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장맛비처럼 비가 쏟아진다.
오전에 모임 후 지인 한 분과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힘이 있다.
숯화로에 고기가 익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속 이야기들을 끄집어냈고 잘 안 웃던 그녀가 자꾸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서는데
"고기를 먹었더니 속이 니글거리네. 커피 사줄게. 커피하고 가요"
그녀는 내 의중은 묻지도 않고 옆 커피숍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까부터 배가 조금 아팠지만 따라 들어갔다.
이 여인은 한때 잘 나갔던 복부인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한동안 힘든 나날들을 보내었다.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은 상태다.
진한 아메리카노를 앞에 놓고 비 오는 창가에 앉으니 서로 속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더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나는 한때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지"
그녀가 끄집어내기 힘든 속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녀의 힘들었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했을 여지는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놀라웠다.
"나는 어려서부터 힘든 줄을 모르고 살아서 자살한 사람들도 이혼한 사람들도 전혀 이해를 못했었거든.
그런데 막상 내게 시련이 닥치니까 너무 힘든 거야. 아.. 이렇게 힘들어서 죽는 거구나. 얼마나 힘들면 자살을 하고 이혼을 할까 하고 이해하게 되었어."
그런데 그녀는 그때의 일을 배를 잡고 웃으면서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아하하~ 있잖아. 내가 그때 식탁의 의자를 갖다 놓고 화장실 천정에 천을 단단하게 묶었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목에 수건을 걸고 의자를 발로 걷어찼는데 매듭 한 개가 풀리면서 발끝이 바닥에 닿았지 뭐야.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더군. 그냥 살아보자 하였지."
"아~정말요. 그때 죽을 운이 아니었던가 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네네~숙모 그냥 추석 때 아이들 주세요. 저는 됐습니다."
나는 그녀가 편하게 전화를 받도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여인이 장지갑을 손에 들고 표범무늬 몸빼바지에 초록색 우산을 든 체 걸어간다. '황금성'이라는 중국집 간판이 비에 젖고 있다.
황금으로 된 성이라니. 세상은 황금성으로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황금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주겠다고 고집을 피우는지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더니 곧 전화를 끊는다. 창밖을 보는 척하는 내게 그녀가 말한다.
"우리 외숙모인데 84세예요. 예전에 장어즙을 부탁해서 16만 원어치 즙을 해드렸더니
그 노인네가 밭에서 가꾼 깨를 가지고 기름을 뽑았다고 가져가라네. 노인네가 힘들게 가꾼 그것을 어떻게 받아. 추석 때 자식들 오면 주라고 했지."
그래도 직접 기른 것으로 뽑은 참기름은 맛이 좋을 텐데. 자식들도 있는데 비싼 장어를 사서 돈도 안 받고 보답도 거절하다니.
그녀는 쑥스럽게 웃고는
"숙모에게는 이혼한 아들이 있는데 교통사고가 났어요. 아들이 몇 개월간 입원해야 하는데 84살 난 할머니가 아들을 돌보려면 힘이 있어야 하잖아. 자식에게 부모가 힘이 없다고 말할 수가 없는 거지. 그래서 내게 부탁을 했던 거고. 내가 돈을 어떻게 받아요. 숙모 사는 형편을 내가 아는데."
"84살에 아들 봉양이라니 대단해요." 나는 여느 노인처럼 주름이 가득한 등이 굽은 할머니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녀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더니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며 말을 계속했다.
"우리 외숙모는 대단한 거야. 그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밭에 가서 농사까지 짓고 말이야."
"그렇군요. 병원에 가보니 그 나잇대의 분들 중 병에 걸려 입원한 분들이 많던데. 밭에 갈 정도면. 치매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렇지요. 오늘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위대한 거라니깐요."
나는 그녀의 이 말에 흠칫했다.
위대하다고?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야 좋은거죠. 노년에 병원에서 고통받으면서 사는 건 좀.."
" 설령 병원에 아파 누워 있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대단한 거지. 인생살이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그 나이까지 견딘 것이 얼마나 대단하며 또 위대한 일인가요?"
견.디.어.낸.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삶이 힘들다고 말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만 하였지.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것을 견디어내는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세상의 나이를 먹은 모든 사람들이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주어진 인간의 삶의 한계. 인생 70까지 견디어낸 사람들과 그보다 더한 삶의 긴 여정을 거친 수많은 노인들.
노년이라는 시간에 닿기도 전에 어려서, 젊어서, 또 중년의 나이 때에 죽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사고로든 질병으로든 노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전에 떠난 사람들도 있고 또 어린 나이에 청년이라는 말을 듣기도 전에 떠난 영혼들도 있다.
태어날 때는 차례가 있으나 떠날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세상에 왔다가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떠난다.
그러나
여기 살아남은 자들.
인생의 풍랑에 이리저리 치일 때도 그것을 잘 통과해왔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삼시 세끼를 먹으며 또 하루 속에서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노년뿐 아니라 이 땅의 중년을 보내는 우리 또래의 사람들이 겪었을 분량의 고통들.
누구나가 평균치는 보편적으로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서 대단한 일이며 위대하다는 결론이 난다.
'그래 여태껏 잘 견디어 냈던 거야. 당신도 나도'
그러므로 이 세상의 노인들은 모든 인생의 고통을 그 세월만큼 견디어냈다!
그것만으로도 노년은 보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것을 보면 이해를 못한다고 한다.
노인이 대접을 못 받는다는 의미다.
성경에도 흰머리의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다.
또한
지금 오늘 바로 이 시간
이 땅에 살아있는 당신들
이미 위대한 분들이다.
여기 한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저는 살아있는 것이 좋습니다. 때로는 절망적일 만큼 격심하고
극단적인 불행과 슬픔에 고통받으면서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