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호와여

#부활

죽음의 권세를 이기다

by 미셸 오
clouds-295695_1280.jpg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온갖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이

막상 예수께서 잡혀가시자 다들 도망치고 만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살아난 것을 본 제자들은 갑자기 용감해져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복음을 전하러 다닌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 때 우리는 세상이 목표로 설정해 놓은 것에 죽을힘을 다해 달려간다.

부귀와 명예다. 물론 건강도 포함.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질 누구나가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필연을 맞이하게 된다.

너무나도 명확한 진실인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항상 무력했다.

하지만 이런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을 몸소 이겼음을 보이신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자 보아라. 내가 너희들 대신 죗값을 치렀고 죽었다. 그러니까 너희가 나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너희들도 나처럼 다시 살아나게 될 거야. 여기 증거를 보여주마"라고.


사도행전 17장 30절-31절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는 증거를 보이셨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눈먼 자를 눈뜨게 하고 ,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병자를 고치는 모든 기적들을 체험한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도망가고 부인하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난 것을 본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죽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온전히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짧은 인생길에서 누리는 세상의 호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생과는 전혀 비교가 안되었다.


로마서 14장 7절-9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골로새서 2장 22절

이제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즉 믿는 우리는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일꾼이 되는 것이야 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정답이 아닐까.

그러나 바울 같은 복음의 사역자는 아무나 되는 것 같지는 않고 우리 같은 평신도들은 굳건한 믿음 안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요즘 들어 기독교인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다들 교회에 다니면서도 믿음의 터를 굳건히 못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또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전의 제자들처럼 우리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소망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지.

먼 우주의 광활함과 인체의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구조와 자연의 섭리를 보고도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면 왜 인간이 죽는지에 대한 성찰을 다시 하길. 그리고 성경에서 찾아 읽어보길.

성경에 그 답이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존자의 아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