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by 미셸 오


일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영양제를 주문했는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회사에서 출시한 것이다. 치료약은 아니고 보약으로 만들어 낸 것인 데 누가 사서 먹기에 얻어먹어보니 맛도 한약처럼 쓰지 않고 먹을만했다.

일회용 팩에 담겨 휴대하기에도 간편해 보이고 주 성분도 홍삼에 당귀 등 약초 위주여서 설마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처음 몸에 반응이 왔을때는 환절기 날씨와 겹쳐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약을 계속 먹으면 알레르기는 더 심해지고 약을 끊으면 괜찮아지고 하는 것이다. 결국 몸져 눕게되었다.

어제 병원 응급실로 가서 수액에 알레르기 처방을 받고 하루 지나고 나니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먹다 남은 약을 어찌할까 하다 구입처에 전화를 하고 사실을 말했더니 선뜻 반품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좋은 약이 있으니 그것을 먹어보지 않겠느냐고 거절하는 고객에게 마케팅(?)까지 한다.

나는 이미 반품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전화 속 상담사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만일 그녀가 반품이 안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나열했다라면 나는 그 회사의 제품은 영원히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약 성분이 여러 가지여서 그 안에 몸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품 이유가 몸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반품비는 따로 받지 않습니다."라는 그녀의 말을 들을 때 그 회사의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 것을 느꼈다.


'**회사의 약초 성분의 영양제는 별로야. 앞으로는 사지 않겠어.'가 아니라


'맞아 내게 안 맞는 약초 성분이 있었던 것이니 다음번에는 다른 성분의 약을 구입해 봐야지'


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약값의 절반을 잃었지만 상담사의 친절하고 솔직한 응대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이렇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무시하는 처사다. 이것은 정말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불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게에서 토끼털로 모자와 앞섶에 테두리가 된 겨울 코트를 고가에 산 적이 있다. 그런데 드라이 한 번에 흰 토끼털이 노란색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산지 한 달도 안된 것이어서 구입한 가게로 가서 사정을 말했더니 주인의 대답은 단번에 "노"였다.

내가 가져간 코트를 한 번 만져보기만 했어도, 토끼털 색깔이 변한 것에 대해 본사에 올려보겠다고 한 마디만 했어도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머 어떡해요. 이렇게 색이 변해서.."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감정이 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옷을 사간 나의 입장이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계속 안된다고만 하던 내게 그녀는 유리벽 안에 들어간 인형같이 표정이 없어서 더 화나게 했다.

어떻게 저렇듯이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이 이런 옷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을 정도다.

물론 그 주인 여자는 평소 옷을 판매하지는 않고 그날 처음 본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판매원이 단골손님이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끄떡도 않는 주인 뒤에 서 있던 판매원이 뭔가 곰곰이 생각는가 싶더니 얼굴이 붉어지는 내 앞으로 나서서는

"회사로 올려보내 볼게요."


라고 해서 일단락이 되었다.

물론 본사에서는 토끼털의 변색에 대해 반품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자신의 가게 단골이라는 것도 개의치 않고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했던 그 여주인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불만에 가득한 고객을 상대할 때 진솔한 말 한마디 말고 더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나 역시 고객의 입장이 아니고 주인의 입장이 되어 본 경험이 있다.

오래전. 처음 학원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초등학교 자매가 영어를 배우겠다고 들어왔다. 연년생인 이 둘이는 매일 투닥투닥 싸웠고 언니는 활달한 동생에게 자꾸 밀리는 눈치였다.

석 달이 되었나?

아이들이 회비를 내고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이들의 엄마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을 더 이상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회비를 돌려달라고. 이미 달치 수강한 것도 있는 데다 그만두는 이유가 더 황당했다.

내가 둘째 아이의 등짝을 때려서 아이 등에 회초리 자국이 선명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상황 설명을 듣지 않고서야 흥분하는 엄마게 변명을 해봤자였다. 전화를 끊은 후 아이들을 불러 차근히 물어본 결과 매일 당하던 언니가 동생의 등짝을 회초리로 휘갈겨버린 것이고 엄마 아빠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학원 선생님이 그랬다고 갖다 붙인 것이었다.

얼굴이 미안함으로 찌그러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한숨만 푹 쉬었다. 그리고 진실을 엄마에게 말해야 한다고 타일러 보냈다. 물론 회비도 그대로 아이들 손에 들려 보냈고.

당시에는 억울하고 또 아이들이 영악해 보이고 또 생각 없이 학원 선생을 몰아붙이는 부모도 미웠다.

회비를 반만 돌려주고 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참고 지냈더니 후일 내가 병원에 잠시 입원해 있을 때 그 자매의 엄마가 병문안을 온 것을 보고 아이들을 통해 사실을 알았나 보다 하고 느꼈다. 물론 미안하다는 소리는 안 했지만 그걸로도 족했다.

상대방이 사과 한 마디만 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들을 크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흔하게 만난다. 대부분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 문제 자체라기보다 그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무례함, 즉 표현방식이다.

만일 상대방이 내 감정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조금만 인정해주기만 한다면 까짓것 하는 마음으로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상대방이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한다면 대부분 양해할 것이다.

양해하지 않는다 해도 그 미안하다는 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메아리를 치기 때문에 후일을 생각하면 손해 보는 행동은 아닐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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