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기도 싸락눈이 내렸다.
나중에는 빗물인지 눈인지 헷갈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에는 하얗게 눈이 쌓인 것 볼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수업시간이었다.
상기된 얼굴로 나타난 여학생들.
학교 운동장에 나와서 눈을 밟았단다.
텅 빈 운동장에서 까만 롱 패딩을 입은 두 여학생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싸라기 눈에 젖은.. 하얀 눈이라고는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그 운동장에 두 명의 소녀가 걸었던 발자국이 뚜렷하다. 질척한 흙길에 낸 신발 자국 같다.
눈 구경하기가 귀한 지역에 살다 보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는 것은 신기하고 설레는 일이다.
다들 교실에서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않는데 두 명만 운동장으로 나왔단다. 눈을 받으려고 하늘로 편 손바닥을 보니 소녀들의 가슴속에 가득했을 감성이 충만하게 차오른다.
손바닥에 닿자마자 사라져 버렸을 하얀 눈은 그들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식혀주었을까.
사진을 보니 어제 같은 나의 소녀시절을 오버랩하게 된다.
이 두 명의 여학생들 외에도 다가오는 봄에 고등학교에 입학할 소녀들의 수업은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자기네들끼리 킬킬 대고 웃어 가까이 다가가 보면 복사용지 끝에 인형을 그리고 있다.
정말 할머니 모습이구나~!
그 사실적인 그림 앞에 웃음이 먼저 터진다.
꽃무늬 원피스에 뽀글한 머리. 흔하게 보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손을 다 그리면 그림이 귀엽지 않아요."
여학생은 혼자 말하듯이 하면서 재빨리 그림을 그려낸다.
그러면 옆에 여학생도 수업용 복사지 가장자리에 덩달아 그림을 슬슬 그려낸다.
이번에 수업하던 모두가 웃음이 빵빵 터진다.
연필로 연하게 그리긴 했지만 여유가 넘치는 아빠 닭을 동동 걸음으로 따라가는 병아리 모습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잠시 수업이 중단되고 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으로 돌변한다. 나는 따라 그리다 만다.
학생들처럼 생기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림을 못 그린다던 한 여학생은 내게 카톡으로 시를 적어 보내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답답해서 써 본 글이란다.
이 여학생은 힘들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글로 적었으리라. 이렇게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글을 적다 보면 글재주도 저절로 늘어나겠지.
어떤 학생은 잠시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그림을 그리고.
어떤 학생은 힘든 순간에 시를 적고.
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소녀들을 대할 때. 이 아이들이 그리는 미래가 환하게 밝혀지기 시작한다.
힘들 때마다 절망하지 않고 일어설 스스로의 힘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 갖추게 된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가올 봄은 이미 찬란하리라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