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의사

by 미셸 오


선선한 아침의 기운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어둑해진 하늘에서 사납게 빗방울이 뿌려진다. 이 비가 내리려고 간밤 그렇게 무덥고 눈이 침침했던가. 빗물이 들이치는 베란다의 창만 닫는데 어느새 창이 하얗다.

좀 있으려니 열린 창으로 세찬 바람이 분다. 앞 베란다에 서 있던 홍콩야자잎과 떡갈나무 잎이 심하게 떤다. 그동안 무더위에 시달린 탓인가 춥다고 느껴질 정도다. 실내 온도 25도.

안과에 갔던 일을 떠올린다.

"백내장도 약간 있고 시신경이 많이 약하네요. 아주 최초의 녹내장기가 있는데 계속 이대로 유지할 수도 있고 진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안약을 드리죠."

동네 안과 원장은 그렇게 말했고 또 녹내장 방지 차원에서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스마트 폰을 대하면서 시신경이 더 약해진 듯하다. 이미 십 년 전부터 내 눈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그런데 안약을 넣을수록 눈은 더욱 침침해지고 결국 한 달 만에 다시 안과를 찾았다.

그런데 나를 진료했던 원장은 휴가를 떠나고 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올만큼 선선한 날씨도 아니었고 주차시설이 잘 된 건물도 아니고 해서 할 수 없이 같은 과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젊은 의사는 선하게 생긴 인상인데 말이 아주 많고 몸짓이 좀 과한 사람이다. 역시나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아이고~이건 녹내장이 분명한데 약 안 넣으면 실명한다고요~알겠어요?"
그의 책상 컴퓨터 화면에는 이전에 진료한 나의 진료기록이 떠 있다. 아마도 약이 떨어진 지 한참일텐데 그전에 왜 빨리 안 왔느냐는 의미같다.

"원장님께서는 내 눈의 녹내장이 더 이상 진행 안될 수도 있다고 했어요."

나는 의사의 심각한 태도가 지나치다고 느꼈다.

그러자 이 여드름쟁이 젊은 의사는 손바닥을 짝 치면서 말한다.

"아하 ~참 내~녹내장 확실하거든요. 시신경이 이렇게 약한데 안약을 꾸준히 넣어야만 돼요~ 안 그러면 실명한단 말입니다."

나는 흐흐흥 웃었다. 말끝마다 '실명'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의사가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이 병원 녹내장 처방약을 쓰면서 지난 겨울이지 싶다. 큰 도시 안과 전문 병원에서 시력검사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 안과 전문 병원에서는 시력이 약해지고 백내장도 약간 보이지만 녹내장 진단은 받지 않았던 것이다.

녹내장 안약을 넣고도 갑갑해지고 시력이 더욱 불편해진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약을 넣었더니 더 침침해서요~"

나는 흥분하는 의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다른 녹내장 안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꼭꼭 잊지 말고 하루에 두 번 평생 넣는다는 것 잊지 말고요

한 달 후에 잊지 말고 오셔야 해요."

의사는 실명운운 하는 말에도 태평한 환자가 답답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는 환자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는지도 모를일.

내가 그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어려서부터 사시와 난시가 있던 딸아이를 데리고 이 젊은 의사에게 진단서를 끊은 적이 있었다.

N대학병원 안과 전문의에게 간다고 하자 그는 너무 훌륭한 의사라며 추켜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안과전문의를 잘 찾았구나 안심하여 찾아갔었다.

그러나 막상 찾아간 그 유명한 의사를 우리는 저녁 5시 이후에 볼 수 있었다.

아침 새벽부터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쯤. 하루 종일 차례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검사를 하느라 그 안과 부서 안의 치료실, 검사실을 뱅뱅 돌고 또 돌았던 것이다. 검사하고 기다리고 검사하고 기다리고.

우리는 탈진한 상태서 의사를 만났는데 그녀는 다른 새내기 의사들이 기계로 검진한 결과들만 보고 진단을 쉽게 내렸다. 오분이나 되었을까. 원장실을 나올 때는 화가 치밀었다.

좋은 진단 결과를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무심하게 내뱉는 의사의 말투에 더 상처를 받았다. 우리 아이의 눈을 한 번 보지도 않고 말이다.

"라식 수술을 하고 오세요. 그럼 수술을 할게요. 그러나 재발할 수도 있어요"

이것이 내가 들은 의사의 처방이다. 재발할 수도 있는 수술을 무엇하러 할 것이며. 또 눈에 라식까지 하고 오라니. 하루종인 눈을 뒤집히고 이것저것 갖은 검사용 안약을 넣은 딸애는 눈이 갑갑하고 안보인다며 나보다 더 피곤해했다. 병원비도 10만 원 정도 나왔다. 장거리 왕복 차비에 밥값에 그날 우리는 하루 진단비용으로 최소 30만 원을 썼다. 유명하다는 큰 대학병원의 안과의사를 5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딸애는 라식 수술 같은 건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울었고 우리는 수술을 포기했다.

만일 그때 그 N병원의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였으면 우리는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후 K대학병원의 안과의사를 만나 안경 하나로 눈을 고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식이니 사시수술이니 거창하게 진단을 내렸던 N 병원의 안과의사와는 전혀 다른 처방이었고 우리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건데 사시이긴 하지만 보통사람이라면 전혀 못 느끼는 정도죠. 안경만 맞춤해서 끼면 잘 보일 겁니다."

그렇게 진단을 받았는데 이 K대학 병원 안과 여의사는 딸아이의 시력을 진단하는데 30분 이상이 걸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렌즈를 이것저것 세심하게 껴보이며 신중하게 보고 또 보고 하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힘들었겠으나.

안경 한 개를 진단받고 원장실을 나올 때 나는 진심으로 그 선생님께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이 선생님을 만나는 데 꼬박 4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한꺼번에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K대 선생님이야 말로 안과 전문의라는 생각이 들었고 '훌륭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정말 실력 있는 훌륭한 의사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의사들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이다.


이전에

딸아이와 내게 상처만 준 N병원 안과의사를 훌륭하다고 치켜세워준 탓에 미운털이 박힌 이 의사는 지금 나에게 실명 운운하고 있으니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처방전을 들고 나왔지만 약은 더 이상 넣지 않기로 하였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아직도 방안은 어둡다. 길을 달려가는 차바퀴에서 끈적한 물기를 느낀다. 실내는 여전히 시원하고 찜통 같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