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 를 읽고
아침잠을 깬 뒤부터 다시 잠을 청할 때까지 쏟아지는 많은 책들과 정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빨리빨리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나의 경험상 빨리 읽은 것의 대부분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고 또 내게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친 것 같지도 않다. 문맥적으로 음미하여 천천히 읽거나 다시 읽거나 했던 것들이 가장 기억에도 남고 의미 있는 독서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가끔 속독을 배웠다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사고력을 요하는 국어시험에서 빨리 읽어내는 방식은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이번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 읽는 방법> 역시 그간의 내가 깨달았던 독서의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싣게 되었다.
책을 느리게 읽는 것이 좋고 다시 읽는 것이 좋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되도록 빨리 읽는 것이 좋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다.
이는 자신이 정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이지 스스로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개성적인 것으로 만들 수 없게 만드는 독서법이다.
그러므로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바꾼다.
소설은 속독을 할 수 없다.
-이유는 소설에는 다양한 노이즈가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에만 관심 있는 속독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설 속의 묘사와 설정들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런 현실에서 가정해볼 때
종이가 떨어지는 방법은 한 가지로 정해져 있지 않다. 바람이 불거나 손이 흔들리거나 등의 감각적인 노이즈가 더해진다. 나비가 춤추듯이 종이가 낙하하는 재미나 아름다움이 바로 노이즈다.
머리로 쓴 도식적인 소설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그것이 노이즈가 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이즈는 우리에게 다양한 현실을 보여주고 '사랑'이나 '연애" 같은 반복적 주제도 항상 같지 않도록 해 준다.
그러므로 소설을 읽을 때 세부를 버리고 주요 플롯(줄거리)을 중시하는 독서법 보다는 그 세부를 응시하며 읽는 것이 좋다.
속독을 했을 때의 이해율과 슬로리딩의 이해율은 전혀 다르다.
-속독의 경우는 단어만 죽 훑어보고 조사나 조동사는 가볍게 여기고 독자 맘대로 내용을 연결하므로 긍정이냐 부정이야 하는 내용 파악도 안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사나 조동사에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의 조사나 조동사에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고.
나는 여기에 덧붙여서 글을 읽을 때 지시어나 접속사에 주의하여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문맥적으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지시어와 접속사의 연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는 습관을 길러라
-책을 읽을 때 옆에 사전을 두라는 말은 이미 많은 독서가들이 권장해온 것이다.
요즘은 언제 어디서든 어려운 단어를 쉽고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 스마트폰도, 전자사전이 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미루지 말고 바로 찾아라.
나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이런 사전 찾기를 하면 평소 애매하게 사용했던 단어의 뜻은 물론 잘못 사용했던 단어도 바로 쓸 수 있게 된다.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읽어라.
이는 웬만큼 책을 읽어낸 독서가라면 당연히 그렇게 읽을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그 작품의 주제요 작가의 집필 동기이기 때문이다.
-소리 내어 읽지 말고 베껴 쓰지도 말아라.
보통 문예창작과에 가면 학생들에게 기존의 작가들 작품을 베껴 쓰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들의 문체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베껴쓰기에만 집착하여 작가의 의도를 놓칠 수 있다.
딸아이의 경우도 문예창작학과 출신인데 교수들이 '베껴쓰기를 하면 저절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게 된다' 하고 과제로 베껴쓰기를 많이 내주었다 한다.
그러나 날밤을 세워가면 쓴 소설 베껴쓰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물론 그런 방식으로 글쓰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천천히 반복하여 묵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의 글 읽기 방식은 음미하는 독서였다. 이 책에도 물론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느리게 읽었다고 해서 현대인들보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조상들은 주로 소요음영(逍遙吟詠) 하였다. 이미 읽은 내용들을 산책하면서도 되짚어 보고 중얼거리며 음미해본다. 그리하다 보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었으리라.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책을 읽은 후에는 감상문을 쓰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누군가에 말해줄 것이라는 전제로 책을 읽으라고 하는데 같은 의미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첫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사회적 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이 책에서 눈여겨보았던 부분이 있어 인용한다.
'지적으로 세련된 사람일수록 식사 자리에서 정치. 종교. 어린이 교육문제처럼 언쟁의 화근이 되는 화제는 피하고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좋아하는 책에 대해 짤막하게 내용을 설명하는 정도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맛난 식사를 위해서 또 상황에 맞는 말하기를 위해서 필요한 교양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대화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독서를 통해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기 적합하고 신뢰를 쌓기에도 좋을 듯하다.
얼마 전에
책을 추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참석한 100여 명의 사람들 중에 일 년에 책을 한 권 읽는 사람이 서너 명도 되지 않았다. 특히 두꺼운 책일수록 읽지 않고 또 책을 사는데 돈을 쓰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우선 빌려 보지 말고 자신의 돈으로 책을 사라. 돈이 아까워서라도 읽게 된다.
-자신에게 너무 어려운 책을 읽지 말고 흥미 있는 책을 먼저 사서 읽어라.
-좋은 책을 읽어라. 좋은 책이란 이미 오랜 시간을 통해 입증된 고전을 말한다.
-한꺼번에 다 읽으려 하지 마라.
-단 한 줄이라도 책을 읽은 후 느낌을 적어라.
-그 소설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미리 알고 읽어라. 재미가 배가 된다.
예전에 모 도서관 개최 감상문 심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뛰어난 글 실력과 함께 책을 읽어내는 눈을 가진 창의적인 아이들이 있었던 반면 대다수의 아이들은 책을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하고 또 상상력을 끌어내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았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무조건 책을 읽히기보다는 어떻게 책을 읽혔는가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이며 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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