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함이
지금도 견디기 힘든데 이제 더 짙은 열기 속으로 들어가는 계절의 문턱에 와 있다.
5월의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던 장미는 다 졌고 가로수 길에는 하루살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간혹 그것들 사이를 용감하게 비집고 들어가는 날에는 땀이 끈적한 피부에 그들의 시체가 들러붙을 것이다.
그래서 피해가야만 한다. 꼭.
뜨거운 한 여름밤에 이제 이것들보다 더 강력한 모기들이 그들의 침을 사람들의 피부에 꽂고 피를 빨리라.
이 얄미운 것들은 특히 여름의 시원한 그러나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서 떼거지로 몰려들기도 한다.
이것들이 얼마나 비겁하냐 하면 절대 눈에 보이지 않게 접근하고 또 저들 배가 터지도록 사람의 피를 마신다.
간혹
무더운 여름밤에 얼굴 주위에서 귓바퀴에서 알랑거리는 모기만큼 얄미운 것이 있을까.
곤한 잠에 빠져들 때쯤 다리가. 팔이 가려워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어둠을 가르며 "에엥~" 하는 그것들의
날갯짓을 들으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 열심히 피를 먹어라 배가 부르면 그만두겠지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다. 모기들의 위장은 그들 몸체의 몇 십배는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의 피를 빨고 인간의 손에 죽을지라도 그것은 저들의 탐욕 탓이니 어쩌랴.
잠 결에 몇 번 손바닥으로 잡으려다 허탕을 치고 결국 잠을 깬 후에는 방안에 불을 켜고 문을 다 닫는다.
'내 기어이 너를 잡고 말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불타는 미움을 달래며 이놈의 모기가 어디 있나 눈을 부릅뜨고 찾는다.
이상하게도 불을 켜고 찾으면 거의 눈에 띄게 마련, 방 벽 어딘가에 거무틔틔하게 붙어있다.
책이든 파리채든 그것에 날려 잡는 순간.
벽에 남겨진 것은 모기가 아니라 그것이 빨아낸 나의 붉은 피~!
작은 몸뚱이가 터지도록 먹은 탓에 도저히 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소중한 나의 피를 보면 파리채에 눌려 검게 흩어진 모기의 날개조각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결국 모기에게 피를 빨리운 것도 그 이후의 가려움증도 이미 지나간 일. 아침까지 시끄럽게 엥~하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편히 잠이 드는 것이다.
또한
습도가 높은 날에는 잦은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여름 밤에 아파트의 열린 베란다 창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어른들의 고함 소리가 자주 들리곤 한다. 아파트의 길고 긴 벽에 부딪혀 그들의 소리가 얼마나 크게 울리는지.
간혹 젊은 엄마들이 뒷 베란다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꾸짖고 화를 내고 하는데 위 아랫집 사람들은 그 아이의 울음소리와 아이 엄마의 고함소리를 크고 선명한 음질로 듣게 된다.
새벽이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부아앙~"하는 소리도 유독 여름에 더 크게 마련이다.
한 번은 우리 아파트에 이런 일이 있었다.
위층 어느 집인데 밤늦게 문을 열라고 계속 문을 쾅쾅 두르려 댔다. 대충 상황 추리를 하자면
남자가 늦게 술을 마시고 왔고 안의 여자는 문을 못 열도록 한 모양이었다.
삼십여 분간 안에서 반응이 없었던지
남자가 어디선가 망치와 갈고리 같은 것을 들고 와 문고리를 부수기 시작하였다. 가끔씩 망치가 복도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끔찍하게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어떻게 집으로 들어갔던 모양인지 거실에서 이리저리 몸을 밀치기라도 하는 양 발자국 소리가 쿵쿵 울리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앞 베란다 창으로 한참을 쏟아진 후 119차가 와서야 조용해졌다.
며칠 전 이른 아침에는 "땅~! " 하는 굉음에 놀라 일어났다.
마치 땅덩이가 갈라지듯이 건물이 쪼개지듯이 그 소리는 여태껏 들었던 어떤 천둥소리보다 크고 웅장했다.
곧이어 벼락이 떨어지고 비가 한없이 쏟아지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인도에서는 번개를 맞고 19명인가 죽었다던데.. 예나 지금이나 비 오는 날 천둥번개 치는 소리는 정말 무섭기만 하다.
사람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천둥소리와 번쩍 하며 내리 꽂히는 칼날 같은 번개 빛에 무덤덤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천둥소리만큼이나 비는 거세서 아예 창이 하얗도록 비가 퍼부었다.
베란다 창을 여니 아파트 공간에 하얗고 긴 너울이 바람에 펄럭이듯 빗줄기가 몰려 갔다가 오기를 반복하였다. 세상이 온통 비에 감겨들고 있었다. 어느덧 집안은 습기가 가득 차기 시작해서 마룻바닥에 발바닥이 끈적하게 달라붙기 시작하였다.
몇 년 전인가.
그 해에는 태풍이 연속적으로 왔고 카톡으로 인터넷 기사로 어찌나 많은 정보들이 실시간 뜨는지
그런 기사들을 보고 밤새 베란다 창에 신문지를 붙이며 몸살이 났던 기억이 있다.
신문지가 젖어야 하는데 물뿌리개로 뿌리고 나면 금세 말라버리는 신문지 때문에 짜증이 폭발할 뻔하였다.
그러나 그 날 태풍은 정말 무서운 것이어서 바람은 땅 깊은 곳을 울리며 짐승처럼 울었다.
그리고 꼭꼭 잠근 베란다의 큰 유리창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다다다다다" 하는 소리를 내었다. 혹여라도 유리창이 깨어지지 않을까 밤새 잠을 설쳤다. 난 그때 처음으로 아파트 고층에 사는 것이 싫었고 널찍한 유리창이 결코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마다 여름은 가고 또 오는 것이지만
해가 더해갈수록 찾아오는 여름이 자꾸 옷을 한 겹씩 더 입고 오는 것 같다.
올 여름에는 모기에도 물리지 않고 태풍도 심하게 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