10프로를 깎고 주었어. 원장은 강사를 착취한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설교말씀.

"100의 일을 하기로 했는데 70의 일만 하는 것도 착취입니다."


' 그렇다면 나는 원장에게 100의 일을 다 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젓는다. 100의 일을 요구하는 자리에 120의 일을 하라고 했던 책,

<운을 읽는 변호사>을 읽고 100의 자리에 120의 일을 하려고 힘썼다.

 "자신의 죄를 속하는 속건제.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날에는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먼저 보상을 해 주고  그다음에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리는 겁니다."

레위기의 속건제가 오늘날의 성도들에 주는 의미는 바로 사람이 먼저란다.

갑자기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난다.  그분도 대통령 선거 때 늘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였지.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할 수 없다. 만일 싸웠다면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시기와 분노로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때 가인은 대답한다.

"제가 제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 말투에는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서려있다.

나도 만일 가인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평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었을까. 또 하나.

내가 만일 아벨이었다면 겸손할 수 있었을까.


"가인은 죄의 결과로 인해 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단절시키고 있고. 또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린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안에서의 죄는 그 죄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치리 하여야 하고 또 용서를 통해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웅웅대듯 들려온다.

아. 목마르다.

일어나서 시원한 물을 먹고 오고 싶은데. 양 옆으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어 일어서 나갈 수가 없다.

가인은 하나님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는 것이 옳았다.

"하나님. 제가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팠고 허리도 욱신거렸다.

마지막 찬송이 울려 퍼지고 창문의 가림막이 올라가면서 예배당 안으로 밝은 빛이 비쳐들 때. 그때서야 숨통이 트였다.


가인이 죄로 말미암아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린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가끔.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역할.

나.

딸이고 엄마고 누나이고. 고모이며 조카이고. 친구이며 선생님이고. 또 선배이고 후배이다.

내가 가진 모든 역할들이 싫어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이게 내 죄의 탓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내게 주어진 역할들이 부담스러워질 때 나는 내 죄를 생각해야 할까.

그러면 주어진 역할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감당해야 할까.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

채소나 양이나.

많은 부분이 생략된 말씀 그 사이는 아무것도 없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받았다는 그 말씀 안에 왜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는가에 대한 수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이해가 안 된다.. 솔직히.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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