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 그런가.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시다.
수천 개의 전등 빛으로도 만들 수 없는 깨끗하고 밝은 빛이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은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침에 씻은 그릇들과 김치통을 햇볕이 눈부신 베란다에 갖다 놓았다.
지금 그것들은 한껏 뜨거운 햇살에 소독 중이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그릇들 사이로 양지에 앉아 냄비를 열심히 닦는 여인이 보인다.
그 여인은 넓적한 엉덩이와 둥근 어깨를 해가 비치는 쪽으로 두고 몸을 한껏 요동치며 지푸라기에 연탄재를 묻혀가며 냄비를 열심히 닦고 있다.
지푸라기는 회색빛으로 물들고 냄비는 은그릇 모양 심하게 반짝거렸다.
또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벽돌색 넓은 대야에 담긴 무와 배추를 씻는다.
한 사람이 하기엔 너무 벅차 보이는 큰 통에 가득한 배추와 무들. 소금에 절인 그것들을 장화신을 발로 꾹꾹 눌러준다. 그녀의 아이들 셋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마당에서 칼싸움을 하느라 옷이 더럽혀지고 있었다.
막내가 형이 휘두른 막대기에 머리를 맞고 앙 울음을 터뜨린다.
형은 엄마에게 맞을까 봐 줄행랑을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빨래통에 아이들 옷이 가득하고 여인은 빨래판을 걸치고 쭈그려 앉아 차가운 물에 하나하나 비누를 발라가며 손으로 옷을 주물러 빤다.
오전에 냄비를 닦을 때보다 더 몸이 요동친다. 연탄불에 데운 물을 붓자 빨래통에 김이 피어오르고 빨래의 땟물은 여인의 몸놀림보다 더 쉽게 빠졌다.
그녀가 빨래를 헹구고 그것들을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면 옷은 겨울바람에 말린 오징어처럼 꽁꽁 얼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것들은 잠시 후 콧물처럼 고드름을 흘렸다. 아이들은 그 고드름을 손으로 뚝뚝 부러뜨리며 놀았다.
"빨래 만지지 마라. 옷이 상한다."
아이들은 빳빳한 옷이 부러질까 조심조심 고드름을 떼어냈다.
집 앞 밭에 말라붙은 배추와 무 꼬랑지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모질게 시간을 견디던 197*년 겨울.
밖에는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고 아이들은 언 논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동네에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유난히 잘 만드는 형. 오빠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우상이었다. 그러나 얼음이 꽝꽝 얼지 않는 겨울의 한 낮은 정말 심심하였다.
집안에 유일한 오락거리는 텔레비전이었으나 그것은 저녁부터 나왔고 바람이 불 때마다 지지직거렸다.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흔들며 바람에 흐트러진 전파를 잡고
그러면 또 텔레비전의 화면이 겨우 잡히곤 하였다.
아이 셋을 둔 여인은 초겨울에 담가 둔 배추김치와 동치미로 겨울 내내 밥상을 차리고 꽃샘추위가
다가올 무렵, 그 배추김치는 시큼해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것에 콩비지를 섞어 찌개를 만들었다.
배추김치에 콩비지를 넣은 찌개는 처음 맛은 좋았지만 갈수록 지겨웠다.
콩비지 다음으로 싫었던 것은 버터를 넣은 노란 기름이 뜨는 김치찌개.
그리고 가장 싫었던 것은 수제비였다!
큰 멸치가 동당 동당 뜨는 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밀가루 반죽을 숟가락으로 푹푹 떠 넣은 수제비 맛은 정말 아니었다. 동네 미역 공장에서 가져온 삶은 미역 줄기 무침도 늘 입안에서 미끄럼을 탔다.
좋은 것도 좀 있었다. 다행히도.
분유를 끓인 물에 탄 후 계란 노른자를 섞은 우유,
노른자는 우유에 섞이면 귤 알맹이들을 흩트려 놓은 것만 같았는데
그것은 씹으면 약간 찐득하니 혀에 달라붙는 맛이 우유와 잘 어울렸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에게 분유를 끓여 계란 노른자에 참기름을 타 주던 여인의 머리는 늘 부스스했다.
그때의
여인의 하루 시작은 밤새 타오른 연탄 갈기부터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는 것부터 시작해 하루가 모자랐다.
2016년
197*년 부엌 찬장에서 깨소금을 한 숟갈 씩 몰래 퍼 먹던 그때 그 여인의 어린 딸은 그때 그녀의 나이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고 돌 때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또 변했다.
언제나.
부족함이 없던 한낮의 태양빛이 더없이 귀한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사람들은 그 태양빛 가지고 서로 다툰다.
우리 집에 오는 햇볕을 막는 옆집사람과 원수가 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솟구치던 마을 우물을 이제 마트에서 돈을 주고 사서 먹어야 하는 귀한 물이 되었고
계란 장수 아줌마가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올 때마다 20알씩 사던 귀한 계란은 가장 싼 식품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 딱 한 번만 먹어야 했던 소머리가 그려진 분유는 이제 잘 먹지 않는다.
부잣집 아이도 가끔 도시락 반찬으로 싸다녔던 분홍빛 소시지는 햄에 밀려났고.
지금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밥을 해주기에 무거운 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2016년 겨울 그 여인의 딸은
늦은 아침을 먹고 책을 읽으며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밤늦게 잠을 잔다. 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 티를 입는다. 연탄공장은 거의 다 사라졌고 사람들은 기름으로 방을 땐다.
밥은 밥통이 해 주고 청소는 청소기가 돕는다.
김치는 거의 먹지 않아 겨울이라도 많은 김치를 담글 필요가 없고 맛난 김치는 마트에 가서 언제든 살 수 있다. 그리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
넓적한 엉덩이를 흔들며 손으로 세 아이의 빨래를 몇 시간씩 주물러 빨던 그 여인은 이제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아프다. 그녀의 딸은 생각한다.
베란다에 열거된 습기 찬 그릇들이 태양빛에 반짝 빛나며 말라가는 것을 보면
습기 찬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노년이 햇볕 아래 보송보송하게 말라 상큼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 따스한 황금빛 햇살 아래 소파를 갖다 놓고 늙은 여인도 일광욕을 한다.
" 따뜻해서 참 좋다"
라며 다리를 펴고 온 몸에 빛을 받는다.
빛이 치료의 광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또 생각한다.
그녀의 딸은 이제 자신이 낳은 딸을 바라본다. 앞으로 다가올
2036년에
그녀의 딸은 어떤 것들과 마주하며 살아갈까 생각한다.
아마도 그녀는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을까.
스마트 폰으로 차를 운전하고 밥을 짓고. 빨래는 거의 하지 않고.
전 세계를 도는 데 하루 만에 되지 않을까.
그때는 아마도 다른 혹성에 여행을 가지는 않을까.
아마도 그녀는 2036년에 2016년을 살고 있던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며 또 다른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