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는 햇수로 10년이 넘었다.
그간 위아래 층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나가고 또 오고 매번 반복되었다.
새 아파트인데도 불구하고 이사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집을 갈아엎는 경우가 많아서 적어도 일주일 많게는 보름간 공사 소음에 시달린 것이 십여 년간 십여 차례 이상이 된다.
어제는 아침부터 위층이 소란 하다 싶더니 크레인으로 이삿짐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두어 시간 후 위층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요즘은 이삿짐 나르는 것도 후다닥이다.
살던 사람들이 이사하기가 무섭게 어제 오후부터 새로 올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어쩌면 일주일 이상의 공사를 할지도 모른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어제 이사 간 집은 5년 전인가 집 내부 전체를 리모델링 하고 들어왔다. 거실을 드릴로 뚫을 때 우리 집 천정의 전등이 미친 듯이 널을 띄고 천정이 전등을 향해 쪼그라지던 공포감을 어찌 설명하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천정이 먼지를 내며 풀썩 가라앉을 것만 같았던 그 순간 우리는 동네 커피숍으로 갔다 저녁에 돌아왔다.
장판을 새로 깔고 벽지를 바꾸는 것까지는 당연하고 이해되는데 아파트 베란다 타일을 뜯고 화장실 타일도 바꾸고 거실 바닥의 마루판을 뜯어내니 공사가 길어지고 이웃집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스트레스다.
왜 새 아파트를 이토록 뜯어내는 걸까?
리모델링 같은 것은 10년 이상의 아파트에만 허가해 주면 안 될까. 새로 이사를 오는 가구마다 리모델링을 하니 아파트가 벌써 고물이 되어 간다.
10년이 넘도록 이웃의 집수리 소음에 시달린 나는 이제 진짜 내부수리를 해야할 시점인데도 차마 못하고 있다.
"집에 물 새는 곳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오늘 낮에 위층으로 새로 이사올 집이라면서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내려왔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특별히 물 새는 곳은 없다고 한 뒤 돌아서 생각해보니 작은 방 창문 쪽에 에어컨 물 호스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3년 전 여름.
그 해는 무척 무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무척이나 습한 여름의 오후였다.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갑자기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내 방으로 물이 마구 들어와. "
집에 와보니 딸아이 방 창문으로 굵은 물줄기가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밖으로 빼어보니 위층 밖으로 빠진 에어컨 호스에서 떨어지는 물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작은 방 쪽으로 에어컨 외기를 설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열어둔 딸아이의 창가에 놓아둔 에어컨 외기에 위층 에어컨 호스의 물줄기가 와르르 쏟아지며 아이 방안으로 물이 튀어 들어왔던 것이다. 방안에 물이 질퍽했다.
나는 에어컨 호스에서 그렇게 많은 물이 떨어지는 줄 처음 알았다.
처음 아파트에 입주할 때부터 관리실에서는 에어컨 호스를 집 내부로 들여놔 달라고 방송을 많이 했었다.
아파트 공사를 할 때 에어컨 호스를 밖으로 빼도록 시공이 되어서 입주한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 아래층 위층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던 시점이었다. 그때 따로 공사를 해서 호스를 안으로 들인 집도 있는 반면 그대로 둔 집도 많았다.
그러니깐 처음의 잘못은 아파트 설계에 있었다. 그렇지만 자기의 편리함보다는 이웃을 배려한 집들은 아랫집에 에어컨 물이 들어차서 망친 가구까지 보상해준 것은 물론 호스를 안으로 들인 집도 꽤 되었다.
우리 집도 호스를 안으로 빼고 매번 여름마다 불편하지만 물통을 받아두고 쓴다.
그날, 위층으로 올라갔더니 어른은 없고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에어컨 호스를 안으로 좀 넣어달라고 말하고 내려왔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에어컨 물은 계속 떨어졌다.
하는 수없이 관리실로 연락을 부탁했다.
그로부터 2주 후.
우연히 엘리베이터서 위층 아저씨를 만났고 사정을 말했더니 갑자기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다.
평소 만나면 위아랫 집이라고 서로 웃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불같이 화를 내며 몸이 위아래로 뛴다.
그렇게 일층으로 내려서자마자 자기 집으로 같이 올라가자며 강제로 우리 모녀를 이끌었다.
아래층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호스를 구석으로 밀어 놨으니 한 번 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화를 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둘이는 기세가 등등한 남자가 강제로 잡아끄는 대로 끌려 올라갔고 그 남자가 보라는 대로 에어컨 호스 를 강제로 보아야 했다. 호스를안으로 빼지 않고 구석에 밀어넣어서 물이 아래로 직하하기 때문에 우리집에 들어가지 않을거라고 큰 소리를 땅땅쳤다.
나도 참다참다 덩달아 화가 나서 같이 붙을 판인데 평소 침착한 딸이 그 남자를 진정시키자 결국 나중엔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경비실 아저씨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아래층에서 에어컨 물이 샌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 집에 찾아와 말하면 될 것을 왜 그랬냐고.
나 역시 그간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아래층 사람들이 연락한 것도 다 우리 집에서 한 것으로 오해를 한 듯하였다.
경비실 아저씨의 아래층 사람이 "카더라" 하는 무심하게 전했을 목소리를 생각해도 그렇고 한 두 번도 아니고 아래층에서 연락을 했다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러나
남자도 아니고 여자들을 강제로 이끌고 아무도 없는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 것하며
어깨를 들썩이며 한 대 때릴 듯이 달려들던 그 모습이 일 년 내내 그 사람을 미워하게 하였다.
더 이상 마주치지 않으면 좋겠는데 꼭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그 남자였고.
이래저래 억지로 웃으면 인사하고 지낸지 삼 년. 결국 이사를 간 것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위아래층 소음은 그러려니 지내왔는데 뜻밖의 에어컨에서 떨어지는 물로 인해 그런 일을 겪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성냥갑처럼 하늘로 솟은 아파트 대신 주택단지에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파트는 관리도 해주고 외출하기가 편하기에 그런 장점을 살리면서도 위아래층 신경 안 쓰고 사는 집이 어디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