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가 진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걷는다.
차들이 붉은빛을 달고 달린다. 나무들도 지는 햇살을 몸으로 받아내며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인적이 뜸한 길. 저 앞으로 이어진 길을 바라본다.
언젠가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때 그 시간에 산책을 하였더라면' '지는 해를 보고 나무에 솟아나는 새순을 보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산책을 나선 길이다.
산책로 옆 차도도 한적하고 꽃집에서는 봄꽃들이 차에서 내려지고 있다. 그 집 앞을 지나면서 제라늄이 들어왔느냐고 하니 오전에 다 팔렸다고 한다. 꽃집 주인은 소쿠리에 분홍색 장미꽃을 꽂고 있다. 누군가의 축하 꽃바구니인 듯하다. 걸으면서 진지하게 나를 마주하고 싶었는데 발걸음만 앞을 나아갈 뿐 원했던 성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단순한 걸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다만 오늘 낮에 지인끼리 비싸고 느끼한 점심을 먹었고 또 백 다방에서 밀크티를 마신 것만 기억이 난다.
사실 그 점심도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모임이 마쳐지고 나면 기력이 없는 친정엄마에게 '도다리 쑥국'을 사드리려고 했던 건데.
그리고 아까 미처 전화를 받지 못한 분에게 전화를 한다. 수업을 하느라 미처 받지 못했던 전화다.
경쾌한 목소리. 예전에는 나도 저렇게 전화를 받았던 것 같은데. 나의 중심에서 나와 나이차가 좀 난다 싶으면 다 젊다. 제때에 전화를 못 받은 것을 사과하고 끊었다. 계속 걷는다.
70대로 뵈는 할머니 한 분이 기계에 올라서서 허리 운동을 하고 있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해서 얼굴이 안 보인다. 길 옆을 보니 솔방울들이 가득하다. 다들 봄이라고 꽃을 피우는데 소나무는 솔방울을 떨어뜨린다.
며칠 전 소나무 주변에는 마른 솔잎들이 가득했다.
예전 같으면 다 땔감으로 썼을 거라는 청소부 아저씨의 말을 생각한다. 아저씨는 솔잎들을 소나무 주변에 모아놓고 '갈비'라는 표현을 썼다. 아까운 듯 갈비를 계속 보고 있던 아저씨.
'갈비'는 여염집 아궁이 안에서 화르륵화르륵 기세 좋게 타올랐겠지. 마른 삭정이와 솔잎을 열심히 모으던 옛 기억을 가진 분인 듯하였다. 오늘 보니 그 '갈비'들이 거의 다 치워져 있다.
길은 연하여 있고 잔디도 깔끔하게 깎여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 길을 걷던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녀는 나보다 네 살 아래였는데 늘 모자를 쓰고 다녔다.
완치될만하면 또 재발하고 커트머리가 되려고 하면 또 머리를 밀고....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멀리 세상 밖으로 날아가버렸다.
그날도 이맘때쯤 오후였다.
산책하는 데 누가
"왁~!"
하면서 내 어깨를 잡았다.
"깜짝이야~"
봄옷을 가볍게 입고 모자를 쓰고 짓궂은 웃음을 머금고 날 보던 그녀.
오랜 병마와 싸우느라 여윈 얼굴 속에 눈만 맑게 서늘하게 빛났다.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있다더니 언제 퇴원했을까. 그 날이 그녀를 본 마지막이다. 늘 큰 소리로 웃고 상대방에게 돌직구를 세게 날리던 그녀였다. 결혼 후 찾아온 그녀에게 육체의 질병은 그녀의 인생을 황무지로 만들었다.
그녀를 잊기 위해 다른 기억을 끄집어낸다.
'아까 경주에서 도착한 콩잎 김치가 좀 냄새가 강했어. 맛있다고 댓글을 달았던 사람이 아르바이트 생은 아니겠지.'
사실 콩잎김치를 주문 후 입금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제 전화가 왔었다. 선량한 목소리의 중년의 아저씨.
주문한 것을 바로 보내주겠으니 할 건지 말 건지 물었다.
"바빠서 아직 입금을 안 했는데요.."
전화 속 아저씨는
"나중에 입금하세요. 지금 배송차가 와서요 같이 보내는 김에 보낼게요"
그래서. 하겠다고 하고 오늘 받은 것이다. 냉장고에 두고 차가워지면 맛이 날려나.
나는 자꾸 계산이 없는 순수한 사람들에게 한없이 약해진다.
이제 길게 길게 이어졌던 길을 다시 돌아온다.
해는 아까보다 더 졌다.
녹음했던 목사님 설교를 켰다.
"물을 포도주로 ᆢ죄와 죽음에서ᆢ. 영원한 생명을 예수ᆢ이 땅에 오셨다."
다시 끈다.
저 멀리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산책로가 굽어지는 소나무 사이에 몸을 반쯤 가린 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들 머리 위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흩어졌다.
애들을 피해 옆길로 샐까 고민하는데 담배를 다 피웠는지 마주 걸어온다. 그 애들이 내 옆을 스칠 때 담배냄새가 났다. 요즘 애들은 무리 지어 있으면 괜히 피하고 싶다. 아까 백 다방에서 우리 옆 테이블에는 여중생인 듯 한 여자아이들이 분첩을 들고 허옇게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바르고 있었다.
"저 예쁜 피부에 저걸 왜 바를꼬?"
옆에 있던 한 분이 탄식을 하였다. 우리가 바라보자 기분 나쁜 듯한 표정을 지어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저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닐까요?"
나는 그렇게 말해버렸다. 화장을 안 한 너희들 피부가 훨씬 예쁘다고 말해본들 헛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왼쪽 찻길 정거장에 버스가 서더니 한 남학생이 내린다.
그 애 옆모습을 보니 우리 교회 고등부 학생이다. 그 아이는 분명히 나를 먼저 본 듯한데 모른 척하고 간다.
가방을 메고 오른손에 휴대폰을 든 체.
'자식... 옆 눈으로 나를 의식 하지나 말지.'
나를 의식하며 앞만 보고 직진하는 그 남학생이 귀엽다. 허긴 처음에 그냥 어색해서 모른척하려 했는데 뒤늦게 아는 척하면 더 이상하지. 군인처럼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쪽으로 들어간다.
며칠 전 보다 확실히 날씨가 풀렸다.
이제 나무들은 작은 새순을 틔우는 중이다. 다음 주에는 개나리꽃이, 동백꽃이, 목련이, 철쭉이 서서히 피어날 듯하다. 봄에는 12개의 꽃바람이 분다고 한다. 봄에 피는 꽃은 순서가 있고 빨리 피면 빨리 지고 늦게 피면 늦게 진다. ㅜ매화가 동백이 피는가 싶은데 목련이 화들짝 피어날 게고 또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그리고 철쭉이... 나중에 봉숭아가 차례로 피겠지.
황무지 같던 땅에서 꽃을 피우는 자연을 보면 죽음으로써 부활한 생명을 본다.
얼마 전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지. 인간이 기계에 진 것이 아니라 개인이 기계에 진 것이란 말에 울컥했다.
새벽기도를 갔다 오는 날에는 아파트 광장을 바쁘게 걸어서 출근하는 많은 직장인들을 본다. 추운 겨울의 새벽에 마스크까지 하고 웅크린 어깨를 잔뜩 모은 체 걸어가는 사람들. 날마다 반복되는 공허한 일상이요 고단한 모습으로 보일 때가 많다. 저들도 언젠가는 기계에 일자리를 잃고 말까? 고단한 일상이라도 일거리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황무지 같아.
기계가 인간을 앞지르는 과학적 지성의 시대가 희망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절망적이다.
이 황무지 같은 세상에. 정신적 절망의 시대에 젊은 새순 같은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화장을 하고... 그들의 정신적 공허함을 보는 듯하다.
그래도
매년 봄에 비를 뿌리며 언 땅에서 새순을 키우고 부활하는 모습처럼 인간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겠지. 누군가가 죽을 때 누군가는 태어난다.
비록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지라도.
알파고가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이 가진 영혼에 대한 사랑이나 갈망이 없는 것처럼.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언 땅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태어나게 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나간 것을 돌아보면 후회할 것이 가득하고. 망각이란 것이 오늘을 살게 하는지도.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오늘도 열심히 살지만 인간의 한계란 것이 있어서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그래서 지나온 삶을 거름 삼아 다시 부활하는 수밖에.
내일을 향해 되돌아간 태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샨티 샨티 샨티"
*샨티-'희망을 기원한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