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바꾸며

by 미셸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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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냉장고가 들어왔다.

한 달 전부터, 쓰던 냉장고 아랫부분에서 계속 물이 새었다. 음식을 자주 만들어 먹지 않아서인지 겉으로 보면 아주 새 것인 은빛 갈치 색의 냉장고로 아파트에 입주할 때 모 전자상가에서 한꺼번에 사들였던 것들 중 하나다.

양문 냉장고가 인기를 끌던 십여 년 전에

에어컨과 텔레비전을 골라놓고 냉장고가 전시된 곳으로 갔다.

대리점 직원은

"이 냉장고는 비행기 날개의 재료를 쓴 것.."

라고 소개하였다. 다른 냉장고들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나는 '비행기 날개를 만드는 재료'라는 그 말에 꽂혀서 망설임 없이 계약을 했다. 물론 냉장고의 그 은빛 색도 마음에 들었다. 늘 흰색의 냉장고만 본 나로서는 흰색은 무조건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들여놓은 냉장고는 너무 커서 문을 활짝 열지도 못하고 문 밖으로 난 작은 문(냉장고 바)은 일 년 사용한 후 틈이 벌어져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서비스를 온 기사는 7만 원을 주면 문짝을 교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난 문짝을 교체하는 대신 벌어진 테두리를 꽃무늬 테이프를 사서 둘러버렸다.


물이 새는 냉장고를 보면서

"벌써 고장인가?"
라고 말한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냉장고는 겉은 멀쩡했을지 몰라도 12년 간 우리들의 손에 의해 냉장실, 냉동실 문이 그동안 얼마나 여닫혔을 것인가. 수고했다. 냉장고.

이미 냉동고의 아래칸 서랍은 꽁꽁 얼어서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 매일 냉장고 아래 칸에 수건을 놓아두면 끈끈한 물이 고이는 것이 더러워 결국 교체하였던 것이다.

우리 집에서 나간 은빛 냉장고가 문짝이 떼인 체 아파트 아래에 서 있는 것을 보니 아쉽기도 하였다. 왜 그렇게 멀쩡하게 보이던지, 다시 고쳐서 쓸걸 그랬나 하는.

이미 그것은 낡고 못쓰게 된 기계에 불과한데 그간 세월의 흐름을 망각하고 또 미련을 갖다니.


냉장고를 산 지 그렇게 오래되었나 하고 깨달으면서 입던 옷에서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음을 알게 된다.

"새 옷인데 왜 이렇게 후줄근하지?"

하고 가만히 생각하면 3년이 훌쩍 지난 옷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빠른 건지 내가 나이를 들어가는 것인지.

새 냉장고는 근처 전자제품 대리점에 가서 차근차근 따져가며 골랐다.

우리 가족의 수에 맞는가. 미니멀한 삶에 맞는가. 너무 커도 안되고 양문은 안됨. 그리고 예산에 맞을 것.

그렇게 정하고 전시장에 갔다.

직원이 우리에게 먼저 소개한 것은 440만 원 냉장고.

얼음이 좌르르 쏟아지며 정수기 필터까지 달린.... 양문이었다. 냉장고 가격도 놀라웠지만 정수기 달린 얼음까지.

"정수기 관리를 해드립니다."

직원은 그렇게 말했다.

정수기 관리를 해가며 냉장고를 써야 하나. 참 귀찮군.

일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그래서 다음 것.

전시상품이라고 파격가란다. 흰색의 양문이다. 그런데 그냥 패스. 파격가라는 데도 220만 원이다. 그리고 흰색은 그냥 싫다.

"좀 작고 싼 거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간 곳은 한쪽 문으로 된 작은 냉장고들이 있는 곳이었다. 흰색의 냉장고들 옆에서 경쾌해 보이는 짙은 회색빛의 빛나는 냉장고. 신형이었다. 냉동고는 아래칸. 널찍한 서랍. 도어를 열기 쉽게 손잡이가 기존의 것들과 차별화되었다. 크기도 적당하고 특히 냉동고 문짝에 물건 칸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낙점! 가격이 훨씬 싸진데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효용성도 커 보였다.


혹 너무 작은 것을 산 것은 아닐까 염려하였으나 막상 집에 도착한 냉장고는 기존의 냉장고보다 덩치만 조금 작지 키는 더 컸다.

넓은 전시장에서 작아 보이던 냉장고는 우리 집에 딱 맞는 크기로 들어와서 물건들이 채워졌다.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실속형 구매를 한 듯해서 기분이 좋다.

새 냉장고 문을 열고 닫고 하다 보니 예전의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때였다.

우리 집에 처음 냉장고가 생겼다. 우리 오누이는 이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에 흥분해 있었다. 첫 냉장고를 수건으로 닦던 엄마의 눈도 기쁨으로 빛났다.

우리는 주스 가루를 사다가 물에 타서 얼린 후 그것을 맛있다고 입에 넣고 굴려먹었다.

쮸쮸바가 신상품으로 나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던 시기였다.

아이스케끼 장수가 하얀 아이스크림을 증기가 풀풀 나는 냉동고에서 꺼낼 때 얼마나 환상적인 모양이었던지.

삼각형으로 된, 우윳빛깔을 품은 그것들은 김이 연기처럼 가득한 냉동고 안에 수북하게 누었다가 아이들의 손으로 하나씩 옮겨졌는데. 맛도 일품이었다.




내 생애의 첫 냉장고를 떠올리며

이제 그 전보다 너무 잘생기고 멋진 냉장고의 빛난 얼굴을 마주하고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된 내가 그 안에서 김치통을 꺼내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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