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병실안은 에어컨 소리만이 가득하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종일 간호사와 방문객들로 가득했던 병실은 조용하다.
침대 다섯 개가 놓인 병실 안에는 왼쪽 창가에서부터
92세 할머니. 60초 반 아줌마. 84세 할머니. 75세 할머니
그리고 엄마가 입원해 있다.
모두가 잠든 병실. 오른쪽 창가에 배치된 엄마의 침상 위에서는 창밖이 환히 보인다.
밤이 내린 창밖을 보니 도심은 안개비 속에 아스라이 불빛이 반짝인다.
며칠 전
우리가 살던 곳의 병원서 급히 이 곳의 대학병원으로 옮긴 후 본격적인 진단과 치료가 이어졌다.
좀 더 일찍 큰 병원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우리는 이전에 있던 그 병원의 의사를 지나치게 신뢰했다.
집과 가까운 병원이었고 또 우리 도시에선 가장 큰 병원이었다. 몇 년 간 감기라든지 알레르기라든지 줄곧 온 가족이 그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아왔다.
자신이 책임지고 낫게 해 주겠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던 것이 결국 엄마의 증세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는 도저히 안 되겠던지
큰 병원으로 가든지 하라고 말은 하면서도 가봤자 별 수없다는 투였다. 불안해하는 가족 앞에서 호흡을 못해 숨이 넘어가는 환자의 등을 세게 치면서 강제로 깨우던 의사의 신경질 적인 손길과 말투를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결국 응급실행 고위험 환자가 되어서야 큰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원인 치료를 못하면 큰 병원으로 가라고 먼저 말해주면 안 되나. 끝까지 자신의 자존심만 지키면 그만인가.
다행히도
엄마는 이 대학병원서 그토록 답답해하던 호흡을 찾고
호전되는 중이다.
여기서도 쉴 새 없이 환자들이 들어온다.
오늘 한 사람이 퇴원했고 또 새로운 환자가 들어온다.
병실 입구 침대에 있던, 모자를 쓰고 퇴원 준비를 하던 84세의 할머니는.
치과치료를 받던 중 뽑은 금니빨이 목을 넘어 폐로 들어가 금니를 빼낸 후 호흡기 치료를 받았다 한다.
그 할머니가 비운 자리에 50 대 중반의 여자가 새로 들어왔다.
이 여인은 간암 치료를 받던 중 암이 췌장까지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주사를 놓을 혈관이 희미해서 쇄골을 찢는 시술을 받았는데
거기로도 주사액을 넣는데 실패했다.
그녀의 남편이 주사도 제대로 못 놓는다며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고 정형외과 치료 환자인 76세 할머니가
"여기 병원 간호사들은 주사를 못 놔"
라며 옆에서 같이 거들었다.
여기 병실 복도를 오가는 환자들의 팔뚝을 보면 시커먼 멍자욱들을 서너 개씩 달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엄마는 응급실에서부터 입원실로 옮긴 이후 어제까지 증세가 많이 좋아지는 듯하였다.
그런데 오늘 새로 투여한 약이 엄마의 몸에서 격하게 반응했다.
아니 엄마의 몸이 그 약을 격하게 거부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물을 먹고 파릇하게 살아오는 풀처럼 기운이 소생하던 엄마는 어제 잠들기 전 아홉 시, 노란 알약 반 개를 먹은 이후 어지럼증. 설사. 무릎 통증. 그리고 새벽에 호흡발작까지 이어졌다.
힘겨운 밤을 지내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혀까지 둔해지자 이번에는 초면의 신경과 의사가 올라왔다.
뇌경색일 수도 있으니 뇌를 찍어봐야겠다는 것이다.
결국 퇴원하기로 한 날, MRI를 찍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뇌 사진을 보았는데 아주 깨끗합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씁쓸하였다.
약 부작용을 가지고 또 무슨 큰 병인가 싶어 치료비용을 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큰 병이 없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 놔서 수술을 갓 하고 나온 사람이나 조용히 쉬고 싶은 환자들의 휴식을 방해하였다.
그뿐인가.
정형외과 환자들과 내과 환자 등 다양한 병을 가진 환자들과 연령층이 집합한 병실에서 텔레비전 리모컨 쟁탈전이 벌어지곤 하였던 것, 그리고 텔레비전을 안 볼 권리는 물론 그런 싸움질까지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물론 보호자용 침대가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었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해도 다리가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물론 간호사가 올 때마다 보호자용 침대를 밀어 넣어야만 하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병원은 병실도 깨끗하고 간호사들 복장도 깔끔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입원 환자들이 있는 병동이다.
환자들은 물론 보호자들까지 배려한 개인용 냉장고와 보호자용 푹신하고 긴 침대.
그리고 환자들 침대 사이가 널찍해서 쾌적하다.
텔레비전 역시 복도에 따로 마련된 보호자용 휴게실로 쫓겨난 것도 마음에 든다.
편히 다리를 뻗을 수 있었던 푹신한 보호자용 침대는 잠시나마 피곤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어서 병간호를 하며 지친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없어서 저녁이면 환자들의 고른 숨소리만이 병실을 가득 채운 것 등이 몸은 물론 마음의 안정도 빨리 찾게 해 주었던 것이다.
특히 이 병원에서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은 젊은 남자 간호사의 친절함을 무척 좋아하였다.
우리 71 병동 3호실 담당 간호사들 중에 키가 훌쩍 크고 순하게 생긴 남자 간호사가 있었는데
방광염은 치료하던 60대 아주머니 환자는 입원 내내 그 남자 간호사를 칭찬하였다.
"그 남자 간호사가 자기도 얼마나 쑥스럽겠니. 내 오줌 팩을 갈면서 그런다. '거기 안 가려우세요?' "
우리 병실 안의 모두는 그녀의 말을 듣고 같이 웃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듯. 다들 야리야리한 보송보송한 얼굴을 한 젊은 간호사들의 열정이 비록 숙련됨은 없었을지라도 환자들은 그들의 그런 친절과 열정에 관대함을 보여주었다.
우리 병실에는
교통사고로 몸을 다쳐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 후 입원한 76세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
엄마와는 동갑이었고 바로 옆 침대였다.
그녀는 말을 많이 하고 듣기에 바른말만 하는 사람으로
한 번은 환자용 식판을 들고 간호사실로 가서 환자 밥이 이래서 되겠느냐며 화를 냈다.
환자들에게 맛난 밥을 주어야 빨리 먹고 나을 것이 아니냐 이 개밥 같은 것을 주고 누가 병이 낫겠느냐 하며 따졌다. 그때 영양사가 나와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그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 밥 네가 묵어 봤나? 니 함 묵어봐라, 밥이 맛있는가 없는가. 몇 년 묵은쌀을 가지고 밥을 하니 밥알이 펄펄 날고 물에 그냥 순두부만 타주는 것이 밥이가?"
그러자 영양사는 찍 소리도 못하고 물러나 버렸다.
그 이튿날부터 병동의 환자들은 정말 찰진 밥에 맛난 반찬을 매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일이 있고 난 후 처음 나온 밥은 이랬다.
붉은 찰밥에 당면. 그리고 싱싱한 김치. 두부 고기전. 대구탕. 과일 샐러드. 간식으론 바나나 한 개.
환자와 보호자들은 맛난 밥과 반찬에 환호성을 질렀다.
밥에 숟가락조차 대지 않던 엄마도 맛있다면서 그 날 이후 밥을 매일 먹었던 것이다.
병원이라 하면
훌륭한 의사와 첨단 의료기구와 좋은 약도 필수이겠으나
그 모든 것 위에 환자들을 사랑하고 빨리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중요함을 깨닫는다.
환자를 대할 때 그들의 투정을 다 받아주며 달래주는 의사들의 자상함이, 간호사들의 친절함이,
영양사들이 밥을 지을 때 반찬 한 가지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모두 모여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로하며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임을
알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듯하다.
우리가 퇴원하던 날,
피부염으로 입원했던 92세 할머니도, 방광염 환자도, 췌장암 환자도 다 퇴원해서 교통사고 환자 할머니만 남았다.
이제 또 다른 누군가를 병을 치유할 공간이 될
이 따스했고 조용했던 병실을 우리도 작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