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탑승기

by 미셸 오
갈 때

오후 일찍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를 오를 때 운전기사 아저씨가 표를 받으며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표를 점검하는 직원인 줄 착각하였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모두 안전벨트를 매십시오"

한다.

여태 이 소도시에 살면서 이렇게 멘트가 깍듯한 운전기사 아저씨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차가 출발하면서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응?

보통 중년의 운전기사분들은 대개 지난 유행가요를 듣거나 뽕짝류를 틀기 마련인데 좀 의외였다

차는 부드럽게 고속도로를 접어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데 옆 좌석에 앉은 남자가 코를 심하게 골며 잔다.

아 클래식의 힘이여~


얼마를 달렸을까.

베토벤의 '운명'이 웅장하게 나오는가 싶더니 차는 터널 안으로 진입을 시작하였고 '쨔앙~' 하는 교향곡의 거센 음이 터질 때마다 터널 세 개를 빠져나오는.. 교묘하게도 음악은 차가 달리는 순간에 맞춰 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에는 아주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

그것은 아주 귀에 익은 음악이었다.

비행기가 땅에 무사히 착지하였을 때 들려오는 기내 음악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웬지 모를 안도감으로 허리의 벨트를 푼다. 나는 버스 안 곳곳에서 안전벨트를 푸는 소리를 들으며 클래식의 잔잔함에 귀를 얹었다.

"음.. 비행기를 타고 온 느낌이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차에서 내릴 때 역시

버스에서 내리는 각 사람들에게도 먼저 눈길을 주며 (아마도 내릴 때 발을 헛디디지 않을까 염려한 듯)

"안녕히 가세요"를 말하며 배웅하던 멋진 아저씨.

그때 그 어느 누구도 기사 아저씨의 배웅을 마다하는 사람이 없었다.

진심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버스길이었다.

감동이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전해준 그분.

얼굴이 동그랗고 선하게 생긴 아저씨.



올 때

막차를 타려나 했는데 다행히 저녁 일곱 시 십오 분 차를 타게 되었다. 막차는 저녁 7시 40분 차다.

운전기사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그러나 목소리로 보아 60세 초반 정도로 보였다.

낮에 좋은 기사를 만나 그분의 차를 타기를 바랐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에 오를 때부터 버스의 묵은 기름 냄새로 속이 울렁거린다. 나는 위가 약해 멀미를 잘 하는 편이다.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어떤 사람은 차의 이런 석유냄새가 좋다고 하던데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차는 정확히 십오 분에 11명을 태우고 출발.

아.

차가 어둠 속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릴 때 지옥으로 가는 버스를 탄 줄 알았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접어드는 순간 시끄러운 굉음을 내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부아앙~~쿠크크킄~~콰콰콰~~~부아앙~~콰콰카~"

정말 이런 버스를 타지 않기를 그렇게 바랐건만.

나는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러나 듣는 귀와 육체의 느낌은 살아 있어 더 또렷이 차의 속도를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도로의 커브를 돌 때마다 차 안의 사람들의 몸이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앞 좌석의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그림을 그린다면 정말 머리카락이 바람따라 쏠리고 눈이 확대되고 동공이 커다랗게 흔들리도록 그렸을 것이다.


정거장에 가서 조금 더 쉴만한 시간을 가지려고 그랬거나 아니면 손님들을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순수한(?) 의도를 가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가장 불안했던 것은

운전기사가 혹여 졸고 있거나 속도계를 무시하고 있거나 하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가끔씩 눈을 뜨고 보면 앞 유리창에 거의 닿을 것만 같은 앞 차들과 도로의 가름 막이 보였다.

이런 식의 놀이기구를 타고 싶지는 않았는 데 말이다.

몇몇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우리 앞에 앉은 부부는 잠을 청하고. 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도 불안을 읽었다.

나는 눈을 감았으나 차가 빙 돌아버리거나 어딘가에 부딪힐 것만 같아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차의 바람을 가르는 속력에 몇 번이나 눈을 뜨고 창밖을 주시하였다.

우리가 탄 버스는 모든 자가용과 다른 고속버스들을 앞질렀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유독 이런 순간에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들.


지난번에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사고 나서 불이 난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냐 아냐

나는 몇 번이나 끔찍한 상상을 물리치려 하였다.

그래도 버스기사 두 번째 자리이니 불이 나도 빨리 도망칠 수 있어.

버스가 높은 다리 위를 달릴 때는 저 아래 바닷속으로 버스가 휙 돌아서 풍덩 빠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다리 위서 버스가 빠지면 한 사람도 살아나지 못할 거야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이런 속도는 위반이지 않아? 버스 회사에 민원을 넣을까.

버스회사가 운전기사들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여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면...?

왜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는 거지?

등등

나의 온갖 부정적인 상상과 불안을 안고 버스는 한 시간만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전혀 반갑지 않았다.

(참고로 우리 사는 곳까지는 1시간 20분 거리다.)

그런 무서운 속도로 20분을 단축한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속도는 목숨을 건 질주였다.

운전대를 잡은 저 한 사람에게 1시간 동안 11명의 생명을 의탁해야 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버스에 내릴 때 늙은 운전기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얼굴을 기억했다가 다음에는 그가 운전하는 버스는 피할 생각이었던 것이나. 다만 하얗게 센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다.




하루 왕복 시외버스를 타면서 깨달은 것은

시시때때로 우리는 위험한 상황을 만나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삶 속에 던져진 느낌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은 아주 편안하고 감사하게 어느 순간은 너무 위험하고 원망스럽게

그 순간의 선택은 그 시간을 주도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렸고.

매 순간순간 감사하며 살아야 겠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깨달음이 그리 오래가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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