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P시에 가게 되었다.
들를 데도 있었고 필요한 물건들도 좀 사고 바람도 쏘이고 겸사겸사 시간을 낸 외출이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대도시는 내가 사는 곳 보다 10배는 더 빠르게 발전하는 듯 보인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도를 내려가고 지하철을 타고 이리저리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
아. 늘 천천히 움직이고 바쁠 것 없는 세상에서 너무 안일하게 살았음을 깨닫게 할 만큼 도시의 거리는 바쁜 걸음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상점들과 많은 사람들이 있는 지하도에서 올라와 땅에 발을 닿으면 시원하게 가슴이 뚫린다. 내게 있어 지하도란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공간일 뿐이니. 오랜 시간 땅 속에 갇혀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내 눈이 하늘 위로 줄기차게 뻗은 빌딩 숲 사이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인다.
지하도만큼은 아니지만 도시의 바깥 거리도 사람들과 차량들로 만원이다.
그렇다.
나는 깊고 깊은 아마존 밀림 숲 가운데로 들어왔다. 하늘을 보면 울창하고 우람한 콘크리트 나무들로 가려진 푸르스름한 하늘 부분만 보일 뿐이다.
젊은 날 발바닥이 아프도록 걸어 다녔던 길이었는데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모르는 딴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눈알을 쉼 없이 굴리며 목적지가 있는 건물을 길을 따라 걷는다. 다행히 내 손 안에는 스마트폰 지도가 들려있다. 그것은 건물의 위치를 아주 상세히 보여준다. 눈을 어지럽히는 광고들이 건물마다 빽빽하다.
그때였다. 앞에서 걸어오던 한 중년의 여자가 우리들 앞에 걸음을 멈추더니
"여기 ***안과가 어디 있나요?"라고 묻는다. 본토인이 이방인에게 길을 묻다니. 그러나
마침 조금 전에 우리가 거쳐오면서 본 안과였다.
" 조금 더 가시면 왼편 건물입니다."
나는 능숙하게 건물 위치를 가리켜 보았다.
"예~감사합니다."
이모뻘 되어 보이는 여인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 갔다.
우리가 목적지에 들러 일을 다 본 후 거리를 나서니 이미 정오시간이다. 아침을 거른 상태였다.
배가 무척 고팠다.
큰 도로 뒷골목에는 원래 맛난 식당들이 가득한 지라 도로 앞의 즐비한 빌딩들 뒤로 가서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았다.
마침 돌솥밥 집이 눈에 띄었다. 비싸 보이긴 했지만 마침 점심 특선이 있어서 그리로 발을 옮겼다.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라면 더 싸고 맛난 집을 찾아다녔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는 데다 체력도 바닥이었다. 전통 기와집 대문으로 들어서는 듯한 식당 입구를 지나서 신을 벗고 자리를 잡았다.
맛난 집을 선택한 듯하여 기분이 흡족해지려던 순간이었다. 메뉴판을 가져온 중년의 여 종업원이
"1시에 예약된 자리라서 그전에 일어나셔야 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예약된 자리에 손님을 받아 놓고 그 시간 전에 일어나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될 법이나 한가? 그리고 시계는 이미 열두시 십오분이다. 그러나 내가 기분이 나빴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말본새와 어조였다. 톡톡 튀는 듯한 허스키한 어조에는 미안함은 커녕 빨리 식사를 하고 시간 전에 일어서는 것이 마땅하다는 투였다.
"미리 말해주지 지금 말하면 어떡해요?"
나는 기분나쁜 티를 누르며 말했다.
그러자 여 종업원이 눈을 오만하게 뜨더니,
"식사 중에 이런 말을 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종업원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저 먼 곳에 가 사는 동안 여기의 음식점들은 이런식으로 변한 건데 나만 모르는 건가. 그러나 이미 앉은자리를 털고 나와 다른 식당을 찾아갈 만큼 체력이 남아 있지를 못한 것이 즉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원인이었는데 그때 그냥 그 식당을 나오는 것이 옳았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물병과 컵이 놓아지고 기본 반찬들이 나왔던 것이고
먹음직한 돌솥밥이 나왔을 때는 음식 맛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화가 났다. 물론 나만 그런 기분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허기만 대충 치우고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떡갈비와 생선 구이가 거의 그대로 남았다.
식사 후 그녀의 태도에 대해 점장에게 지적했더니 점장은 더 가관이었다. 여 종업원이 원래 목소리가 그렇기 때문이며 자신들은 식당에 들어서는 손님에게 예약된 자리밖에 없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무슨 소리인지.
"다들 12시 40분쯤 일어들 나시거든요."
그렇다면 예약 시간이 가까워진다 싶을 때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식당에 와서 비싼 밥을 먹으면서도 뒤의 예약 손님들을 생각하며 시간에 쫓기듯 밥을 먹어야만 하는가
밥값을 계산하고 나오는 등 뒤에서 '안녕히 가세요' 라는 인사도 형식적으로 들렸다.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일을 또 겪는구나. 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수 밖에는 없었지만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처음 보는 손님에게
'나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 이해해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까. 다만 그런 문제적 인간을 만난 그 하루를.
하필 그 시간에 그 음식점을 선택한 나의 실수를 애써 잊기로 하였다. 언제나 하루의 일과는 예상 밖으로 튀기 일쑤니까.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에 그 뜻밖의 어그러짐이 일상에 단조로움을 뛰어넘는다. 그것이 기분 좋은 일이면 좋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