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며칠 전,
내과에 들렀다. 집에서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곳에 있는 병원이었으나 대개는 집 옆에 큰 병원이 있어 그곳으로 많이 갔기에 처음 들른 곳이었다.
병원은 늘 그렇지만 환자들로 가득하다.
오전 10시.
병원 안 대기실은 환자들과 바쁘게 오가는 간호사들로 분주하였고 특히 노인들이 많았다.
소화가 잘 안되어 속이 쓰리다는 엄마를 모시고 간 자리였다. 삼십 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원장실로 들어갔는데 의사는 대충 나이가 오십 중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민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엄마를 침대에 누이고 배의 이곳저곳을 눌러본 후 위장에 염증이 생긴 것이라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
나보다 분명히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의사가 나더러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왜 당신의 어머니죠?'
라고 하고 싶은 걸 참고 나왔다.
아니면 "의사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고 나올 것을 그랬다.
약국에 가서 처방을 받으면서 요즘 어디를 가든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머니'란 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을 생각하니 한심스러워기지까지 한다.
특히 병원에서 젊은 간호조무사들이 하나같이 환자들은 물론 보호자들에게도 어머니라는 호칭을 심심찮게 쓰는 것을 보고 저들이 부르는 호칭을 누군가가 바로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런데 의사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교양 있는 태도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말을 가려 쓰지 않는 것을 보고 많이 실망스러웠다.
올 여름 엄마가 입원했던 큰 병원의 내과 과장 역시 나보다 서너 살 위의 의사였는데 나에게는 어머니라고 하고 엄마에겐 할머니라는 호칭을 썼었다. 아픈 엄마의 증세를 심각하게 말해주는 의사 앞에서 "지금 내게 어머니라고 하셨나요?"라고 따질 수가 없었다.
우리 딸애 또래가 할머니라고 하면 이해가 갈법하지만 중년의 의사가 엄마에게 할머니라니. 엄마도 할머니라는 소리가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다.
물론 그렇게 호칭을 성의 없이 부르는 사람의 내면은 질서가 없어 보이기 마련이고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해버린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학교나 학원의 학부형들에게 교사들이 '**어머니'라고 아이의 이름을 앞에 갖다 붙여서 썼기에 그런 호칭은 옳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두리뭉실하고 애매하게 그저 결혼한 여자에게는 무조건 '어머니'라는 호칭을 써대는 것만 같으니.
예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업고 다닐 때는 '새댁'으로 불렸고 적절한 호칭으로 생각되었다.
가끔씩 '아가씨'로 불리울 때나 '아줌마'로 불릴 때는 기분이 별로였는데 아마도 그 단어의 어원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디를 가든 낯선 여자 손님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을 갖다 붙이는 것을 보고는 기분이 싸~해지고는 한다. 그리고 그 호칭은 전염성이 강한 듯 점점 더 많이 듣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냐' 또는' '내가 언제 당신을 낳았지?' 라고 쏴 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병원에서는 환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님' 하거나 보호자에게는 '***보호자분'이라고 하면 되고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는 '손님'이라고 하면 되는 것을 생각 없이 '어머니'란 호칭을 함부로 쓴다.
가령 내가 병원의 의사이고 나보다 젊은 남자 환자나 보호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면 듣기 좋을까.
간호사인 내가 늙은 아버지를 입원시킨 보호자인 중년의 남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면 듣기 좋아할까.
가게 점원인 내가 옷을 사러 온 중년의 남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면?
여행사 직원이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면서 중년의 남자에게 '아버지'라고 하면?
여자들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들은 본인이 또는 듣는 사람이 친근하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듣는 사람이 꺼려지는 호칭이라면 조심해서 써야 하지 않을까.