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하던 중 컴퓨터 화면이 흑백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아이보리색으로 단정하고 깔끔하게 내 책상 위에서 그 자태를 뽐낸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다시 켜고 끄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비스를 신청했다.
반나절 만에 집을 방문한 덩치 큰 인상 좋은 기사는
"사모님 이 컴퓨터는 하드웨어에 문제가 있네요. 교체비가 20만 원 들 것 같습니다."
"네? 왜 그렇게 비싸요?"
"이 컴퓨터가 일체형이라 그렇습니다."
"....................."
어흑. 산지 겨우 2년 반 정도 된 것 같은데. 겉은 저리도 요요하게 빛나는데. 20만 원을 주고 수리하느니 새로 사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새로 컴퓨터를 살 때마다 점점 슬림해지고 간편해지는 경향에 맞추어 컴퓨터를 구입해 왔다.
이 일체형 무선 컴퓨터를 매장에서 보고 첫눈에 반했었다.
본체와 모니터의 여러 전선과 프린터기 선까지. 책상 위아래의 난잡함을 한 번에 잡아준
모던한 형태. 누가 내 개인적 취향을 존중해서 만들어준 느낌이 들었던. 아주 맘에 들었던 컴퓨터였다.
성능도 문서 외 인터넷 동영상을 보는 정도라 특별하게 뛰어날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집에 들여와 책상 위에 놓였을 때 순간, 텅 빈 책상 위를 마주하는 속 시원함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결국 얼굴값을 하지 못하는. 즉 외모에 빠셔 실속 구매를 하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컴퓨터에 의존성이 큰 내게 하루라도 없으면 불편한 도구.
결국 매장으로 달려갔고 구질한 것을 싫어하는 내가 선택한 것은 일체형보다 더 간단한 노트북.
딸이 대학 갈 때 노트북을 사 준 이후 내가 쓰려고 노트북을 산 건 처음이다.
일체형을 밀어내고 더 가볍고 얇아진 노트북을 얹어 놓으니 책상이 휑~해진 느낌이 든다.
이제는 책상이야말로 턱없이 크기만 하고 실속 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조금 불편한 점이라면
화면이 작아지고 그만큼 글자의 크기도 작아졌다는 것이다. 그 외는 이전보다 성능이 좋아서 편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젠 무더위에 이 컴퓨터를 들고 시원한 커피숍에 가서도 글을 적을 수 있겠군. 그리고 침대 위에서도 드라마를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겠네.
성능도 좋아지고 외양도 작고 가벼워진 노트북을 대하니,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을 들여놓고 멀뚱멀뚱 화면만 응시하였다. 깜박거리는 커서를 무한정 바라보기만 할 뿐 도대체 이 기계에 어떻게 접근해야 될지를 모르겠는 거다. 그렇게 처음 맞는 기계 앞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마주 보기만 하였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것을 대하는 기분을 체험한 느낌은 당황스러웠고 무척 답답했다.
겨우 떨리는 손으로 전원을 켜고 문서 작성을 하고 게임만 일주일 내내 했던 기억이 난다. 미로에 가득한 둥근 공들을 제거하며 나가던 게임이었는데 한 동안 몰입했었다. 그러나 그 게임이 내 생애 가장 장시간 즐긴 게임이자 마지막이었다.
가끔 테트리스 게임만 했어도 아주 잠깐. 게임은 애초부터 재미를 붙이질 못했다.
반면에 나를 무한정 이끌었던 것은 문서작성이었다.
자판기를 두드릴 때 화면에 찍히던 글자들의 조합은 내 영혼을 혹하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얼마나 글을 많이 적었던지.
어쩔 때는 원고지 70장 분량의 글을 실수로 저장하지 못해 날려버리기도 했고 글 작성 중에 컴퓨터가 꺼져서 울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자판기 앞에서 한글을 두드리는 그것이 즐거움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텔레비전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컴퓨터도 멋지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나 또한 그것들이 마법을 부릴 때마다 교체하며 지내왔다.
비록 돈을 지출해야 하는 아픔은 있었지만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선악의 열매를 맛보게 해 준 신문물.
컴퓨터 없는 도시의 삶은 상상만 해도 불안할 정도다.
컴퓨터 중독.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부정적으로 말을 하다가도 매장에 들어서서 전시된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물고기들의 만져질 듯한 선명한 비늘과 눈을 향해 날아드는 축구공들의 운동력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나날이 발전하는 텔레비전.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들을 보면 저절로 입이 쩍~벌어지는 것을 숨기지 못하겠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이 놀라운 새 친구의 몸을 두드리며 글을 적고 있다.
이제 새 친구를 잘 사귀어서 좋은 친구로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