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미명에 주변이 서서히 밝아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왕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 소화가 잘 되는 밥을 지었고 아버지조차 같이 일어나 부산하게 준비를 마쳤다.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긴장하는 눈치였다.
학생증과 수험표와 검은색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거리로 나설 때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코끝을 쨍하게 얼릴 만큼 추웠다. 얼마 걷지 않아 발가락에 통증이 왔다.
시험장은 집에서 멀었다.
택시를 내리자 시험장으로 지정된 중학교 입구부터 몰려든 차들과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각 학교에서 나온 학생들이 저마다 플래카드를 들고 자기네 학교 선배들을 기다리다가 선배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함성을 질러댔다.
우리 학교 후배들은 대문 입구에 서 있었다.
나이 많은 수학 선생님이 갈색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다가 우리를 눈으로 맞이해 주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으나 후배들이 건네는 커피를 받았다. 꼭 그것을 받아 마셔야만 하는 통과의례처럼 말이다. 귤도 한 개씩 주었는데 그것은 손에 쥐자마자 가슴이 섬뜩하리만큼 차가웠다. 귤을 손바닥 안에서 굴리며 운동장 안으로 들어섰다.
긴장을 하지 않아도 추워서인지 몸이 떨렸다.
시험을 치는 순간순간이 급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하나 놀라웠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이후 4년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짝꿍이 바로 나의 줄 옆에 사선 쪽에 자리가 배정되었던 것이었다.
그 친구는 전혀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는 친구를 만난 것이 좋아서였는지 쉬는 시간마다 내게로 와서 의문 나는 것을 물어봤다. 학력고사 치기 전 3개월 간 공부를 한다고 해서 성적이 그다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을 한 내게 시험 치기 직전까지도 공부를 하고 외워대는 친구를 의아하게 생각하였고.
다만 이 하루,
쉴 새 없이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단 하루에 결판이 난다는 사실이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시험이 다 끝난 후에는 새롭고 활기찬 세상을 맞이하는 듯 속이 후련하였다.
압박했던 학교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이.
아침마다 비좁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불편한 화장실. 맛없는 학교의 매점. 너무 나이가 많아 지루하던 선생들의 수업들.
불편했던 책상과 의자들.
특히 학교의 매점에서 파는 라면은 항상 덜 익었고 고춧가루만 조금 뿌려져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라면을 꼽으라면 그 매점의 라면을 꼽겠다.
입에 넣으면 플라스틱같이 딱딱하게 씹히는 라면과 붉은 톱밥 같은 고춧가루의 맛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세상에서 그렇게 맛없는 라면을 어떻게 만드는지 신기해서였다.
컵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아이들이 미친 듯이 열광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사립학교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사들은 아주 오래 묵은 헌책처럼 지루하고 고리타분하였다.
몇몇 새로운 젊은 교사들을 빼면 90프로 이상이 사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명문 고등학교 선생이란 사실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였는데 대표적인 그들의 모습은 이렇다.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탁자에 책을 한번 펴보지도 않고 던져놓고는 칠판에 가득 적어 내려간다.
내가 이렇게 책 안의 모든 것들을 다 외운다. 보아라 나의 머릿속에 든 것들을.
그들의 뒷모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글자는 또박또박하고 흐트러짐이 없이 좋은 참고서의 정리된 면을 보는 듯한 판서가 끝나면
그들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작고 쉰듯한 목소리와 변함없는 어조로 쉴 새 없이 강의를 하고 또 지우고 판서를 시작한다.
그들 중 어떤 교사는 자신이 베트남 전에 나가 엉덩이에 총알 맞은 이야기를 신나게 해 주고
그의 열변을 듣다 보면 입술에는 언제나 침이 하얗게 묻어 있었다. 항상 머리 뒷부분이 뒤집어져 있어서 어디서 낮잠을 자다 온 티가 많이 났던 교사도 있었고. 그러나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미안해하지도 않을 것을 알았기에.
아무튼 어둠이 내리는 겨울 저녁에 거리는 수많은 수험생들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는 듯. 흥성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고.
그 수많은 사람들의 대열에 섞여 그때 난 처음으로 아버지의 팔짱을 어색하게 끼고 걷는 중이었다. 엄마의 강권으로 아버지의 팔짱을 꼈을 때 당신도 딸만큼 무척 어색해한다는 것을 눈치채었지만 엄마는 그들 부녀를 무척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팔짱을 끼는 것이 어색한 것이 말이 되냐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횡단보도에서 길을 정리하던 대학생 아르바이트가 분명한 처음 보는 남학생이
"오늘 시험 잘 쳤어?"
라고 말을 건네받는 것도 수험생에게는 어떤 특권처럼 여겨졌다.
부모님들은
딸이 신나게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을 보고
'이놈이 시험을 아주 잘 친 모양이구나'라고 잔뜩 기대를 하였지만. 나는 미리부터 시험을 아주 망쳤다고 말해서 그들의 좌절의 시간을 연장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첫 교시.
시험지를 받아 들면서 나의 머리 속은 그동안 배웠던 지식들이 하얗게 풀을 먹인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시험문제들이 다 애매모호하다고 느껴져서 그동안 배웠던 지식들이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심각하게 문제를 푸는 모습으로 보였을 터이지만
그동안 대체 무엇을 배운 것이지?라는 생각만 가득하였다.
시험지를 푼다고 몸을 들이대고는 있었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한 것은 까만 사인펜으로 정답을 칸에 맞게 잘 색칠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마킹을 실수해서 정답을 한 칸씩 아래로 내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제일 컸다.
그러므로 시험 성적은 아마도 이 정도 선일 거야 하고 예상을 하고는 있었지만 점수는 예상한 것보다 턱없이 낮았다. 혹시 시험 점수를 잘못 매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만 자꾸 들어서 이놈의 컴퓨터가 점수를 잘 못 매긴 것이 아니라면 마킹을 실수해서 내가 친 과목 한 개의 점수 합산이 안된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나의 시험 답안지를 확인하고 점수를 수정하고 싶었을 만큼 내 점수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시험 점수를 받은 후 한 달 동안 너무 괴로웠다.
성미 급한 친척들은 나의 점수를 과장해서 점쳤다. 아버지는 친척들의 전화를 받으며 애써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긴장을 많이 해서 입술이 찢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그의 딸은 택도 없는 시험 성적을 들고 자기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부모님은 재수하라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더는 이전의 공부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에 맞추어 대학에 갔다.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으나 과는 원하던 것이어서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대입시험이 인생의 마지막 관문이 아니라 첫 관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사기당한 기분이 든 데다가
그동안 열심히 배운 것들 중 잘못 배운 것들이 많았다는 배신감 같은 것도 어우러지고
갑자기 주어진 자유 때문에 많이 흔들리고 괴롭기도 하였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 생각하면
강제로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오랜 시간들보다 훨씬 값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살면서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지식을 찾고 자원해서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들이 학교를 다니던 그때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나는 태생적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는 부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가만히 생각하여보면
일요일 학교에 나가 자습을 할 때도 다른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며 공부에 열심을 낼 때
나는 시원한 복도에 나와 창가에 책상을 놓고는 수많은 포플러 나무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보느라 몇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다가 집으로 오기 일쑤였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친구에게 내가 읽은 무서운 이야기들과 지어낸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같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깨곤 하였던 것이다.
그뿐 아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에도 공중에 하얗게 국수가닥처럼 내리 꽂히는 빗줄기 사이사이로 실제와 환상을 교대로 교차하며 상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다.
담임이 반 애들을 교무실에 모아놓고 토요일 밤이 새도록 자습을 시키던 날에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졸음에 겨운 아이들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자습시켰음에 만족해하는 담임선생의 뇌구조를 비난하면서 일부러 공부를 하지 않고 책상에 엎디어 잤다. 눅눅한 토요일 밤의 교무실은 춥고 불편하였다.
일요일 미명의 새벽에 학교 대문을 빠져나와 정류장을 향해 길을 걸을 때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도시의 거리에 잔뜩 떨어져 비에 젖어 있던 누런 나뭇잎들만 바라보며 머리가 휑하니 비어서 환각제를 들이부은 것처럼 몽롱하였다.
그래서 정말 왜 이런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지 고민을 하다 잠이 들었고 일요일 내내 잠만 자다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토요일을 교무실에서 잔 이후 아이들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커서 아이들을 몰아붙이던 담임은 이후 학교에서 밤샘을 하자고 강제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항상 무슨 거리를 만들어서 명문여고 운운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려고 애를 쓰고 하는 점에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명문 대학에 합격된 소수 아이들만의 축제가 되어버린 그날
우리 친한 벗들은
학교를 떠난다는 미련은 추호도 없이. 담임과의 이별을 즐거워하며 거리로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