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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호와여

#히스기야의 15년

by 미셸 오
열왕기하 20장 12-15


12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 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병을 고치시며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주셨다. 그리고 그 징표로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신 것은 믿는 자들이면 다 아는 사건이고 얼마 전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은 이후의 태도에 관해서는 깊이 묵상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는 심령이 일었다.


위 말씀을 보면 바벨론 왕이 보낸 사신들에게 자신의 창고들을 남김없이 다 보여주며 자랑하는 히스기야 왕이 모습이 보인다. 왜 자랑했을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15년의 연장된 삶의 의미(하나님의 영적 의도)를 몰랐다.

그것은 히스기야의 실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이후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슬하에 없던 아들이 생겼으며(후일 므낫세 왕) 많은 물질의 복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모든 상황 속에서 고질병인 교만이 생겨났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어진 삶을 살지 못하고 자신의 성을 쌓기에만 급급했다. 이는 역대하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역대하 32장 27절

27-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28-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야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29-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많은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그가 교만 하여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복을 받은 이후에 하나님과 연결된 기도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기도하지 않았고 교만해졌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었다.

그는 창고와 성읍을 지으며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외형적인 것만 중요시했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는 등한시했음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나라와 생명을 위해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연결된 기도를 하지 않았고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돈과 권력을 더 의지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물질의 복만 주신 것이 아니었다. 많은 주변국들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결되었다. 그때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들이 왔을 때 우쭐되며 자기가 가진 것들을 자랑한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자신이 이룩한 것이 아니다.

그가 현재 누리는 물질의 복과 연장된 삶의 이유를 하나님께 늘 묻고 기도했다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삶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식 교육도 실패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므낫세 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고 하였으므로 히스기야는 그의 아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들 므낫세는 악한 왕이요 그의 손자 요담은 더 악한 왕이 되고 말았던 것이니 그들의 통치를 받는 세대들의 불행은 보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가 만일 아들에게 세세하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다면 므낫세는 다음 세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되었을 것이며 그 나라를 바로 이끄는 지혜로운 통치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는 자신의 교만을 경계하고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만 한다. 자신이 가진 물질과 사회적 지위를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쓰임 받도록 해야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쓰면 안 된다는 말이다.

둘째 자식들에게 세상적인 축복보다는 신앙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세대가 민족도 살리기 때문이다.


<이상 2016년 7월 15일.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 금요기도회 설교 요약>

오늘도

금요기도회에 가려고 길을 나서니 거리 곳곳에 사람들로 가득 차고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느라 고깃집이나 술집에 사람들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원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을 즐기러 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교회 앞 주차장에도 외부인들의 차가 가득해서 몸을 이리저리 빼면서 걸어야 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벌써 예배가 시작되고 찬송이 이어지고 있다.

찬송하는 집사님들의 얼굴에 땀이 흥건하다.

세상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과 주님의 집에 모여 찬송하는 예배자들의 모습이 나란히 대조되면서

'그래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선 이 순간이 감사한 거야.'

라고 생각하였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도 요즘 내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으니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 금요 기도회에 예배자로 서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회개는 없었을 것이고

내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교만함이 더욱 커져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늘 항상 하나님과 연결되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기도가 안될 때 억지로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오로지 깊은 기도가 되기를..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이 잘못이었다.

기도는 먼저 예배의 자리에 나가야 이루어진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해 영적인 삶을 잃어버렸다. 그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도 신앙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예배의 삶을 게을리하거나 기도하지 않는 삶을 경계하고 자식에게 올바른 신앙의 본보기로서 신앙교육을 매 순간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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