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후

by 미셸 오


아파트 위에서

내려다보니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린다. 태풍의 꼬리가 사납다. 가로수 길에는 사람 한 명 없고 옆 붉은 벽돌 건물의 초등학교 안에서는 호루라기 소리와 아이들의 소리가 뭉쳐서 아득하게 메아리친다. 흐린 하늘에 회색빛 구름이 길게 늘어져 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바람의 위협하는 듯한 소리가 음산하게 땅속으로부터 들려온다. 창문틀이 운다. 지진의 후유증인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국화꽃 피는 가을에 바람소리에 지진 걱정을 하고 있다니. 이런 날이 오리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예전에 이맘때쯤이면 푸르던 나뭇잎들은 색이 바래어져 가고 잎을 떨어뜨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여염집 담장 아래는 하얗고 노란 국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곤 하였는데. 그리고 하굣길 양 옆에 나의 키만큼 자라 한들거리던 코스모스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코스모스 길가에 앉아 고추잠자리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때를 생각하는데 열린 문으로 싸늘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닥치고 나는 발작적으로 재채기를 한다.

"에~에취~!!"

재채기를 할 때만큼은 온몸이 흔들린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육신의 연약함을 느낄 때다. 또한 밥을 먹을 때도 그러하다. 밥 한 술에 온 몸이 애달프게 매달린다. 연약하다. 내 육신이.

하물며 거대한 땅이 울릴 때 낙엽처럼 소스라치게 몸을 떠는, 인간이 세워 올린 문명의 나약함을 보았다.

며칠 동안 비가 왔으니 맑게 갠 가을 하늘을 보고 싶은데 태양빛은 종일 가렸고 바다는 거칠게 반항한다.

웅웅대는 겨울바람 흉내를 내는 가을이 싫어지려 한다. 춥다.

지난주

그날도 변함없이 한낮은 무더웠고 저녁 어스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었다.

몸이 나른해지고 마음도 덩달아 고무줄처럼 늘어졌다.

그때.

깊은 땅속으로부터 굵은 전파 같은 신호음이 공중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집이 떨었다. 그 순간엔 사실 별 걱정은 안 들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아니었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진동으로 아파트가 양 옆으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무서웠다.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걸까. 베란다 창을 열고 아래를 보니

십여 층의 길고 길게 이어진 아파트 단지 마당에 사람들이 내려와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파트 창마다 불이 환하게 켜지고 복도가 시끄럽더니 사람들이 내려간다. 급히 가스 밸브를 잠그고 대문은 열어 두었다. 지진이 오면 불이 나고 또 문이 휘어져 탈출을 못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무방비 상태.

예전에 사둔 손전등을 찾았으니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뜨지 않고 여기저기 지진을 인지한 사람들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세 번째 땅이 흔들리면 내려가려고 간단히 가방을 챙겼다.

지갑과 얇은 잠바와 안경을 가방에 넣고 있자니 얇은 나시 차림에 반바지 차림인 가족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설령 내려간다 해도 넓은 공터로 가야지 빌딩 숲 속에서 아파트 마당이라고 안전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만일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지진이라면 쓰나미도 올 수 있는데 바다를 옆에 낀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다행히 더 이상의 지진은 오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먼 나라의 일인 줄 알고 아무런 준비도 안된 상태로 지진을 마주하고 보니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같은 아파트 아는 분에게 전화를 해보았더니 그들도 어느새 아파트 1층에 내려와 있다고 한다.

순간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어떻게 행동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 거다.


그렇게 더 이상 지진이 없이 끝났지만 그 잠시 잠깐의 지진은 가슴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늘로 장대같이 솟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면서 단층 주택을 생각해본 시간이었고 심한 지진이 생기면 아파트 절반이 엿가락 부러지듯 부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글을 쓰는 잠시 전에도 경주에는 지진이 났다고 한다. 여진이 멈추지 않고 자꾸 생기니 경주에 사는 분들의 불안감이 극심할 것 같다.

올여름 너무 무더워 견디기 힘들었는데 가을마저 지진의 충격으로 시작하다니.

더 이상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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