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적을 향해 떠났든지 떠남에는 설렘이 동반된다.
폭염으로 전국이 펄펄 끓던, 하필이면 올여름 가장 덥다는 그 날에 섬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누군가 그랬지.
여행은 떠날 때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이다.
섬에 타고 갈 배는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우리는, 뜨거운 땡볕에 서서 식혜를 사 먹으며 오가는 배들을 지켜보았다.
선착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할 배를 기다리며 밀려든 차량들과 뒤섞일 때 우리가 타고 갈 배가 도착하였다.
배가 육지에서 몸을 떼는 순간
배는 *섬에 닿았다가 **도로 갈 예정이라 방송을 한다.
이 배는 잠시 후 *섬에 도착할 것입니다. 중간에 **도로 가실 분들은 내리시면 안 됩니다.
이런 데서 잘못 내리면 섬과 섬 사이를 건너뛸 수도 없고 무척 당황스러울 듯하다. 그런 상상을 해보며 바다를 본다.
얼마 후 목적지인 섬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섬 가운데가 바나나처럼 움푹 들어가 있고 우리가 탄 배는 그 안의 선착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작고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질서 있게 지어져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섬 전체를 좌우 부채꼴 모양으로 한 번 훑으니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예쁜, 작은 섬마을은 처음이다.
배에서 발을 내리고 서서 바라보는 그 곳. 그것이 전부인 마을. 주민 수는 총 50여 명이라한다.
가운데 골목길을 거슬러 오르면 좌우에 집들이 차례로 있고 가장 맨 위에 작은 교회가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마을 앞 오른쪽 보건소 벤치에는 마을 어른들이 더위를 피해 앉았고 목침이 넓은 평상 위에 이리저리 널렸다. 정면에서 왼쪽은 초등학교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의 왁자함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진다. 그들 눈에는 낯선 사람들의 시끌벅적함이 늘상인듯 보인다
처음 발걸음을 내릴 때의 섬은 한껏 적막하고도 더없이 깨끗하다.
후텁지근한 바닷바람도 들고 온 무거운 짐들도 경쾌하기만 한 것이.
섬 가운데 마을 길을 오르니 담벼락에 토마토가 어지럽게 열렸다. 더위에 지친 듯 한없이 늘어져 있다. 주인이 지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둔 것 같다.
나중에 이 집에 대파를 얻으러 갔다가 알 토마토 몇 개를 따서 먹었는데 아주 달았다.
갑자기 가파른 골목길 옆집에서 개가 컹 짖었다.
지루한 섬마을 집 뒤뜰을 지키던 개 한 마리가 왁자한 사람 소리를 들었나 보다.
담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본다. 그런데 개의 눈빛이 타지인들에게 호기심보다는 외로움을 전하는 듯하다. 사람이 그리운건가
한낮의 뙤약볕에 바다도. 집들도. 밭의 식물들도 시들하니 힘이없다. 보이지 않는 열기에 생기를 잃었다.
우리가 묵을 집 앞마당에는 작두콩이 자라고 있었다.
한 개 까서 속을 보고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개미떼들이 일열 이열로 줄지어 다니고 있다.
작두콩에 손을 대는 순간 그것들이 손가락을 타고 오를 것처럼 엄청난 숫자였다. 개미군단의 엄청난 행렬은 비록 작은 벌레일지라도 위압감을 주었다.
전교생이 두 명뿐이라는 마을 학교도 보인다.
"두 명이면 둘 다 전교 1등. 2등이네"
그렇게 농담하여 걸었지만 둘이 다니기에는 학교 운동장이 너무 넓었다.
섬에서의 하루를 온전히 지낸 후.
마을을 도는데 십분도 안 걸리는 이 섬에서 넓게 펼쳐진 바다 그 어디로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갑갑함을 느꼈다.
그것은 내 육신의 발로 자유롭게 어디든 걸어갈 수 없는 바다가 주는 한계였다.
육지에서 온 아이들의 바다에서 다이빙 하는 소리조차 섬의 적막함에 묻혀버릴 때는 오래도록 누적된 섬의 외로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무 그늘 한 군데 없이 이어진 길 위로 쏟아지는 태양빛 아래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다에 지어진 무심한 어장막들.
덩치 큰 개마저도 심심해보였다.
사람들이 가꾸지 않고 버려둔 텃밭에는 검은 고양이 가족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가 낯선 사람들을 보자 슬금슬금 도망을 쳤다. 마을 사람들이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곳이기도 하는 것인가. 아무렇게나 뒹구는 큰 호박과 쓰레기들과 넝쿨들이 어지럽게 뒤덮혀 있다.
어릴 때 흔하게 마주쳤던 동네의 모습이기도 한데 다른 점이라면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의 소리가 없는 마을이라 더 적막하다.
저녁에.
숙소의 방에서 기어 나온 지네를 발견하고 도시의 삶에 젖어 그런 벌레들의 기억이 잊혀져 가고 있었다는 것. 또 이런 곳에는 반드시 지네와 모기와 파리와 개미떼들을 늘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가는 몸을 소스라치게 뒤틀며 일행의 발 뒤꿈치 아래로 빠르게 도망치던 그것은 한 학생의 두루말이 휴지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지네는 두 마리나 더 나타났다.
이후 1박2일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다시 배를 타려고 마을 앞에 선착장에 섰을 때는 어제의 그 할머니들이 선착장 앞 정자에 앉아 무료한 하루의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적어도 여든은 다 넘겼을 것 같은 노인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지워준 것인지는 몰라도 정자는 한눈에 봐도 새것이었다.
차라리 마을 앞 오랜 고목나무 그늘이었더라면 좀 덜했을까.
육지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수없이 말을 시켜보는 한 할머니. 한없이 늘어진 젖가슴이. 늙어 까만 점이 가득한 피부가. 앙상한 손에 들린 **수협부채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그 할머니와는 반대로 주변의 시끄러움에는 귀를 두지 않고 육지에 나간 자식과 손주들을 그리는 듯 바다에 눈을 고정하고 생각에 빠져있던 할머니의 눈길도 기억한다.
섬 곳곳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나타난 여객선에 몸을 태우고 어제
여행의 설렘으로 왔던 섬을 떠나 바다 가운데를 가로지를 때는 알수없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이런 섬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누군가의 독백같은 말 한마디가 가슴에 흐른다.
육지로 가는 배 안에서는 다들 말이 없다.
다시 배가 뭍에 가까워지고 길을 달리는 많은 차들을 발견할 때는 그토록 숱하게 보아왔던 지긋지긋한 차들의 행렬에 오히려 반가움을 느끼고
배에서 내려 땅을 밟을 때는
:언제 이 육지를 떠날 때 섬을 향해 설렜던가 싶을만큼 미련없이 선착장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