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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Sep 12. 2016

#하나님의 관점

열왕기상 16장 30-31절

29-유다의 아사왕 제 삼십팔 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관점이기에 아합 왕이 이방인의 여자와 혼인을 하고 이방 종교를 섬겼기 때문에 악을 행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 결혼은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의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정책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세벨의 아버지는 두로(페니키아)왕 엡바알이었고 이 결혼은 두 나라 사이의 동맹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람(현 시리아 지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는 안전망과 해상무역을 통한 경제적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오므리는 내부 결속을 위해 다른 종교도 묵인하고 방관하는 평화정책을 폈다. 즉  왕권을 강화하며 국내외로 정치를 잘한 왕이었다고나 할까.

  그를 이은 아들 아합도 그런 아버지의 정책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악한 오므리 왕에 이어 더 악한 아합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아내 이세벨의 영향을 너~무 잘 받은 아합왕이 바알을 숭배하고 신전을 세운 것 때문 일 것이다. 그리고 탐욕이 많아 백성의 것을 빼앗기도 한다.(나봇의 포도원 이야기 참조. 열왕기상 21장) 이때도 역시 이세벨이 하라는 대로 하는 바보.

결론적으로 정치를 잘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세상적으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관점에 그들의 영적 민감성은 전혀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영적인 면이다. 그렇게 보면 오므리와 아합이 지배하던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부유했을지는 몰라도 영적으로는 암흑기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상대주의적 다양성으로 달려가는 세상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는 분명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서로의 것을 존중하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며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며 포용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무엇이 기준인가?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은 옳지 않은가의 기준이 없는 세상. 오늘날의 세상이 아닐까.

세상적인 관점만으로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된다는 기준이 없으면 다양성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가령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은 여자의 목에 둥근 고리를 겹겹이 끼워 넣는데 나중에 그것을 빼면 목이 부러져 죽는다고 한다. 이 같은 경우도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이유로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역시 세상의 모든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것에서 비롯된 종교적 다양성과 다르지 않다. 

아합 왕 때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 다원주의는 오므리가 모든 종교를 묵인하고 수용했던 것과 아합 왕이 바알신을 받아들여 섬긴 것과 다르지 않다.

성경에서는 오직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기준이 없는 모호한 시대에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삶의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이는 이사야서 말씀에도 이미 예언되었다.

 이사야 5장 20절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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