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호와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

빈 들에서 자신만을 마주하는 사람

by 미셸 오

누가복음 3장 1절-3절

1절-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2절-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이 말씀 안에서는 세상의 잘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우선 황제인 디베료. 유대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헤롯. 이두래와 드라고니 지방의 분봉왕 빌립. 아빌레네의 분봉왕 루사니아. 이 다섯 명은 모두 정치인으로 당대 권력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누구나가 아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이름을 가진 자들.

둘째는 대 제사장인 가야바. 안나스 두 사람이다. 이들 또한 당대 종교인으로 최고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다.

세 번째 인물은 요한이다.

이들 총 8명의 인물들 중에 누가 주인공인가?

성경은 무대의 전면에 정치인들부터 줄줄이 세우고 그다음에는 종교 권력자들을 세운다. 그리고 이들의 마지막에는 요한이 서 있다. 그것도 홀로.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에게 가고 있다. 빈들에서 메뚜기와 역청을 먹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은. 돌직구로 말하면 들판을 헤매는 거지꼴을 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그러자 그의 직분이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로 바뀌어버렸다.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의 전령사로서 그를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에서 알아주는 지위와 권력에 있지 아니하다. 그분의 관심은 오로지 빈들에서 주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자이다. 그리고 빈 들에서 고독하고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결코 잘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태어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고 또 평범하게 살다가 죽었을 뿐이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높여 주시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삭도 마찬가지고.

아브라함이나 이삭처럼 그리고 요한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문은 믿음에 참여하는 우리 같은 평범한 자들의 앞에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세속의 부귀영화를 세상 사람들의 높아진 이름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불러주시고 자녀 삼아 주셨으니 우리들은 다 왕의 자손들인 것이다. 목사님은 이번 설교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의도로 이 말씀을 준비하신 듯하다.

(이상 우리 고등부 이승준 목사님의 설교요약)



문득 목사님이 해주신 설교말씀을 묵상하던 중 요한이 '빈 들에 있었다' 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전에 빈 들에 있었다. 사람도 짐승도 없는 참으로 고독하고 쓸쓸한 공간이지 싶다. 산이라면 물이며 열매도 좀 구하기 쉬웠을 터인데. 메뚜기와 역청만으로는 배를 충분히 채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밤에 잠자리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들판 사진을 찾아보니 삭막한 벌판, 말 그대로 광야였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이런 고독한 절차는 필연적인 것일까. 모세도 예수님도 다 이런 과정을 겪었지 않은가. 그리고 왜 성경에는 그냥 요한이라 하지 않고 사가랴의 아들 임을 전제하였을까.

그래서 사가랴를 찾아보았다.


가복음 1장

5절.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절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역시나..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하나님이 인정한 의인으로 당대 대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부모 슬하에서 교육받은 요한임을 강조하는 말씀이 아닌지.


누가복음 1장 80절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사가랴가 예언도 하고 요한을 잘 양육하였음을 느끼게 한다. 물론 그 전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 요한이 태어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믿지 못해서 일시적으로 벙어리가 되는 체험을 하긴 했으나(눅1장 참조)

종교지도자들이 타락했던 당대에 사가랴만 한 지도자가 없었던 듯하다.

신실한 부모의 교육으로 심령이 강해진 요한은 빈들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고 이스라엘에 나타나기까지 빈들에서 묵묵히 견뎌내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이후 세례를 베풀며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하지만 십자가의 길. 연단의 길은 두려워하는 사람들.

원해서 그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강제로 밀어 넣어야만 그 연단을 할 수 없이 받아들이는.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닐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나 선교사의 직분은 대단하다고 감탄은 하면서도 내 자식만은 안 하길 바라는. 부모의 신실한 믿음의 양육이 자식들의 심령을 강하게 하고 어떤 연단도 꿋꿋이 견뎌낼 힘을 얻게 한다는 교훈도 함께 얻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자는 빈들의 고독을 견뎌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